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春書
오래전부터 꿈속에서는 형이 나올 때마다 끔찍하게 절규한다. 그때 들리는 비명은 숨 막히도록 괴로운 모습이다. 형의 울부짖음을 맞닿을 때면 나의 울부짖음과 같은 아픔을 준다. 그래서 괴로움을 일부러 맞이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형을 만나면 흔 들리는 나를 잡아 주는 듯했다. 일본에서, 또 상해에 유학하는 동안에도 공부했던 나는 늘 글을 썼다. 처음으로 책에 내 이름이 실렸다. 그때 아버지와 형은 비싼 돈으로 유학 가고 하는 일이 겨우 글이라고는 했지만, 조선일보에 입사하니, 이제야 사람 노릇하다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우리말을 잃은 조국에서 기자란 괴롭다.
검열, 검열, 검열.
1919년 3월 1일 이후, 일본은 달라졌다. 자유롭게 책을 출판하는 정도는 허용했다. 서민의 삶들은 온종일 일해도 2원도 못 버는 세상살이.
그나마 운수 없는 날은 허탕이라 굶어야 하는 삶들.
이 더러운 세상에 내가 일본에 아첨하는 것은 같은 조선인을 죽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진실의 목소리를 담자. 그것이 옳으니까. 그리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적어도 이 더러운 세상을 벗어날 수 있으니까. 내 글이 좋다던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심장이 고통스러워 새벽에 발작하며 깼다. 옆에 놓았던 약을 집고 물을 마신다. 몇 분이 흘렀을까. 몸은 안정을 찾아서, 다시 잠들려면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밤은 그만 글을 써야 한다. 한글 출판이 어려워졌다며 많은 이들이 발길을 돌렸다. 아픈 것이야 약으로 버틸 수 있겠지 만, 지금의 이 현실을 버틸 수 있을까.
형이 보고 싶을 때마다 형의 편지들을 본다. 이 편지들만큼은 내가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 한다.
진건 보아라. 오늘은 온종일 비가 왔다. 그래서 오랜만에 편지 쓴다. 겨울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런 순간들을 접하면 아무리 나라도 힘들더구나. 무색하게도 온통 봄 천지이다. 눈을 뜨면 바야흐로 봄이란 것을 알지만, 어쩐지 이곳은 늘 겨울이다. 산에는 들꽃들이 피는데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찬란한 봄이 무색하구나. 진건아. 이곳은 우리가 있으니 아버지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거라.
상해의 작은 인쇄소에서 집필한 책이 드디어 나왔다는 소식에 한 걸음 만에 달려갔다. 이 전의 생각, 이 전의 고민, 이 전의 괴로움들이 모두 사라졌다. 책이란 것은 온전한 나를 보여주는 시간을 나타낸다. 얼마나 부끄러운 심정으로 글을 쓴 시간인가. 얼마나 이 심정을 고대하며 글을 쓴 시간인가. 발걸음이 가볍다. 두 손 가득 품은 책이 따뜻하여, 더욱 품었다. 이제 조선으로 가자. 아버지가 살아 계신 조국으로
거리마다 일장기가 걸려 있었다. 달라진 풍경은 나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런 광경이 자연스러워지지 않았나.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하고,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고, 일본에서 가져온 음식 과 놀이와 생각들을…. 그러다 보면 원래의 내 것이 무엇인지, 또는 원래 있었던 것은 맞는지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을 잊고, 살아 갈 텐데 그때는 무엇이 존재를 증명할 것인가 일본어로 된 글들.? 아니면 한글들일까. 존재가 존재를 무의미하게 하는 일들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 모든 것을 기록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기록할 것이다. 나의 기억이 기록이 되고,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서라면
형이 투옥되었다. 비를 보며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하늘은 더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떤 그림자일까 생각한다. 그해 겨울에는 많은 사람이 죽었다. 굶어 죽었고, 추위에 죽었고, 일본이 죽였다. 눈을 뜨면 바야흐로 봄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보냈을 때는 겨울이었다. 형은 무엇을, 어떤 봄을 보았던 것일까. 대체 어디서부터..
비가 멈추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무엇을 보고 있는건지 초점이 없는 눈빛으로 그저 숨을 쉰다.
형이 돌아오던 날,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아들을 보러 아버지는 뛰쳐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해 봄의 사람들은 더는 살지 못해 자살하거나, 도망을 다녔다. 또는 병에 걸려 치료하지 못해 죽었다.
겨울 보다 잔인한 봄이었다.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내가 아는 사람들, 이웃집 아이, 노인들 아버지, 형 모두 죽었다. 마을엔 결핵이 돌았다. 두 개의 병마와 싸워야 하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나는 도망치며 살았다.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는 죽었다. 내 분노 또한 살아야 한다는 마음에 죽어가고 있었다.
진건 보아라. 동아일보에 들어갔다는 소식 들었다. 너는 그렇게 부끄럽지 않을 글을 쓰거라. 바른 목소리만이 독립을 위한 길이다. 그것이 자랑이다. 글은 우리보다 강하다. 상해는 지금 혼란과 안정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동지라고 말하지만, 서로를 믿지 못한다. 십 년간의 믿음이 깨진 충격이 아직도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구나. 거기 있는 동안은 아버지를 잘 모시거라. 이곳 상황이 정리되면 아버지에도 찾아 봴 것이다. 곧 얼굴 보러 가겠다.
믿음이 깨졌다는 말은 배신이라는 의미인가. 친일로 돌아선 많은 이들이 같은 조선인을 위협한다. 믿을 수 있는가. 누구를? 그들을? 부끄럽게 살아남은 그들이 동지를 죽이고 살아 남았다. 형을 지키고 싶다. 이 글들이 이 이야기들이 독립에 힘이 될까 물어보고 싶어도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아버지도, 형도..
편지. 이 편지들만이 유일한 대화 거리.
술을 마시면 조금 가까워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는 슬픈 밤을 보내며, 우셨다. 내 안에 어떤 분노가 있었을까. 형을 배신한 동료? 힘없는 나의 모습? 조국. 나라를 뺏겼다. 우리의 글들, 우리의 정신, 태극기, 무궁화 이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글들을 쓴다 하는 저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강자에 붙는 모습들을 본다.
- 진건 자네야말로 , 답답하게 왜 이러는가 ? 우리도 살아야 할 거 아닌가 기사 , 소설 그 편집권 누구한테 있나 ? 그래서 그 조선일보 나왔고 , 자네도 할 만큼 했네 . 이 정도면 된 거 같으니 , 그만 고집부리고 좋아하는 글들 걱정 없이 쓰고 싶지 않은가 나도 쉽게 결정한 것 아니고 마음이 무겁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하네 .
이런 놈들이 나의 형을 죽인 것일까. 아닌가. 친일해서 같이 잘 살자고 제안하자고 했으니, 형을 죽인 밀정이 이러지 않았을까. 나같은 글쟁이도 죽일 것인가 너희들은? 이를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자는 또 생길 것이고.. 나는 살아서도 이유를 알지 못 할 내 글을 써야 한다.
형의 목소리가 그립다. 언제였을까. 죽어 가는 그때 그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독립의 희망을 보았을까.
술을 마신다. 울분이라는 것은 쉽게 토해지지 않는다. 오늘 밤은 허공에다 욕을 하고 싶다. 그러나 무엇을 욕해야 하는가. 아무도 모른다. 이 세상은 답을 주지 못한다. 아버지는 그래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무엇에 분노를 해야 할지 모른 채.
너는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거라. 너는 펜을 들어라.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 이 땅 위에서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내 안이 괴로웠다. 이따금 악몽 속에서는 내가 잡고 있는 것을 놓치면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떨어진다. 하염없이 깊은 그곳은 나올 수 없는 지옥에 빠지면 영원히 잠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진건 보아라.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잘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발걸음이다. 우리는 우리의 독립을 위해 너는 부끄럽지 않은 글들을 계속해서 남기거라. 글들이야말로 위대한 기록일 테니. 우리는 다들 그렇게 믿고 있다. 걱정은 말거라. 언제나 그랬듯 아버지를 잘 모셔라. 얼마 전 소설 잘 보았다. 자랑스럽다.
그때 형은 짐작한 것이다. 무엇을 시도했건, 실패했었을 것이다. 형이 실패한 것 그것은 목숨과 연결된다. 글은 그렇지 않다. 실패해도 살아갈 수 있고 선택을 할 수 있는 세상. 나를 방해하는 것들은 오로지 나의 마음뿐. 그래서 나는 분노를 할 자격이 없는가.
나는 분노를 할 자격이 있는가..?
나치가 집권한 독일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손기정 선수는 일장기를 가슴에 새기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멀리서 전해 온 그의 사진을 보았다. 이보다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태극기 대신 일장기가 걸려 있으며 가려지지도 않는 묘목으로 부끄럽게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선명히 보이는 일장기가 자꾸만 가슴을 친다. 이 사진으로, 그들이 의도한 대로, 그가 대한을 위해 뛰었던 게 아니라, 금메달을 딴 것은 그 일본이라는 국가의 한 사람이 금메달리스트임을 알려야 할까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더라면….
나는 분노를 할 자격이 있는가..?
너는 조국을 위해 달린 것이다. 그러니 너는 달리기를 하거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일장기를 가슴에 새기고 달린다 해도, 너는 대한의 사람이니. 그 날 일장기가 지워진 신문이 보도되었다. 짜릿한 승리감. 고작 일장기를 지웠을 뿐인데 지워야 할 것을 지웠다. 글만 쓰던 손이 대한에 조금 더 가까이 가는 만큼, 아버지와 형의 모습도 진해져 간다. 나도 이제 마음이 조금 편해진 걸까 이대로 죽으면 편안해질까. 조국과 일본은 함께 나에게 책임을 물었다. .
‘일장기말소사건 - 동아일보 현진건 부장 1 년 실형
일장기가 지워진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해직을 당한 뒤 나 또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 않아야 할 일, 해야만 했던 일들을 너희에게 묻겠다.
- 일본을 위하여 글을 쓰는 자네들은 대체 어떤 마음인가 , 그래서 지금 편한가 . 그 글들 나도 읽었네 . 나에게 온통 빨간 글씨로 보인다네 . 그런데 그 글들을 나보고 쓰라고 하니 나 는 쓴웃음만 나올 뿐이네 . 나 또한 조선인의 피로 대한을 죽이란 말인가 . 글들 쓸 때마다 비명이 들리지 않는가 . 그렇게 두 귀를 막고 두 눈을 가리면서 쓰는 글들은 역사는 알 것이다 .
이곳은 가난하고, 병든 슬픈 사람들이 많다. 한글을 모르고 세상에도 밝지 못하다. 건강한 자는 중역과 부실한 밥으로 점점 병이 생겨 환자가 된다. 사람들이 병이 생기는 것은 비위생적인 생활환경과 고된 노역이다. 계속해서 밥에 벌레가 나온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괴로웠지만 참았다.
- 젠장 , 형씨는 이곳에 있을 양반이 아닐 거 같은데 어찌 이곳에 왔소 . 글도 잘 알고 , 배움도 했으니 잘 살 거 같더니 글을 좀 아시오 ? 내 여기 잘 있다고 편지 하나 보내고 싶어도 글을 모르니 , 글 한 번 써주시면 안 되오 ? 그 글 좀 쓴다고 더럽게 잘난 척 하기는 아니면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도 안 보이는가 ?
그럴 리가 없다. 내가 그에게 무슨 글을 써줄 수 있을까. 그들이 불러주는 대로? 아니면 편지를 보내려면 간수를 거쳐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쓸 수 있다. 이곳에서 잘살고 있다는 내용뿐, 그 외에 내용을 쓰면 독방 또는 더 심한 노역에 불려 간다. 독립운동을 했던 자는 쓸 수도 없다. 나는 일장기를 지워 이곳에 왔다. 편지를 쓸 사람이 있는가. 일장기로 물든 내 동료들?
- 아우야 , 너는 한글을 조금 읽을 줄 아니까 이 편지 잘 보고 읽어서 가족들에게 말해주어라 . 이제 겨울이 지나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고 들었다 . 그러니 이 긴 겨울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해다오 . 하느님이 지켜 주고 있을 것이다 . 하느님을 믿는 것이 이곳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 감옥에 오래 있으니 한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왔 구나 . 얼마 전부터는 글도 알려주고 이제는 기역에서 지읒까지 쓸 줄 안다 . 배운지는 얼마 안 됐지만 글을 배우는 게 이토록 즐거운 일인지 이곳에서 배운다 . 언젠가 내 손으로 쓰는 글을 보여주고 싶구나 . 보고 싶구나 .
죽음에 가까운 사람이 불러주는 대로 조금은 고쳐서 쓴 편지였다. 이 사람은 곧 죽을 사람이다. 글을 배우는 것이 이곳 사람 중 가장 빠르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 사람의 사연은 모르지만, 그의 편지를 대신 쓰면서 알게 되었다. 이 사형수는 글을 깨우치기에 바쁘다.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 글들을 나는 편하게도 누렸던 것인가.. 한글을..
어쩌면 이 편지는 가족에게 전해지기 전에 간수가 태워버릴 수도 있다. 나와서는 안 될 내용, 써서는 안 될 내용이 들어 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따뜻한 햇볕이 엉망이 된 발을 녹인다. 겨울을 버티지 못하면 발끝이 잘려나가고, 발이 썩어 나간다. 지독한 겨울을 버틴 사형수는 그동안의 편지를 꾸역꾸역 쓴 후 나에게 보여준다.
- 부인, 우리가 만난 봄에 다시 볼 수 있어서 기쁨이 가득하오. 글을 길게 쓰고 싶지만, 아직 배움이 부족하여 짧음을 이해하시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마음을 담는 정도는 퍽 되지 않소. 이렇게 좋은 것을 일찍이 배우지 못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이제는 조금 후회가 되는 건 더 일찍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면 부인 가는 길에 위로라도 될 것 같은데.. 짧은 봄날에 그 긴 시간이야말로 나에게 화양연화 였다는 것을 기억해주시오. 부인, 그곳은 좀 어떠시오. 조금 외롭진 않소? 길은 하나뿐이고 내 고생해 아픈 다리는 느린 걸음이 라지만 부인을 만 날 생각에 이렇게 가슴이 뛰고 있소. 세상은 억울하고 병들더니 어느새 나 또한 그렇게 병들어 있었소.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글을 배우는 날에 난 부인과 함께 살아있음을 느꼈소. 이렇게 글로 안부를 전하니 퍽 좋소. 글을 알려준 선생에게 기도하고 싶소. 이곳을 나가면 정말 잘 살아주시라고. 이 글들을 오랫동안 지켜가기를 아주 멀리서 전해지는 날엔 나를 만나면 꼬옥 안아주시오. 답신은 그것으로 족하오.
- 선생 , 그동안 감사했소 . 부인은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병에 걸려 죽었소 . 이 편지는 대신 간직해주시오 . 처음 선생을 만날 때가 어제 같은데 . 한 번쯤은 이렇게 글을 남기고 싶었소 . 나는 죽어도 영원히 남았으면 하는 내 마음들이 염치없이 이렇게 부탁합니다 .
울 것 같지 않던, 눈물이 없을 것 같던 사내가 운다. 무엇으로 쓴 건가 싶더니, 이 편지에 그의 혼이 담겨 있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많은 글이 머리를 스쳐 간다.
- 다시 언론기관에 취직할 일은 없을 거요 . 하물며 독립에 대한 글들도 쓰지 못할 것이고 , 당신이 쓰는 글들은 모두 검열을 통할 것이고 , 다시 구속될 경우 가중처벌을 받을 것을 서명하시오 . 또한 지금까지 했던 일들 , 있었던 일들 모두 시말서에 작성하시오 .
봄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이 여기 있다. 내 부모, 사랑하는 형제도, 사랑하는 부인도 생이별을 겪는다. 이 나라의 백성들, 나라를 잃었다. 무참히 슬픈 것들이 파고들어, 몸을 감싼다. 펜을 들 힘도, 더는 그들에 맞서 싸워야 할 생각도 남아 있지 않다. 연재하던 소설이 강제 중단당한 날, 나는 비로소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 이후로 서서히 죽어간 건 나의 육체. 그러나 영혼은 아니다. 1939년 3월 또 계절은 변하고, 스쳐 갔던 그 사람들이 하나둘 떠올린다. 그래도 역사에 점 하나 새겼으니, 진정 봄이라면 나는 죽어서도 강제 중단된 소설을 쓸 수 있 겠다. 그리하여 죽기 전 입춘서 하나 대문에 걸어본다.
입춘서
봄이 왔으니, 어제의 추위를 기억하라.
마냥 기뻐하지 마라.
봄을 시샘하는 겨울이 봄을 위협할 때
잠시 겨울이라고 착각이 들 때쯤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얼어붙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시냇물은 조용히 그곳에 흐르고
얼음이 깨지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