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과의 한 달 유럽여행 그리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

표현은 못해도 마음만은 늘 고마웠지 뭐

by 사랑이었다

“신혼부부세요?”


남동생과 한 달 동안 유럽 여행을 다녀왔을 때

현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반면 주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거였다.

“너네… 남동생이랑 단둘이 여행을…? 그렇게 친해??”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 남매 사이가 좀 특별하다는 걸.

우리 남매의 관계가 각별하다는 걸.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000”, 내 동생 이름을 말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고

조언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

감정의 결이 비슷해서

밤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때론 초딩 때 같이 뛰어노는 친구 같기도 하고

어쩔 땐 인생에 조력자 같기도 하다.


그 여행은 내가 이직 후 잠깐 쉬는 시기에 떠난 것이었고,

동생은 백수였다.

내가 말했다.

“내가 다 낼게. 너는 나중에 취업해서 갚아.”

사실 혼자 가기 좀 무서우니? 가장 같이 가고 싶었던 사람이 동생이었다.

나는 얼마를 썼는지도 계산도 안 해놔서 나중에 동생이 갚겠다고 했을때

얼마인지 모르다고 했다.

정말 고맙고 아깝지 않았으니까.


어릴 때도 그랬다.

나는 동생을 질투해 본 적이 없다.

엄마가 분유 주려고 나를 아빠에게 맡기고 방을 나가면

문틈 사이로 엄마를 찾던 내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나는 세 살도 안 됐을 텐데.

엄마와 떨어지는 게 그렇게 싫었지만,

동생이 밉거나 얄미운 감정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릴 땐 내가 돌봐줬고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오히려 내가 동생에게 많이 기대게 되었다.

늘 오빠 같았고,

고민거리를 말하면 인생의 해답 마냥 명쾌한 답변을 주기도 하고

내가 인생을 이상하게 살고 있으면

정신 차릴 수 있게 가차 없이 쓴소리도 하던,

그런 사람이었다.


언젠가부터 알게 됐다.

이런 동생이 있다는 건

진짜 큰 복이고

같은 동시대에 태어나

같이 남매로 자란 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걸.


그래서 우리 아이 연아에게도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런 동생이 있어서 인생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내가 느낀 이 든든함을

연아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동생도 내 마음을 대충은 알겠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모를 거다.

우리는 막 살갑게 지내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평소에 이런 표현, 절대 하지 않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은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다행히 잘 회복했다.

그때 느꼈다.

평소에 고맙다고, 덕분에 정말 많이 든든했다고

표현이라도 할걸..

그 시기를 지나며 며칠 동안 많이 울었다.

앞으로 꿈꿔둔 계획도 많았는데..

우리 아기들 데리고 같이 여행도 다녀야 하는데..?

후회도 됐고,

더 많이 보고, 표현할 걸 싶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 사건이 계기였다.

늘 “누나 하고 싶은 거 다 해”

응원해 주던 동생이기에,

이 글도 꼭 보여주고 싶다.

“행복하게 글 쓰고 있어.

너 덕분에 시작했고,

진짜 재밌어.

나 잘하고 있어.”


요즘은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같이 육아템 공유하며 사는 사이가 되었다.

가끔 만나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서로 놀리고 장난치고 여전히 똑같지만

같이 자라온 그 시간들이

참 기특하고 따뜻하다.

그런 우리 곁에

서로의 배우자들도 함께 있고, 아기들도 함께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럴까? 배우자들도 좋은 사람이 들어와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모른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만들 미래가 기대된다.


여전히 살가운 표현은 못한다.

하지만 이 말만은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연아에게 너 같은 동생이 생긴다면

나, 셋째 넷째도 낳을 수 있어.”


이 정도 대답이면 나 진짜 진심이지?


내가 힘이 들 때 보는 글이 있는데

내 동생이 내 결혼식 때 해준 축사다.


축사 전문은 다음 글에 소개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