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며 일을 하는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연봉제로 일을 하고 있기에 더 많은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수당이 늘어나지 않는다.
적지 않은 나이에 어렵사리 들어온 이 직장에서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2.
자신만의 스타일이란 이렇다.
매뉴얼이 있는 업무더라도 그보다 더 철저히 공부하고 관련될 수 있는 상황까지 하나하나 가정하고 분석해서 결론을 내는 것.
그리고 타 직원의 업무 떠넘기기의 색을 가진 부탁도 회사의 일이 곧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거절하지 못하는 편인 것.
이러해서 일을 시작한 지 몇 해가 지나도 노하우는 더 철저히 분석하는 것이 되어버린 데다가 부탁을 받은 일들에 야근은 줄어들지 않고,
결국 유사한 일이 주어졌을 때 매뉴얼대로 수행하는 뒤늦게 들어온 후배 직원들이 해당 업무를 더 빨리 처리하기에 이른다.
#3.
업무와 관련된 지식은 후배들보다 많을 수 있어도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
제삼자가 보기엔 비슷한 무게의 업무량일 수 있었지만, 이 남자는 본인의 업무가 어렵고 본인에게 부탁으로 의지하는 사람도 있기에 자신의 야근 시간만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던 그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도 받아본다.
처방받은 약도 먹어보고 상담받은 대로 휴일을 며칠 확보해 일을 조금 덜 신경 써보려 노력도 한다.
그래도 습관은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았다.
#4.
일에 비중을 두고 살아오다 보니 회사의 사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퇴근 이후에도, 심지어 휴일에도 업무가 생각난다.
그는 ‘이직하면 달라질까?’ 생각해 본다.
사실 주변에서는 많이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렇게 하시다가 병나겠어요 선배님”,
“모든 상황을 생각하시기보다 일단 매뉴얼대로 하시고 문제가 생긴 부분을 보강해 나가시는 게 어떨까요?“,
“일 열심히 하는데 휴가 내고 머리 좀 식히고 와~”
일에 몰두해 있는데 주변의 말이 들렸을까?
#5.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담당 팀장과의 개인적으로 면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팀장님 제가 일을 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일처리가 조금 더딘 부분이 있는 것 같고, 업무의 무게에 눌려 요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실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도 받고 있어요. 업무 조정으로 무게를 조금 덜어낼 방법이 없을까요?”
“그럼 누군가 지금 하던 일의 일부를 대신해줘야 한다는 얘긴데.. 경력으로 봐서는 자네가 이 정도의 업무를 해주는 게 맞다고 보고 있네만..“
“네..”
아무 말도 못 하는 남자다.
팀장은 말한다.
“몸이 망가질 정도로 너무 일에 중점은 두지 말고, 결국 자네의 인생을 먼저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동안 얘기는 안 했네만 집에 일찍 들어가는 습관부터 어떻게든 만들어보게.”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자네가 나중에 내 위치에서도 야근을 밥 먹듯 하게 된다면, 직원들도 자네를 그다지 좋아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
“난 자네의 위치일 때 담당 팀장이 집에 안 들어가는 게 더 부담이었거든.“
“네” 하면서 ‘일이 많은데 무슨..‘ 남자는 속으로만 말을 집어삼킨다.
#6.
남자는 그날 야근을 하지 않고 퇴근하며 담당 팀장의 말을 골똘히 생각해 본다.
‘승진했을 때의 위치라..’
그리고 내린 결론.
‘하긴 팀원의 개인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주는 팀장이라면 몸소 보여주는 게 맞는 부분도 있겠지’
‘어느 정도 타고난 성격이라서 어려움은 있겠지만, 매뉴얼대로 일을 처리하고 모든 상황을 생각해서 대비하는 습관을 조금씩 고쳐나가 보자.‘
‘그리고 업무 부탁에 있어서는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어느 정도 거절도 필요하다. 업무 떠넘기기는 절대 부탁이 아니다.’
‘내가 이직해도 회사만 바뀔 뿐 내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다.’
#7.
시작이 어려웠다.
한 달간 매뉴얼대로 일을 처리하고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부분은 일부 찝찝한 마음에 어느 정도 의지했을 때.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일로 바쁠 때에도 가끔 있었던 업무 넘기기 식의 “이것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라는 말에 기존처럼 담당 업무가 아님에도 “네 조금 있다가 봐 드릴게요. “라는 말 대신 “ㅇㅇ의 사유로 해당 내용은 팀원들과 회의를 통해 해결책을 먼저 찾아보시거나 다음에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요.“라는 이유 있는 정중한 거절을 했을 때.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남자는 똑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음에도 비로소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느낌을 받고 다음 달부터 퇴근시간에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나 알아보려고 하는 참이다.
‘여유는 어쩌면 자기 자신의 변화로 어느 정도 만들어내는 것인가 보구나.’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