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되고 더위와 장마라는 핑계로 게으르게 지냈다. 독서도, 달리기도, 글쓰기도 이 전의 동력이 아니었다. 나는 느슨해진 하루하루에 긴장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7월은 미국주식과 국내주식의 폭락이 지속되고 있다. 그 결과로 나는 느슨했던 하루하루를 긴장으로 살고 있다.
어찌어찌 7월의 소설도 내 기준의 초고라고 할 수 있는 75매 정도 분량으로 마감했다. 초고를 쓰고 나서 친구와 어제 1박 2일 강화도여행을 갔다가 왔다. 강화도는 살면서 다섯 번 정도는 간 것 같은데 네 번은 사람들과 갔고 한 번은 혼자 갔었다.
과거에는 혼자 여행을 자주 갔다. 강화도에 혼자 간 것은 혼자 많이 다녔을 때였다. 혼자 어딘가를 갈 땐 보통 버스를 이용했다. 이른 아침 버스를 타기 때문에 잠이 많은 나는 버스에서 금세 잠이 들었고, 휴게소에 들르면 가끔 휴게소의 간식을 사 먹곤 했다. 그리고 다시 자다가 일어나면, 익숙했던 동네의 풍경, 지하철로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낯 선 동네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버스에서 나는 아주 잘 잤기 때문에 이대로 계속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지방의 터미널의 풍경은 비슷비슷한 이미지를 남긴다. 나는 백팩을 둘러메고, 잠깐동안 터미널 안의 의자에 앉는다. 커다란 티브이 속엔 주로 정치인들이 나오는 뉴스가 나오고 있고, 자막이 크게 쓰여 있다. 밖을 나가면 그때부턴 철저히 혼자가 된다. 운전을 배운 후로는 쏘카를 이용해서 다니곤 했는데 그전에는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의 배차시간은 알려주는 안내보다 늦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여유를 가져야 한다. 어쩔 땐 더 일찍 올 수도 있다. 문제는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내가 지금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버스는 무심히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시내버스는 차갑다. 특히 시골의 버스는 더 차갑다.
시내버스를 타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주로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은 오랜 시간 그곳의 삶을 살면서 대개 비슷한 스타일의 옷과 머리를 하고 있다. 버스에서 보는 거리의 풍경들을 보면 짧은 시티투어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쏘카를 이용하게 되면서 그런 풍경을 보는 것과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 낯 선 사람들이 존재하는 불편함은 사라졌다. 나는 익숙한 듯 어디를 가든 카페를 가게 되었고, 가능하면 괜찮은 음식점을 찾았다. 버스만 이용할 때는 눈에 띄는 카페, 걷다가 들리게 되는 음식점을 가야 했던 것과는 다른 점이었다.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편리함? 아니면 불편함?
나는 불편함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때는 운전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운전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걸음과 버스를 이용했던 것이다. 불편함을 원했다면 쏘카를 한 이후에도 쏘카 대신 걸음과 버스를 선택했어야 했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더 이상 혼자여행을 가지 않게 되었다. 어디론가 떠나기보다는 가능하면 한 곳에 머무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자꾸 여행여행여행거리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스페인을 가고 싶어 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결국 스페인 대신 스웨덴을 가게 되면서 결말이 났지만, 어쨌든 떠난다. 소설은 여행, 7월을 마무리하는 글은 여행.
아무래도 혼자 여행을 갔다 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 단편소설을 준비해야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노인이다. 노인의 생각은 살아가는 것에 가까울까, 죽어가는 것에 가까울까. 죽어가는 나이가 되어간다고 해서 죽어가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 그건 내 착각이 아닐까.
아니, 죽어 가는 것이라고 해서 부정적일까?
잘 죽어 가는 노인이라면 오히려 살아가는 노인보다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곧 8월이 된다. 8월은 진짜 여름일까 아니면 가을이 되려는 계절일까.
나는 8월엔 어디쯤에 서 있을까.
사실 지금도 어디쯤에 서 있는 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