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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콜 Apr 19. 2024

무기력함과 우울감을 줄여준 3가지 방법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해 준 몇 년 간의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

  짧으면 달에 한 번, 길면 2-3달에 한 번. 무기력과 우울감은 주기적으로 나를 방문하는 친구들이다. 무기력감이 들며 우울감이 찾아오고 그 두 어두운 세력과의 전쟁이 일상이었다. 무기력은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갑작스레 나타나 나의 걸음을 막아서버린다. 그리고 그 막힘에 주저앉아버리는 나를 보며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더 깊어진다.

  그러나 이번에 찾아온 무기력함은 조금.. 독특했다. 늘 붙어 다니던 우울감이란 녀석 없이 무기력만 홀로 나에게 방문한 것이다. 무기력한데 우울하지 않은.. 이런 상태가 참 이상했다. 분명 무기력하면 우울해야 하는데... 우울감이 없으니 어떻게 이걸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할지 뇌정지가 오며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붕 뜬 것 같은 기분이 대부분이었고, 무덤덤하지만 하기 싫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우울감이 없으니 나를 이성적으로 바라보며 내 문제를 짚어보는 것이 수월했다. 우울감이 없으니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 그리 힘들진 않았다. 굳이 저 깊은 땅굴 속의 어둡고 찐득찐득한 감정들을 휘젓고 맛보지 않아도 되어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즈음 되니 우울감을 줄이고 싶던 나의 노력들이 빛을 발한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나의 무기력이 되려 빛나는 메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기력과 우울감을 떼어놓았고, 우울감이 같이 찾아오지 않았으니 앞으로 더 노력하면 무기력도 날 자주 찾아오지 않겠구나 확신도 들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꾸덕한 질척이는 감정 없이 건조하고 바스락대는 이성으로 무기력함을 느끼는 나의 모습을 마주 볼 수 있게 되니 무기력도 금세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의 무의식 속 알고리즘이 우울함에 잠식되어 정신을 못 차리던 단계가 사라지니 '무기력해? 그럼 벗어나야지'라는 간단하고 빠른 프로세스를 자연스레 타고 있었다. 이 신기한 경험을 남편에게  공유하니, 남편이 무기력한 것을 소재로 글로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무기력한 것의 어떤 걸 글로 써야 할까..? 며칠간 고민하다 나의 노력의 결과가 보이는 이 상황에 자신감을 얻고 내가 수년 동안 무기력과 우울감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방법들을 하나씩 정리하여 공유하고 싶어졌다.


무기력함과 우울감을 벗어났던 나의 방법들:

하나, 환기를 한다.

  여행을 가던, 책을 읽던, 드라마나 영화를 보던, 좋아하는 무언가에 빠지던, 현재의 내 상황에서 내 정신을 아주 멀리 떨어뜨려놓고 나의 불안과 무기력이 환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에겐 도움이 많이 되었다. 밀폐된 공간에 갇혀 지내면 공기도 탁해지고 불쾌지수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공기로 환기를 시켜주면 치솟던 불쾌함과 짜증도 줄어들게 된다. 무기력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기력하다는 것 자체가 내가 현재의 상황에 불만족스럽거나 압도되거나 지쳐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회피와 뭐가 다른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나에게 회피는 그냥 도망쳐버리는 것이고, 환기는 충전 후 다시 문제를 직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망쳐버리는 것이 아닌, 내가 그 문제를 다시 직면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해 내 안의 불쾌한 공기를 시원하게 배출시키고 신선한 에너지를 채워 넣는 것. 그것이 회피와 환기의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나는 보통 새로운 경험을 이것저것 쌓으려 했다. 여행을 떠나거나 혼자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카페나 식당, 미술관을 가서 시간을 보냈다. 산책을 하다 괜히 아이스크림집에 가서 맛난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했다. 집 안에 박혀있는 건 일절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무조건 밖으로 나돌아야 했다. 

그렇지만 매번 나가는 것도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다. 그럴 땐 내 모든 관심을 잡아끌 수 있는 자극적인 것들로 시선을 돌리려고 한다. 초등학생 시절 좋아했던 영화를 다시 찾아봤다 (그 당시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감정들이 다시 떠올라서 이럴 때마다 찾아보게 된다). 차갑게 식어버린 녹아내린 가슴에 심폐소생을 하는 것처럼 평소에는 보지 않던 자극적인 범죄나 로맨스 소설/영화 찾아보기도 했다. 무서움, 벅차오름, 감동, 슬픔 등의 다양한 고조되고 격양된 감정으로 내 무기력한 심장이 다시 뛰길 바라서였다.

  이때 중요한 건, 틈틈이 내가 돌아와야 할 곳을 한 번씩 쓱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금은 준비가 되었나? 지금은 내가 이 문제를 마주할 수 있을까? 지금은 의욕이 생겼을까? 무기력이 사라졌을까? 일기를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이 모든 것을 행하는 이유는 결국 무기력을 쫓아내고 내가 불만족스럽거나 압도되거나 지쳐버린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새로운 경험을 쌓고 자극적인 것들을 흡수하다 보면 어느새 무기력이란 손님이 나의 방을 나가버리고 그 자리엔 자연스럽게 '아 이제 다시 해야지'라는 의욕과 의지가 스멀스멀 채워지곤 했다. 동시에 내가 해결해야 하는 퀘스트도 가볍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둘, 오 분이라도 '나를 무기력하고 불안하게 하는 원인'을 마주하고 '시작'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나에게 무기력은 보통 세 가지의 상황일 때 찾아왔다. 1) 현재의 상황에 불만족스럽거나 2) 압도되거나 3) 지칠 때다. 그중 가장 비중이 높은 무기력의 원인은 1) 현재의 상황에 불만족스러울 때였다. 내 욕심만큼 내가 해내지 못하거나 결과물을 내지 못했을 때, 투자한 시간만큼 회수를 하지 못했을 때, 성장하지 못했을 때 등. 그럴 때마다 이 방법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 격하게 말하자면 그냥 닥치고 하는 거다. 생각해 보면 정말 당연하게도 우리는 알고 있다. 안 하는 것보다 조금씩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말이다. 토끼처럼 뛰어가지 못하더라도 거북이처럼 기어가다 보면 도착지는 도착하기 마련이다. 그냥 출발점 근처에서 주저앉으면 도착조차 하지 못한다. 이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를 무기력감과 우울감에 휩싸이면 잊어버리게 된다. 그냥 하기 싫어진다. 하는 게 뭐 의미 있나.. 해봤자 아닌가... 느는 것 같지도 않고, 뭐 해도 티도 안 나는데 이게 맞을까.. 이런 불신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내 시야를 가려버린다. 그렇게 안개에 잡아먹혀버리면 아주 깊은 우울감 속으로 쉬이 빠져들어버렸다. 심지어 이 두 가지 감정들이 사라졌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버린 나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오곤 했었다. 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들 때문에 내 시간을 버렸을까. 왜 아무것도 안 했을까 하며 말이다. 우울감에 잡아먹혀 내가 할 일을 못한다는 사실도 내 마음을 상당히 힘들게 했다. 내 시간이 너무 아깝고 내 시간에게 너무 미안했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는 건 정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되었다. 너무 지긋지긋했다. 바뀌고 싶었다. 이 악순환에 아예 발을 들이기도 싫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무기력하고 우울해도 조금씩 그냥 하자'라는 생각을 갖고 무조건 책상에 앉아버리기 시작했다.

  평소엔 2시간씩 하던 걸 5분만 하더라도 그냥 일단 시작을 했다. 중간에 하다 말더라도 시작을 하려고 했다. 한 줄만 쓰더라도 일기를 쓰자 생각하고 일기장을 펼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떤 것을 시작만 하면 집중이 되고, 또 집중이 되니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니 무기력감의 기세가 점점 약해졌다. 자연스레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사라지는 속도도 빨라졌다. '해냈다!'라는 생각에 너무도 기뻤다. 이 반가운 변화를 느끼며 안개에 휩싸여도 필사적으로 조금씩 나아가려는 훈련을 했다. 어느새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그래도 그냥 해'라는 길이 뇌에 깊게 새겨졌는지 자연스레 두 감정이 찾아오면 템포를 늦추고 자리에 앉아 어떻게는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금상첨화로 안개가 사라지고 시야가 밝아졌을 때 내가 조금씩 쌓아 올린 성과물이 보였고 그걸 버텨내고 해낸 내가 너무나도 기특하고 뿌듯해졌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고 반복되다 보니 무기력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아 졌다. 그래설까? 그래서 지금의 무기력은 우울감을 동반하지 않은 것 같다. 더 이상 무기력한 것이 우울감까지 발현시키지 못하나 보다. 엄청난 발전이다.


 셋, '현실의 나'를 직면하고 알아준다.

  내가 보통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불안해하는 것의 원인은 내가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나의 모습에 대한 이질감 대부분이었다. 머릿속의 나는 지금 무언가는 하나를 끝냈어야 했고, 나아갔어야 했지만, 생각보다 현실의 나는 게으르고 행동력이 강하지 못했다. 그런 괴리감과 비교가 쌓이고 쌓이며 하루하루가 불만족스러웠고 결국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현실의 실제의 내가 성과물이 없는 게 아닌데도, 해낸 것이 없는 게 아닌데도 이상 속의 나와 비교하며 그걸 무시하고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이만큼 흘렀음에도 욕심만큼 하지 못한 지지부진한 성적표에 실망하며 우울, 불안, 그리고 무기력에 파묻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괴리감은 나 스스로의 착각일 뿐이었다. 괴리감으로 인한 무기력과 우울감은 되려 이상 속의 내가 아닌 현실의 내가 하고 있는 것, 그 페이스에 오히려 집중해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이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그동안은 나 자신에 대한 잣대가 너무 높다고만 여기고 넘겼었는데, 너무나도 너덜너덜해진 내 자존감을 마주하며 최근에 무엇이 문제일지에 대해 정말 깊이 오랫동안 고찰해 보았다. 그 결과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가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완벽한 이상적인 나'를 쫓아가지 못하는 '현실의 나'로 발생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 것을 깨닫자마자 그동안 방치되었던 '현실의 나(=진짜 나)'에 대해 관심을 주고 싶어졌다. 

  하얀 종이 위에 '이상적인 (아주 익숙한) 나'에 대해 쭉 나열해 봤다. 계획을 잘 이행하고, 아침형 인간이며 우울감에 휩쓸리지 않는 등. 정말 꿈꾸는 내 모습들로 가득 차있었다. 아주 자세히 많은 키워드를 작성한 뒤, 바로 옆에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은지 나열해 봤다. 3가지의 키워드를 쓰고 나서 막혀버렸다. 충격적 이게도 여태까지 나는 현실 속의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때 처음으로 진짜 나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진짜 나'는 게을렀고, 생각보다 집중하는 시간이 짧았고, 의지도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진짜 나'는 이상적인 내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들을 가지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받아들이기 조금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머리와 마음이 개운해지기도 했다.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젠 해결책만 내면 되는 것이었다. 

  나의 새로운 해결책은 바로 '현실의 나(=진짜 나)'에 맞는 페이스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2-3개의 일을 해내는 예전과 달리, 생각보다 게으른 나에게 맞춰 1개만 해내는 것. 이렇게 페이스를 확 낮춰버렸다. 그 결과, 하루하루가 짓누르는 감정이 아닌 해방된, 기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아 이렇게 가볍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구나. 내가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었구나.' 반성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무기력하고 우울한 감정도 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진짜 나의 모습을 바라봐주고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읽어내고 그에 맞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이리도 편안하고 행복한 줄 몰랐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면서 원인을 찾아 해결해 나아진 나를 보며 기특하기도 했다. 괴리감이 사라진 하루하루는 무기력과 우울감대신 성취감과 뿌듯함으로 채워졌다.


  어떤 날에는 하나의 방법으로도 무기력과 우울감이 사라졌고, 어떤 날에는 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그때그때 다양하게 무기력과 우울감을 몰아내는 연습을 나도 아직까지 하고 있다. 

  사람마다 무기력함과 우울감이 오는 원인과 상황이 다르기에, 당당히 이 세 가지의 방법이 정답이다라고 말할 순 없다. 이건 내가 나의 상황 속에 구르면서 발견한 나만의 해결책일 뿐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방법이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소파에서 하루종일 화장실도 가지 않고 누워만 있던 나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지금의 나로 변화하게 해 준 소중한 방법이기에.. 기록을 남기고 공유하고 싶었다. 혹시나, 나와 비슷한 이유로 무기력감과 우울감에 빠져버린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이 방법들 중 하나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산책하며 사 먹은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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