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나이트워크는 7월 밤 중 42km를 걷는 걷기대회인데 처음 참가는 2017년이었다. 벌써 3년 전이라는 게 조금 놀랍지만 나는 이 대회를 연속 세 번을 참가했었다. 사실 이런 고생은 나의 선택에 대해 끊임없이 이유를 묻게 된다. 세 번이나 했지만 확실히 기억하는 건 20km까지는 걸을만한데, 30km 정도부터 꽤 힘들어진다는 것이었다. 내 체력이 가장 전성기였던 2018년은 2017년보다 훨씬 짧은 시간으로 완주를 했는데 이러다가 내년에는 더 짧은 시간에 완주하는 거 아닐까라는 괜한 기대로 부풀었다. 하지만 2019년엔 30km에 컨디션 난조로 포기하고 택시로 귀가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왜 또 이런 고생을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처음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단순했다. 내 생일은 7월 29일인데, 2017년 7월 29일 (토)에 행사가 진행되었다. 완주하면 주는 메달엔 7.29가 찍혀 있었고, 나는 왠지 그게 생일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 이후 그때 만난 사람들이 걷기뿐 아니라 달리기도 자주 하는 것을 알았고, 나는 그들을 따라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 달리기를 한적도 없었고 그다지 좋아하는 운동도 아니라서 하지 않았다. 이래서 나는 계기가 중요한 것 같다. 사실 가장 큰 동기는 무라카미하루키의 <라오스에는 대체 뭐가 있는데요?> 여행에세이였다.
무라카미하루키가 자주 달리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마라톤도 하고 꾸준히 달리기를 통해 체력을 기른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러니까 사실 유명한 사람이 하는 거면 흉내라도 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합쳐져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아주 조금씩 나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미묘하게 달리기 실력이 늘었다. 5km를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35분을 넘었는데 언젠가부터 30분 아래로 단축시켰다. 걷는 시간을 조금 줄였고 뛰는 시간을 조금 늘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10km 마라톤대회도 참여해봤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정말 프로 같은 차림새의 선수 느낌 나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처럼 초보도 많아 보였다. 시작하니까 사람들은 역시나 아주 잘 달렸고, 나는 걷다 서다를 반복하며 뛰었다. 사실은 굉장히 여유 있는 척하며 일부러 천천히 뛰는 척을 했다. 너무 열심히 하고 숨이 차면 조금 없어 보이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유 있는 척하면서 뛰는 순간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종영한 이태원클라쓰의 <시작>을 들으면서 뛰었는데 와 이건 뭐지 지금 드라마 주인공이 된 건가 라는 생각을 뛸 수 있게 된다. 작은 세상 속에서 나와의 약속, 경쟁 그리고 몇 번의 반복되는 기록들이 다시 달릴 이유를 만든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니까 달리기의 꽃,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었다. 풀 마라톤을 도전한 건 3번이었는데 첫 번째 도전은 28km에서 다리를 쩔뚝거려 달릴 수 없어서 포기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몸도 안되었고, 무릎 상태도 엉망이었다. 역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나는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대회였다. 두 번째 도전은 처음부터 못 할 거란 생각을 하면서 뛰었다. 10km가 지나갔을 때 생각보다 몸이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작년의 몸과 봤었던 거리를 생각하며 뛰었다. 문제는 배가 너무 고팠고, 곧이어 20km가 지나자 무릎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도 1년 동안 이걸 참여하기 위해서 열심히 뛰었는데 무릎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을 보면 뛰는 자세가 안 좋은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32km에서 포기했다.
세 번째 도전은 에너지젤 네 개를 챙겨서 참여했다. 에너지젤의 효과는 정말 엄청난데 체감상 30분 정도는 없었던 힘을 짜내어준다. 첫 번째에 함께 참여했던 동생은 세 번째 나와 함께 다시 도전하게 되었는데 이번엔 둘 다 완주했다. 사실 혼자였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가 나보다 체력이 좋고 뼈가 튼튼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느 정도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둘이 같이 페이스 조절하면 2년 전과는 다르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동안 쌓아온 경험들이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심이 있었다. 거기다가 각자 손에 든 네 개의 에너지 젤을 믿었다.
물론 그날도 20km가 지나자마자 뻗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 먹으라고 손에 쥔 에너지젤을 뜯어서 몇 킬로를 더 간 것 같다. 작년엔 32km는 갔는데 이번엔 그 정도도 못 가서 이렇게 힘들어하니 더 이상 여유 있는 척할 수 없었다. 같이 참여한 동생은 저 멀리서 보이다가 이젠 안 보이는 거리가 벌어졌고, 나는 그렇게 뒤에서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다시 커져가기 시작했다.
포기해야 되는 상황까지 갈 정도로 무릎이 다시 아팠는데 왜 계속 달렸는지 모르겠다. 같이 참여했기 때문에 완주하고 싶어서? 아니면 정말 이번 기회가 아니면 못 할 것 같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에너지젤을 계속 먹었다. 정말 이상한 건 플라시보 효과인지 정말 에너지젤인지 모르겠지만 에너지젤을 한 번 먹을 때마다 500m는 달릴 수 있었다. 1km의 거리는 지옥과 같았고 37km 표지판을 볼 때 하마터면 울 뻔했었는데, 완주한 것도 아니면서 괜한 감정 같았다. 사실 왜 이렇게 또 고생하나 싶어서 반환점을 도는데, 먼저 가고 있던 동생이 걸어가고 있었다.
달리기 대회는 흔히 대회 뽕이라는 것을 느끼는데, 이 재미는 사람을 추월하는 재미와 노래를 듣는 것이 있다. 그리고 왠지 기록을 단축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들 때문에 흔히 대회 뽕이라고 한다. 그만큼 평소 연습을 안 해도 대회에서 기록이 좋아질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동생을 본 순간 다시 달릴 수 있었다. 어깨를 쳤고 나는 한참을 뛰었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몸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달릴 때 왠지 한강나이트워크가 생각났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힘들고 힘든 것을 힘들게 할까요 이유가 뭘까요 알려주세요 라는 생각.
정확히 40km에서 절대 달릴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동생은 다시 저 멀리 앞으로 가서 보이지 않았고, 나는 끝까지 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계속 걸었다. 사실 걸음도 어떻게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2.195km가 내 생에 가장 긴 거리였던 것 같았다. 결국 중도에 포기한 사람 말고 끝까지 완주한 사람은 72세 할아버지가 마지막 선수였다. 나는 72세 할아버지보다 1순위가 더 높게 완주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것은 5시간 안에 들어오지 못했던 것도 있었고, 역시나 풀마라톤을 계속 같은 페이스로 뛰지 못하는 몸에 있었다. 물론 그러지 못할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만, 그럼에도 이런 고생은 내 체력과 정신력과 인생과 철학,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라 생각하여, 가급적이면 기꺼이 시간을 내고 투자해서 다시 열심히 하고 꾸준히 해서 잘하고 싶어 져서 또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