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과 등을 맞대본 남자

by 달뭉치

#1.

여기 갓 30대에 접어든 남자가 있다.

20대 후반까지 줄곧 책만 보다가 사회에 조금 늦게 발을 들여놓아서일까 조금은 나이가 들어가서일까.

더 어렸을 땐 몰랐다.

경험이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그 예시를 하나 보자.


#2.

이 남자의 타고난 성향은 내성적이었다.

그래서 부모는 조금 외향적인 성향도 이끌어내 보려 어렸을 적부터 이것저것을 남자에게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었다. 지금 어린 친구들은 당연하게 해 보는 것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으리라.

유치원은 체험학습이 많은 곳으로,

초등학교 때는 체육관과 미술학원, 피아노와 지금은 없어진 보이스카우트 활동,

중학교 때는 학급 임원,

고등학교 때는 해외여행 추천 등,

이외에도 남자의 부모는 표현하는 방법은 서툴렀으나 사랑하는 아들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었다.


#3.

그나마 고등학교 때 해외여행은 우리나라가 좋다며 거절했으나

그보다 더 어렸을 적, 그러니까 하고 싶어 하는 것과 하기 싫은 것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시절에는

흐릿한 선택권을 손에 쥔 채 "일단 해보는 게 어떨까?"라는 말을 듣고는 일단 시작.

그렇게 했던 어렸을 적 경험 중 이 남자의 뇌리에 강렬하게 새겨진 것은 보이스카우트 활동에서의 체험활동이었다.

바로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묵는 하루 중에서도 짧은 순간.


#4.

그 순간은 불현듯 찾아왔다.

가을철 날씨에 9시쯤 되었을까.

어두운 저녁 술래잡기를 하며 친구를 잡으러 다니던 와중 돌부리에 걸려 살짝 넘어져 바닥에 大(대) 자로 뻗었을 때.

그 남자는 운동장과 처음 등을 맞대본다.

넓은 하늘의 배경에는 어두움이 있었고, 곳곳에 달과 별이 수놓아준 밝음이 있었다.


#5.

그때는 그 순간이 '뭔가 이상한데?' 하고 지나쳤지만,

되돌아보면 남자에게는 자신이 세상에서 그야말로 한 점에 불구하다는 광활함을 인지하게 하면서도 넓은 하늘의 달과 별들의 주목을 받고 마치 그 공간의 주인공이 된 느낌도 들게 했던 최고의 순간이었다.

남자는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주변은 시끄러웠어도 저 멀리 보는 것만으로 특유의 편안함을 주던 하늘, 시원했던 밤바람, 온몸으로 느껴졌던 아름다움까지.

이후 고등학교 때도, 성인이 되어서도 별자리를 본다 치고 몇 번이나 누워서 하늘을 접해봤지만 불현듯 보이던 그 하늘과는 분명 달랐다.


#6.

이 남자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마음에 담아둔 그 순간을 조용히 생각하고 마음의 평안을 먼저 찾는다.

그리고는 최대한 후회가 남지 않는 선택권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이 남자에겐 운동장과 등을 맞대본 그 순간이 그러하듯,

어떤 경험에 의한 이렇게 반짝이는 순간들은 소중하고 분명 살아가면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 중에 어떤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또 어떤 것을 덜어내야 하는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다.


#7.

이 남자는 '다가올 순간들도 피하지 말고 겪어야 하는 경험길이다.' 생각하고 앞으로의 삶을 그려갈 예정이다.

사회생활에도 분명 도움이 되겠지.

남자는 "사람들이 떠올리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는 경험은 무엇이 있을까?" 읊조리며,

코로 들이마신 숨을 입으로 조용히 내쉬면서 '사람들이 각자 마음속에 이런 쉬어갈 곳 하나는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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