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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콜 May 29. 2024

나이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시간을 대하는 자세를 바꿔보자

  나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무척이나 예민했다. 그렇기에 나이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10대엔 20살이란 나이가 두려웠다. 성인이 되어 가질 수 있는 '자유'보다는 부모님 품을 벗어나는 것,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언젠간 나를 떠날 수도 있겠다는 것, 내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이 더 두렵고 싫었다. 20살을 즐거움과 설렘보다 두려움과 불안함을 가득 안고 맞이해서일까, 대학생 시절을 회상하면 자유로 인한 행복보다는 선택과 결정,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감들에만 집중하며 괴로웠던 기억이 더 많다. 

   스스로에 대한 나이 가스라이팅은 20살이 넘어서며 점점 심해졌다. 20대 중반 전에는 졸업도 해야 하고 취업도 해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감에 초조함을 늘 안고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쉬울 정도로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대학생활을 해왔던 것 같다. '갭이어'라는 것을 한 번쯤 가져볼걸... 그땐 '여유'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휴학도 인턴 휴학만 했을 뿐, 한 번도 쉬기 위해 휴학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방학도 매번 계절학기를 듣고, 일을 하고, 무언가를 공부하며 지냈던 기억뿐이다. 그나마 가끔 여행을 다녔던 것이 위안이면 위안이랄까.

  그랬던 내가 요즘엔 지금 내 나이가 너무 좋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더 이상 그때처럼 두렵지도 않다. 이렇게 생각이 변하기까진 우여곡절이 당연히 많았다. 평생 갖고 있던 생각을 한순간에 뒤바꾼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러나 한 번 바뀌어버린 생각은 내 삶에 대한 태도 자체를 모두 변하게 했고, 그 변화의 파급력과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나이에 대한 강박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취준생 시절 때부터인 것 같다. 그 균열은 자발적인 것이 아닌 강제적으로 깨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취준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파워 J인 성향대로 계획한 것들을 계획한 나이에 모두 해내었었다. 내 모든 계획은 '나이'가 기준이었다. 몇 살 때엔 이런 저런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겐 '계획'이라는 것이었고, 대부분은 해내었다. 그. 러. 나... '얼어붙은 취업시장'이라는 단어가 매일, 매달 들려오던 시기의 취업전선 속, '계획'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단어와 같았다. 말 그래도 '계획이 뭐예요?'라는 느낌이랄까. 절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취준시기를 보내며 계획대로 한 번도 풀리지 않는 경험을 반복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좌절은 포기와 해탈이라는 상태에 이르렀고, 강제적으로 계획을 나이를 기준으로 세우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난 처음으로 나이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계획보다 훨씬 늦게, 그것도 전혀 계획에 없던, 전혀 알지 못하던 직무와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현실에 부딪혀, 내가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에 부딪혀 '타협'을 하는 경험을 거세게 한 것이다. 하나도 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 시기를 겪게 되며, 어차피 학교를 벗어난 뒤의 내 삶은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냥 인정해 버렸다. 점점 나이를 정해두고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큰 틀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과거'와 '내일'에 살기보다 오롯이 '현실'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오늘'을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간 내가 원하는 시기에 계획한 것들이 실현되겠지라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에 집중하여 살다 보니 몇 살 까지는 이걸 해야 해서 무작정 달려야 한다는 압박이 조금은 약해졌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취미'를 해보려는 여유도 조금은 생겼다. 그 당시, 남편의 권유로 새로운 '취미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그 취미생활이 곧 나의 꿈이 되는 신기하고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28살이라는 나이에 찾게 된 나의 꿈. 그 당시 그 꿈을 위해 퇴사를 해야 할지 병행할지에 대한 고민을 3달가량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좋은 나이였는데.. 그때 당시에는 28살에 백지부터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여 단념하려는 마음이 컸었다. 아무리 나이에 대한 계획을 포기했어도 나이 가스라이팅은 사라지진 않았기에.. 28살이란 나이엔 경력을 쌓아야 하는 시기여야만 했다고 느껴졌다. 무언가를 처음부터 시작하기엔 아예 불가능한 나이로 느껴졌다. 너무 늦은 것 같아서,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다 버리고 새롭게 0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언제 이 꿈을 이룰지 몰라서..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하고 싶은 꿈이라서.. 3개월 가량 매일 밤 잠을 못 자며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때, 남편과 동생의 응원과 따뜻하고도 현실적인 말로 용기를 얻고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속엔 '재취업'이란 플랜 B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꿈을 위해 달리다가 잘 안되면 경력을 쌓아온 분야로 재취업을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용기 내어 달리던 길을 잠시 스톱하고 새롭게 내 꿈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도 못했던 일이 생겨버렸다. 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 것이다.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모든 것이 변했다. 이런 결심을 하고 퇴사를 하고 나온 지 6개월 만에 미국으로 오게 되어버렸다. '재취업'이라는 플랜 B가 사라지며 어떻게든 플랜 A를 해내야 하는.. 마치 순식간에 절벽 끝으로 몰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타지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내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그야말로 멘탈이 바사삭 붕괴되었다. 재취업을 할 수 없으니 빨리 이 꿈을 이뤄내야겠다는 조급함과 다급함이 나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적어도 30살 전에는 반드시 아웃풋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공백기가 길어질 수록 나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는 절망감과 두려움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닿을 수 없는 꿈에 대한 압도감과 절망감,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매일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붙였고, (당연히 조급하게 밀어붙이니 아웃풋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우울증 증상까지 겹치며 건강이 최악으로 다다랐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는 날이었다. 몇 달 전부터 이 연휴를 위해 기다려왔던 우리였는데..그날 아침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석증 증상은 비행기 시간 직전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모든 티켓과 호텔비를 금전적 손해를 안고 취소해야 했다. 그 하루가 지나서야 사라진 원망스러운 이석증 증상이었다. 남편에게도 진심으로 너무 미안했고, 내 상태도 정말 서글프고 억울하고 힘들었다. 계속 반복되는 이 고통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날이 갈 수록, 증상이 사라지기까지의 시간은 길어져만 갔다. 정신은 너무나도 멀쩡한데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 사지를 움직일 수도, 무언가를 먹을수도, 그렇다고 잠을 잘 수도 없는 이런 상태를 계속 경험하기 너무나도 싫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조급함을 버리고 스스로를 그만 몰아붙여야겠다는 생각을 굳세게 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이렇게 이석증이 찾아올 테니까. 그때부터 명상도 하고, 일기도 쓰고, 관찰일기도 쓰면서 나를 스트레스받지 않는 상황에 두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다. 이런 노력을 하던 와중, 내가 힘든 것을 알게 된 지인께서 해주신 말씀으로 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을 흐른다고 생각하지 말고 밀도를 쌓아간다고 생각하며 차근차근 살아가봐요 우리.'


라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듣고 머리에 '댕-'하고 종이 울렸다. 시간을 흘러간다고만 생각하며 늘 조급하게 쫓기듯 살아왔는데... 시간을 '흘러간다'는 수평적 개념이 아닌 '쌓아간다'는 수직적 개념으로 받아들이라니. 정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말씀은 내 세계를 유지하던 인프라 자체를 바꿔버렸다. 시간을 밀도를 쌓아가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내 모든 문제와 힘듦을 해결해 주는 해결책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나한테 필요한 깨달음이었어!'라는 생각과 동시에 시간을 수직적으로, 밀도를 쌓아간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 마음과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급함보다는 신중함이, 서둘러 후루룩하기보다는 더 집중하여 차근차근 진중히 하는 노력을 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관성처럼 시간을 수평적으로 대하며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내 모습이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책상 앞에 붙여둔 '시간을 밀도로 생각하자!'는 포스트잇을 보며, 또 일기를 쓰며 시간을 수직적으로 쌓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시켰다. 그렇게 시간에 대한 내 생각을 개조시키기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까, 그때부턴 의식하려는 노력 없이도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꾹꾹 눌러 지르밟으며 걸어가기 시작하는 내가 보였다. 흰 눈 위에 희미하게 난잡하게 보이던 발자취들이 선명해하고 정돈되기 시작했다. 시간에 대한 초조함이 사라진 것은 덤이었다.


  시간을 밀도로 생각하며 살아가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나이 가스라이팅은 사라졌다. 나이가 100에 가까워지는 절망적인 '숫자'로 다가오기보다 밀도와 경험치가 더 쌓인 '미래의 나'로 받아들여져 오히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즐겁고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친구들 중에서도 단연 30살이란 단어를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나였는데..(오죽하면 친구가 30살이 되었을 때 괜찮냐고 묻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이 나이를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이제는 내가 더욱 성숙하고 깊이 있는 멋진 사람이 되었다는 반증 같아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퀘스트를 깨는 것처럼 재밌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마자 생긴 변화 중 가장 기분 좋은 변화는 바로 '꾸준함'이 생긴 것이다. 밀도를 쌓기 위해선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전에는 조급함으로 인해 빠른 시간에 빠르고 효과적으로 무언가를 쟁취하는 것만 신경 써 '꾸준히 노력하는'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지금 '시간=밀도'라는 인프라 깔린 내 세계에선 꾸준히 하는 것이 세계를 유지하는 기본 베이스가 되었다. 새로 구축된 인프라 속에서 꾸준히 1년 넘게 밀도를 쌓으며 살아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성장을 이룬 것들도 하나둘씩 보였다. 최근 업로드한 글에서 언급했던 달리기, 그림 등이 그런 성장들이었다. 

  또 다른 신기한 변화는 긍정적인 사고회로가 돌아가며 '새로움'에 대한 장벽이 낮아진 것이다. 내 밀도와 경험치를 높여 넓고 깊은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자 새롭고 다양한 경험들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것이다. 이제는 실패도 내 경험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며 도전의식이 마구마구 샘솓게 되었고, 그에 대한 출발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한국에 살 때 잠깐잠깐 필라테스만 해봤지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였기에 새로운 운동(+내 기준 엄청 강도 높은 운동)을 심지어 외국에서 시작하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보자'라는 생각이 그 두려움을 이겨 올해 3월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꾸준히 다니고 있는 중이다. 요즘 점점 보이는 몸의 변화가 무척이나 신기하고 재밌다. 나이에 대한 조급함이 사라지고 시간을 경험을 쌓는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에 내 몸이 이렇게 변한다는 것을 처음 경험해볼 수 있게되었다. 이런 처음 겪는 좋은 변화와 경험들이 차근차근 쌓이기 시작하며 시간에 대한 내 생각의 변화에 대한 확신도 점점 커졌다. 시간을 받아들이는 생각의 변화로 인한 내 삶의 새로운 Phase가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그 누구보다도 나이에 대한 압박감, 조급함, 불안감 속에서 오랜 기간 살아왔었다.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시기를 겪었지만, 지금의 내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시기였단 걸 많은 것이 바뀐 요즘 느끼고 있다. 그 때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가며 고통을 겪고 나를 위해 긍정적으로 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20대처럼 나이와 시간에 얽매이며 내 삶을 소모적으로 살아갔을 것이 분명하다. 시간에 대한 생각이 변하자 20대와 30대의 내 삶이 너무나도 확연하게 달라졌음을 요즘 많이 느낀다. 마블 영화처럼 새로운 페이즈가 열린 것 같다. 주인공이 바뀐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할 만큼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번 주는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며 문득 작년 이맘때쯤의 관찰일기를 열어봤다가 그때와 지금 시간에 대한 내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건강한 변화가 나에겐 너무나도 의미가 있고 소중했기에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동시에, 과거의 나처럼 나이에 압박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다르게 대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시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누군가에게는 꼭 도움이 되길. 그래서 그 삶이 조금 더 안온해지기를 마음 깊이 바라며 이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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