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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쉬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은 뛰고 있지 않을까

분명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지 불안은 습관이 아닐까

by 이고경

현충일을 포함한 연휴가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하루를 더 쉴 수 있게 된 짧은 휴식이었다.

그런데 이 하루가 왜 이토록 반가웠을까. 연차라도 쓴 것처럼 기쁘고 설렜다.


그 기분 때문일까. 나는 본래의 계획을 잊고 하루를 그냥 보내버렸다.


공부도, 프로젝트도 하지 않았다.

햇살이 좋아서, 바람이 기분 좋아서,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가,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북 바에 들러 와인 한 잔을 하며 오래 전 사둔 철학 책을 꺼내 읽었다. 어제의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이 왔다.

어젯밤에는 약간의 죄책감에 오늘의 할 일을 적어두고 잠들었는데, 눈을 뜨고 보니 또다시 그 마음은 어디로 가버리고 없었다. 오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점심을 간단히 챙겨 먹고 창가 앞에 앉아 어제 덮어둔 책을 마저 읽었다.


분명 즐거운 하루였다. 그런데 밤이 깊자 어김없이 불안이 밀려왔다. 정확히는 이미 낮부터 알고 있었다. 이게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나는 지금 쉴 자격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무언가를 이루고 있지 않을까?


객관적으로 급한 일은 없다.

하지만 개발자라는 직업 특성상 끊임없이 공부하고, 스스로를 갱신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늘 있다.

게다가 현재 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 보니, 나아가려면 계속 무언가를 만들고 시도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결국 그 강박을 떨쳐낸 뒤에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우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쉬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은 뛰고 있는 게 맞을까?”

“정말 이 시간이 쓸모없는 시간일까?”

“앞서나간다는 건,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한 정의일까?”


그 순간, 오늘 읽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떠올랐다.


프롬은 말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와 재화를 추구하며 소유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갖기 위해 애쓰고 그걸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잃을까 두려워 불안해한다.

현대인의 불안은 결국 이 소유 중심적인 실존 양식에서 비롯된다고.


내가 지금 느끼는 불안도 그렇다.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뒤처질까봐.

지금 이 평온함이 내 것이 아닐까봐.


쉬는 동안 다른 사람은 ‘앞서나가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

이 모두가 ‘소유적 실존’에 내 마음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프롬은 말한다.

존재적 실존으로의 전환,

즉 매일을 온전히 살아가며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이라고.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은 단지 ‘쉼’이 아니다.

나는 불안의 정체를 파악했고, 그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했으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냥 “쉬어도 돼”라는 위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불안을 직면하고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이 하루는 단순한 나태나 게으름이 아닌 존재적인 충전의 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오늘은 의미 있는 하루였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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