주간일지 2주차
“이제 인간을 능가할 AGI가 나오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더 빠르고 많은 양의 혁신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구의 단 20퍼센트만의 일자리만 남겠죠.“
”적응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될 겁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겨우 3년만에 매일같이 듣게 되는 문장들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들어보며 눈을 지긋이 감습니다. 대체 어떤 세상이 올까요. 기술의 압도적인 발전,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다수의 인간들. 그 인간들을 이끄는 것은 결국 또 소수의 인간들. 기술의 발전은 또 다시 인간을 윤택한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대로도 나쁘지 않으니 조금만 천천히 걸음을 맞춰줄 수 없을까요? 낙오되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그 수를 줄여 나가려면요.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거부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동물이니까요. 적응은 개인의 몫이라며 책임을 떠밀지 말고 함께 가고자 하는 마음을 좀 더 가집시다.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여 줍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기술에 잠식되어 본연의 가치를 잃어가는 저물어 가는 별이 되고 말테니까요. 잊지 말아요. 이 모든 기술의 발전은 결국 우리를 위한 것임을.
어느 주말, 아버지는 우리가 다가가 말을 걸지 않으면 하염없이 소파에 앉아 소리가 나오는 박스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다가가 애써 말을 걸어 보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좀 더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없었냐는 잔소리 뿐입니다. 예전 같으면 욱 하는 마음에 화를 내었을 법도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해진 (아직은 멀었지만) 탓에 다시 한 번 말을 이어봅니다. 내 삶은 즐겁다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그러면 아버지는 침묵. 그래도 여전히 중얼거리며 하고 싶으신 불만 어린 말들을 내뱉으시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곁에 붙어 묵묵히 말을 듣습니다. 분명히 더 높은 곳을 원하셨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며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일러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한평생 같은 직업을 가지고 계셔서 제가 보고 있는 세상을 보지 못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인생의 어린 시절 일부만을 깊이 공유하고, 앞으로는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살아가겠죠. 아버지의 언어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새로운 언어를 배워나갈 것입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서로가 잊고 살고 있는 것. 그러니 우리는 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다양한 습관이 있겠지만 가장 큰 습관은 언어인 모양입니다. 말을 섞다 보면 버릇처럼 꼭 따라 붙는 문장이 있습니다.
“우와, 그거 얼마예요?”
“엄청 비싸네… 비싸지 않아요?”
별 것 아닌 말 같아도 매번 이런 물음들이 따라 붙는다는 것을 문득 느끼고 난 뒤로부터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였던가? 너무 <돈>이라는 일차원적인 가치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경제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것은 그리 현명한 언어 습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에 열광하는 것의 본질은 결국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자유’,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경험’에서 오는 것인데 너무 표면적인 단어에만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보니 문득 부끄러워졌습니다. 돈에 대해 관심이 많는 것은 좋지만 호들갑을 떨지 않으며 의연하게 대처해야겠습니다. ‘얼마예요?’ 라고 묻는 대신에 ‘어땠어요?’라고 묻기로 다짐합니다.
나중에 해보자. 언젠가 해보자. 대박이 날 거야. 지금은 너무 시간이 없으니까. 이만큼 해보는 게 어디야. 나중에는 좀 더 제대로 해야지. 지금은 힘드니까 집 가서…
매일 대충 이런 식으로 살다 보니, 무언가를 항상 놓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옵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제대로 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느낌. 누군가는 이미 그만큼도 충분하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조그만한 괴리감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그 책 어땠어요? 아 그 책이요… 아직 다 못 읽었어요. 아니, 다 읽었는데. 뭐였더라? 운동 열심히 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제 입에서는 막상 결과물이 없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지기 시작했고, 경제 용어가 나오면 어 그거요! 하고 괜히 아는 척 했다가 끝은 얼버무리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자 간절해졌습니다. 정말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 말보다 행동이 좀 더 앞서야 겠다는 생각에 이제는 ‘제대로’하는 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여태껏 힘을 뺀 이유는 습관을 만들기 위함이었으니 생각해보면 조금씩 시도해 본 것은 잘 한 습관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결과까지 생각하도록 제대로 시도해 볼 시기가 된 것 입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해봅시다. 아직 이십대의 중반. 하지만 이만큼을 더 살면 쉰을 바라보는 나이. 우리의 인생은 길지만 짧습니다. 그러니 한 번 뿐인 인생 제대로 살아내 보아야 한이 없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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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주일 보내세요.
오늘의 노래는 심규선, 살아남은 아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