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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 Sep 22. 2024

나는 아직 헤어질 준비가 안 됐는데

로봇드림

로봇드림에 관심 있으나 아직 안 본 사람, 조만간 볼 예정인 사람은 해당 게시글을 보지 않는 걸 권장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봐야 더 진한 감동이 차오릅니다. 




* * *




로봇드림은 대사 한 줄 없는 무성영화로 자막이나 음성 없이 스토리가 진행된다. 말없이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감정을 보여주는지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도그는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도태된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다. 도그는 반복되는 재미없는 생활과 외로움에 사무쳐 로봇을 구매한다. 도그는 로봇과 함께 많은 것을 즐긴다. 공원에서 춤을 추고, 호수에서 배를 타고, 산책하다가 맛있는 간식을 사 먹는 소소한 일상, 로봇을 구매하기 전과 다른 생활을 즐긴다. 반려로봇이라는 단어로 쉽게 지칭할 수 없는 동반자가 된다. 어쩌면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이자 연인이자 가족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즐거움은 찰나의 순간으로 끝나게 된다. 해변가에서 놀던 둘은 로봇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그대로 두고 오게 되고. 다음날 다시 찾으러 왔지만 해변이 임시 폐쇄되어 구하지 못하게 된다. 도그는 로봇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한다. 출입증을 받기 위해 공공기관에 찾아가고, 몰래 침입했다가 경찰에게 잡히고, 결국 개장하는 날만 기다린다. 


홀로 남은 로봇은 눈만 끔벅인 채로 도그를 기다린다. 움직이고 싶어도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다. 도그와 로봇은 비록 구매에서 시작된 관계였어도 동등한 친구로 보여지는 장면이 많았는데, 이 시점부터 주인을 잃은 반려동물로 보이기 시작한다. 반려동물은 보호자 없이 아무것도 못하고, 사소한 것에도 사랑을 느끼며 존재만으로 무한한 사랑을 주는데, 움직이지 못하고 하염없이 보호자만 기다리는 모습이 반려동물과 흡사하다.


도그와 로봇은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꾼다. 로봇을 무사히 만나 즐겁게 노는 꿈, 로봇이 깨어나서 도그를 찾아가는 꿈, 도그가 다른 로봇을 만나는 꿈. 원하는 바람이 그대로 담긴 희망적인 꿈과 이뤄지지 않았으면 하는 최악의 악몽까지 여러 꿈을 오간다. 그 꿈의 연속에서 실제 장면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가 꿈인 걸 보여주는 연출이 나타날 때 탄식하게 된다.



로봇드림의 묘미 중 하나는 숨겨진 오마주 장면을 찾는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를 오마주해 경쾌한 음악과 함께 걷는 꿈인데 나는 마치 반려동물의 죽음을 보여주는 무지개다리처럼 보여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런 꿈을 통해 도그와 로봇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도그는 로봇을 만나 즐겁게 노는 꿈을 꾸지만, 로봇은 계속 도그를 그리워하고 만나고 상실하는 여러 꿈을 꾼다. 꿈 하나로 사랑의 무게를 잴 수 없지만 외로워서 로봇을 구매한 도그와 처음부터 끝까지 도그로 채워졌던 로봇의 삶은 너무나도 다르다.


로봇이 없는 도그의 삶은 예전처럼 단조롭다. 다른 이와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쉽게 풀리지 않는다.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짝사랑 상대는 통보형 편지를 남기고 멀리 떠나버린다. 모든 것을 함께하고 즐거웠던 로봇의 빈자리를 느낀다. 해변 개장일 전까지 도그는 이전의 삶을 지낸다. 


일상을 지내며 그리워하는 도그와 꿈을 꾸며 그리워하는 로봇. 도그는 이별을 맞이한 후 다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진다. 정말 괴롭고 힘들지만 결국 삶은 흘러가니까, 아무리 그리워해도 내 삶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 이별은 연인이 되기도 하고 죽음을 맞이한 반려동물이 되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귀여워하는 건 결국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라는 전제하에 관계가 맺어진다. 강아지보다 더 예측 불허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고양이를 주인님으로 모신다 해도, 나에게 거대한 폭력을 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알아서 자연스럽게 계급이 나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동등한 관계라 생각해도 동등해질 수 없다. 그래서 이 관계에서 도그와 로봇이 많이 그려졌다.



도그가 애타게 기다렸던 해변 개장일이 다가왔지만 만나지 못한다. 너무 긴 시간이 흘렀고 타인에게는 그저 고물 덩어리이기 때문에 로봇은 큰 폭력을 당해 신체 일부가 훼손되었다. 나중에는 고물상이 로봇을 주워가 화폐처럼 다른 이에게 제공한다. 


이제 더 해결할 수 없는 확정된 이별을 맞이하고 각자의 삶을 지낸다. 도그는 외로워하다가 다른 로봇을 구매해 로봇과 함께했던 것들을 향유한다. 그 대신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태도를 보인다. 로봇 또한 다른 이를 만나 지낸다. 부품의 일부로만 취급됐던 고장 난 로봇은 너구리가 고쳐주면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둘이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순간은 많았지만 매번 엇갈렸다. 나중에는 다른 파트너가 있는 걸 알고 피하기도 한다. 


이후에 로봇은 도그와 함께 들었던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튼다. 도그는 익숙한 노래가 나오자 신나게 춤을 추고, 건물 꼭대기에서 그런 도그를 바라보며 춤을 추던 로봇은 눈이 마주치기 전에 숨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전의 추억을 품고 춤을 추며 기념한다. 나는 이 이별을 바라보며 계속 울었다. 아직 헤어질 준비가 안 됐는데 관객인 나만 남겨두고 왜 헤어지나요…. 영화에서 아무리 건강한 이별을 얘기해도 울 수밖에 없었다.


로봇드림을 라라랜드 애니메이션 버전이라고 말하는 평이 많다. OST 음악을 잘 활용하기도 했고, 라라랜드에서 이별을 받아들이고, 만약에 우리가 이랬더라면~ 하는 상상으로 추억을 품어서 그런 것 같다. 라라랜드 속 if 장면이 너무 완벽해서 이어지지 않은 게 좋았지만, 로봇드림은 관객에게 많은 미련을 남겨주는 것 같다.


나는 도그와 로봇의 관계를 반려동물과 보호자로 표현했지만, 시절 인연을 떠나보내는 인간관계나 첫사랑을 잊고 새 사랑을 시작하는 마음 등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기 좋은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 강아지, 너구리, 오리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하며 성별 구분 또한 명확하지 않다. 복장을 통해서 유추하기도 하지만 틀린 답일 수도 있는 것이다. 동물을 빌려 다양한 인종을 표현하고 성애적인 걸 떠나 사랑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명확한 인간 캐릭터가 아니라서, 나의 삶에 접목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을 주는 걸수도 있다. 어찌 됐든 나는 이 영화에 갇혀 September 노래가 나올 때마다 아릿해지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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