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 이야기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어요.
남 : 그럴까요? 무슨 이야기인가요?
여 : 이야기에 대해서에요. 오늘은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잖아요, 우리처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요. 그럼 이야기 중에는 어디까지 거짓이고 진실일까요? 저는 여기에 대해서 나눠보고 싶어요.
남 : 글쎄요. 지금 이야기를 만들어서 대화를 하는 건 진실일 거고, 이제부터 이야기에는 거짓이 조금씩 들어갈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데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 또한 거짓이 조금 들어갔을 수 있을거구요.
여 : 괜히 찔리네요. 그래도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데 혹하지 않나요? 흥미 있죠??
남 : 농담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기대되는데요? 방금 전에 거짓이고 진실일까요라고 했는데 거짓을 먼저 말한 건 이야기는 역시 거짓이다라는 의견에 가깝다고 봐야 되나요?
여 : 들켰나요? 역시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에요. 더 물어보세요.
남 : 음.. 그러니까 이야기는 보통 경험에 픽션이 더해져서 만들어진거라 봐요. 물론 자신의 이야기도 있는거죠. 그렇지만 몇 개의 거짓이 들어 가야 한다고 보는데 동의하시나요?
여 : 동의해요. 그렇다면 정말 자신만이 알고 있고 숨겨둔 이야기만이 진실일까요. 이야기가 되는 순간 거짓이 될까요?
남 : 다른 이야기보다는 진실이라고 보는데 사실 자신의 이야기에도 거짓이 있을 것 같아요.
여 : 자신이 허용되는 한에서죠. 보통 정말 감추고 싶은 건 말하지 않거나 거짓을 보태겠죠.
남 : 왜 그럴까요? 사실을 사실대로 우리는 말하지 못하는 걸까요?
여 : 음.. 이제부터 좀 길어질 것 같네요. 제 얘길 잘 들어보세요.
"그럼 후회 없다는 거죠? 잠을 자고 깨어나면 그녀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갑니다. 편히 주무시길"
"원하는 시간에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고, 때로는 기억이 안 날 수 있고, 사건의 순서도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시길. 아주 큰 사건은 변하지 않습니다. 간혹 기억하고 있을 만한 비트코인, 로또, 스포츠 경기 결과 등은 본인의 기억처럼 완전히 그때와 100% 맞을 수 없고 그 날처럼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시 아시죠? 영화 나비효과? 만약 큰 사건을 바꿔버리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깐요. 그리고 저를 또 만나지 못할 거예요. 중요한 건 돌아가는 이유를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그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
"자.. 잠.. 깐만요."
"늦었어요. 하나, 둘, 셋"
나는 잠이 들었다. 잠이 깨고 나면 모든 게 달라져 있으리라. 모든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불과 몇 달 전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다시 처음부터 그녀를 만날 것이다.
"아 참 영원히 잠들 수도..."
영원히 잠들 거라는 건 어렴풋 들었던 것 같다.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 전, 나는 홍대역 9번 출구에 서 있었다.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 것이었다. 어떤 우주의 에너지를 거슬러서 돌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곳에서 있고 나는 살아 있었다. 느껴왔던 꿈과는 다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많았고 그 틈에 껴 있는 낯선 이방인의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겉모습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옷은 드라마에서 봤던 옛날 옷이었다. 머리에 냄새도 나는 것 같고, 간지러웠다. 복장은 너저분했다. 온몸에 낯선 냄새가 코 끝을 찔렀고, 손에는 땅을 막 팠던 것 같은 흙이 묻은 호미, 그리고 신발은 계절에 맞지 않게 짚신이었다. 꽤 추웠음을 알게 된 것도 몇 초 되지 않아서 바로 알게 되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 갑자기 나타났으면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였을 텐데, 마침 엄청난 인파 틈에서 구석진 자리로 돌아온 게 어찌 보면 다행이었을 수도 있었다. 아마 분장은 할로윈데이 저녁 밤이라 의심되지 않았던 것 같다. 시대는 원하던 시간으로 돌아왔지만 개인의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시간으로 돌아간 듯했다. 나는 오래된 시대의 사람으로 돌아온 것이다. 역시나 완벽함은 없는 것일까란 자책을 하며 서둘러 기억하던 화장실로 찾아가 주위 사람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울을 봤다.
'뭐야... 정말 이게 나야?'
낯선 모습에 놀란 나는 겉으로 보이는 주름진 40~50대의 얼굴에 믿을 수 없었고, 온몸의 아픔에 한번 더 오래된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후회를 강조했던 마법사의 말에 나는 당연히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렇게 불과 몇 분만에 후회하게 되었다. 정말 멋지게 그녀를 보겠다는 생각은 이미 까먹은 지 오래라 그것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는 애초부터 기억에 없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겉모습보다는 여기에 다시 온 이유를 잘 기억하라는 마법사의 말이 기억났다. 하지만 이 모습으로는 희망이 없었다.
아마 2005년 10월 30일 아마 저녁 7시가 되면 그녀가 지나갈 것이다. 대학생 2학년 살짝 멋을 부리고 나왔던 친구들과 홍대역 9번 출구 앞 술집에서 본 그 시간. 그때 내가 거기 있었고, 너는 앞자리에 앉았다. 너는 너라는 것에 익숙해서 한번 더 너임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리고 다시 한번 너의 모습을 잠시 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
"아저씨.. 이거 떨어졌어요."
이렇게 우연히 아니면 지나온 시간을 돌려 너를 만났던 순간들이, 바보처럼 기억이 났다. 마치 운명인 것처럼 이런 모습으로 마주쳐도 그때와 같이 먼저 말을 거는 너를 정말 사랑 안 해도 되는 걸까. 이러니 첫눈에 반한 거지. 나는 백 퍼센트 이상형을 봤었거든. 나는 그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너'는 당황하며 휴지를 꺼내 주곤 눈물을 닦으라고 말해 주었다.
여 : 자, 여기서 진실이 있을까요?
남 : 네. 전부 제 이야기 같아서요.
여 : 동시에 제 이야기이고 하구요. 그 이후로 이야기 속의 '나'와 '너'는 어떻게 됐을까요?
남 : 글쎄요. 예전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변한 '나'는 '너'를 알아도 '너'는 '나'를 모르니까 애초에 만나지도 못하고 이별도 못할 것 같아요.
여 : 맞아요. 둘은 만나지도 이별도 하지 못해요. 결국 '나'는 변함없는 그때의 '너'를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구요.
남 : 안타까운 일이네요. 지어낸 이야기인 것을 알면서도 빠져드네요.
여 : 아픈 델 건드렸나요? 비슷한 경험이 있나 보죠?
남 : 하하하. 제가 그 이후에 이야기를 붙이고 싶어요.
그러니까 '너'는 휴지를 주고 '나'는 휴지를 받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버틸 수 없었다. 다시 너를 보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이런 모습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날씨가 춥네요. 휴지 고마워요. 즐거운 할로윈데이입니다."
남 : 잘 보낸 것 같나요?
여 : 글쎄요. '나'는 이제 어떻게 살게 될까요?
남 : 음.. 어떻게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어 할 거 같아요.
여 : 저도 그럴 것 같아요. 아마 마법사랑 사전에 돌아오는 조건을 공유했겠죠?
남 : 그런데 이건 누가 지은 건가요?
여 : 우리가 지었어요.
남 : 아.
여 : 글은 왜 쓰는 걸까요?
남 : 글쎄요 왜 쓰는 걸까요. 유명해지기 위해서?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면 이런 이야기들을 위해서?
여 : 그러게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해서가 아닐까라고 고민해봤어요. 이만 자리에 일어설까요?
남 : 오늘은 제가 맥주 쏘겠습니다. 제가 맛있는 맥주집 알아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