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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과 부족함, 개발자의 회고록

불안했지만, 도전했고, 나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것을 잊지마

by 이고경

사는게 참 쉽지 않다.


늘 힘들다 했지만 올해만큼 정점이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대학생 때는 취업만 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는데, 막상 자유가 주어지니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몰랐던 간단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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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기


삶의 변수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갑작스러운 AI 시대의 도래, 개발자들 사이에 퍼진 고용 불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까지. 인터넷을 켜면 서로를 헐뜯고 절망적인 이야기만 가득했다. 자신감 넘치고 행복했던 취업 초기의 나는 온데간데 없고.


첫 직장부터 구조조정을 겪었고, 어렵게 이직한 회사에서는 두 번이나 구조조정이 있었다. 애정을 쏟았던 프로젝트는 사라졌고, 불안과 압박감 속에서 새로운 일을 맡으며 여기까지 왔다.


불쌍한 나를 위로하기 바빴다.

'왜 하필 이런 시기에 취업했을까?'

'좀 더 준비했더라면...'

'내 프로덕트가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돌아보면 나의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물경력이 되기 전에 더 좋은 환경과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좋아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심지어 프로덕트가 없어진 덕분에 오히려 이력서에 추가할 좋은 프로젝트들을 맡아 커리어를 쌓을 기회도 얻었다. 구조조정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다. '불행은 쌓여서 더 큰 행운으로 돌아온다'는 말처럼, 얼마나 잘되려고 이렇게 빌드업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

사실 최근에는 마음이 뒤숭숭하기도 해서, 이직을 시도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만 듣다가 이렇게 몸소 부딪혀보니 깨닫는 것들이 많았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고 배울 것이 무궁무진했다. 4년차는 그저 숫자에 불과한 무색한 것이었구나. 하지만 동시에 AI가 내 일자리를 쉽게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교차했다. 결국 이런 것들을 깨달았다.


위기에서 얻은 7가지 깨달음


첫 번째, ‘왜’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당연한 것에도.

리액트가 왜 만들어졌는지, mobX가 왜 만들어졌는지. 기술의 기원은 보통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에서 온다. 당연히 쓰던 것도 왜,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좀 더 면밀하게 생각하고 사용해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야 문제 해결을 위해 기술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다.


두 번째, 단순히 기능에 집중하지 말고 관심가는 것을 깊게 파보자.

문득 면접을 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너무 기능을 만드는 데에만 매몰되어 있었구나.

나는 프로덕트 엔지니어로 성장하고 싶었다. 사용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 그렇기에 그 기능을 잘 만들기 위해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문제 해결 능력은 기능의 자체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최근 진득하게 공부한 개발 서적이 없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앞으로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나 프레임워크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어야겠다.


세 번째, 성과를 제대로 측정해보자.

성능 지표를 제대로 측정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능을 빨리 만들어서 나가야 하는 환경에서는 바로 바로 시도하기란 정말 쉽지 않고 우선은 측정을 하는 시스템 자체를 설정하는게 병목이니까. 하지만 꼭 해야한다는 걸, 이제는 느낀다. 결국 수치로 말해야 한다. 다음부터는 업무를 하면서 꼭 측정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네 번째, 은연중에 ‘나는 안된다’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꾸준히 해보자.

대기업이나 좀 더 좋은 규모의 기업에 가는 것을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막연함에서 오는 불안일수도 있고, 그만큼의 흥미가 생기지 않아 할 수 없다는 자기방어의 태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대기업은 좋은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최고라는 건 아니다. 업계 최고가 될 것이 아니라면 재능까지 필요없다. 그 말은 즉, 재능이 없어도 꾸준함으로 어느정도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나는 안된다, 라고 여우의 신포도같은 태도로 쿨한 척 하지말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열정을 좀 더 가져야겠다.


다섯 번째, 그들도 결국 멋진 동료를 원하는 직장인일 뿐이다.

확실히 신입때와 다르게 면접이 무섭지 않았다. 아니, 떨리지 않고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막상 면접을 보러 다른 회사에 가보면 결국 그들도 똑같은 직장인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공석, 또는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고 좋은 동료를 뽑기 위해 업무 시간을 쪼개가며 면접을 보는 고군분투하는 직장인.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 긴장이 되지 않고, 나 또한 동료로서 함께 하면 좋을 사람들인지에 대해 면접을 보며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 늘었다. 어차피 언젠가 같이 일하게 될 동료인데, 말할 때 떨릴 건 뭐람. (무엇보다 이런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면접을 보는 압박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심장에 무리가 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섯 번째, 첫 번째가 어렵지 그 이후로는 확실히 쉽다.

어느날 이력서는 썼는데 왜 도전하지 않냐는 남자친구의 말에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왜 울었지? 그 기점 이후로 깨달았다. 완벽하지 않아서, 거부당할까봐 무서웠던거다. 오랜만에 냉정하게 시장에 내 실력을 올려놓고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직 좀 더, 좀 더, 라고 하면서 미뤄왔는데 그 한 마디가 내 속을 건드렸던 모양이었다.


결국 그 말을 트리거로 ‘시작’을 했고, 일단 내려놓고 도전해보자며 넣었던 서류들은 의외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오랜만에 보는 면접은 실제로 전날까지 생각이 많았다. 당장 몇 시간 전에도 취소하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결국은 보고 나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내가 나쁘지 않구나, 그와 동시에 엉망진창인 면접이었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을 확실히 깨달았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그러니 일단 도전해보는 태도가 중요하구나, 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일곱 번째, 동료가 최고의 복지다.

면접을 보다보니 드는 생각이 있다. 아, 이 기업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구나. 나와 맞지 않을것 같은데? 그와 동시에 내가 머물고 있는 회사에 있는 동료들이 얼마나 나와 맞는 사람들인지 깨달았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게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즐겁게 일하고 있었구나 하고.

맞고 틀린 조직은 없다. 사람들의 성격에 정답이 없듯, 추구하는 목표만 다를 뿐이니까. 다시 생각해보면 이렇게 속 시끄러운 회사에 여태 남아있는 이유는 좋은 동료들 덕분이다. 회사는 결국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사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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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해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혼자 흔들리고 방황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두 번째 구조조정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거의 두 달 넘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겉으로는 웃고 다녔지만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단축할 수는 있다. 어차피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기본값이니까.


회사가 곧 내가 아니라는 것을 분리하고, 좀 더 관망하는 자세로 바라봤다면 그 힘든 시간을 더 발전적인 곳에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주변이 시끄러워도 굳건한 나무는 버텨내는 법이다. 몰입은 고통을 잊게 해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벌써 1년이 세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잘 버텨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대견하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수고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히 더 나은 미래가 주어질 거라고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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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힘들다고 말하고 부정적인 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나는 그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의 역경과 고난은 더 큰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믿으며,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겠다.


올해도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며 성장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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