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일에 한 일
작년 가을이었나. 유튜브 채널 <요가 소년>에 올라와 있는 수리야 나마스카라 108배 수련 영상을 발견한 뒤로 2025년 1월 1일에 꼭 108배 수련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뭐 대단한 이유 같은 건 없다. 그냥 첫 시작을 요가로 하고 싶었을 뿐.
마침내 (전날 윤 씨 때문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채로) 2025년의 아침이 밝았다. 오전 9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연재 중인 브런치북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지 이리저리 계획을 세우다 전날 못한 2024년 목표 회고 작업까지 마치고 나니 오후 1시가 다 되었다. 살짝 배가 고팠지만 오히려 공복인 지금 빨리 수련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른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선 후 유튜브 영상을 클릭했다.
<요가 소년> 채널에 올라온 108배 영상은 수리야 나마스카라 12회씩 총 9세트로 챕터가 나뉘어 있었다. 댓글들을 보니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쭉 이어서 하는 사람도 있었다. 스트레칭과 사바아사나까지 포함한 재생시간은 무려 2시간 30분! 그래도 평소 태양 경배 자세로 30분 정도는 수련해 본 적이 있었기에 중도 포기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수련은 3세트, 즉 36회까지 완료한 시점에서 일시정지되었다. 너무 배가 고프고 당이 떨어져서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매트에서 뛰쳐나와 부리나케 점심을 먹었다. 이때가 2시 반. 파스타를 먹었더니 솔솔 졸음이 와 소파에 누운 채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을 틀어놓고 22의 대사를 따라 했다가 졸다가를 반복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It's all right~" 노래가 나오는 타이밍에 뒷정리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나니 오후 5시. 창문에 노을빛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다시 <요가 소년> 유튜브 채널로 돌아가 이어서 4세트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소화도 됐겠다, 낮잠도 잤겠다, 4세트, 5세트, 6세트까지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자세에 집중했다. 창문을 보니 바깥은 어느새 해가 져서 깜깜했다. 72회까지 마치고 7세트를 시작하려는데 이때부터 몸이 맛이 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헉헉, 윽윽 소리를 내며 겨우 동작을 이어갔고, 다운독을 할 때마다 그만할까, 포기할까 생각을 계속했다. 게다가 영상 속 요가 소년이 다운독 자세에서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덕담을 한 마디씩 해주는데, 솔직히 미안하지만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아니, XX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빨리 하지... 아오.
아까 36회까지 했을 때 이렇게 힘들었으면, 그랬으면 얼른 포기했을 거다. 하지만 70회까지 했는데, 앞으로 약 30번 정도 더 하면 되는데, 여기서 멈추기에 너무 아까웠다. 중간에 물도 마시고 속도도 늦추고 숨도 고르는 등 틈틈이 쉬면서 아득바득 84회까지 완료했다. 8세트부터는 뭐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기어서 한 느낌이다. 자세가 무너졌고, 영상에서 나오는 좋은 말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으로 이렇게 외칠뿐이었다. ”조금만 더 버텨. 조금만. 기어서라도 해. 하기만 하면 돼.“ 영상 속 요가 소년의 구호가 아닌 방탄소년단의 <Not Today> 가사를 읊조리며 96회까지 완료했다.
날아갈 수 없음 뛰어. 뛰어갈 수 없음 걸어.
걸어갈 수 없음 기어 기어서라도 gear up.
9세트가 시작되자 마법이 펼쳐졌다. 이제 진짜 정말 딱 12번 남았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7세트, 8세트를 할 때보다 덜 힘들었다. 이때부터는 무념무상 그 자체였다. 끝이 보이고 끝난다는 것이 너무도 명확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마지막 108번째 수리야 나마스카라를 마친 줄도 몰랐다. 이렇게 끝이라고? 벌써? 더욱 신기한 건 성취감이나 뿌듯함도 들지 않았다. 가위로 끈을 싹둑 자르듯 “갑자기 이렇게 끝났다고?”에 가까웠다. 108배를 마치고 나니 오후 6시 30분 정도였던 것 같다.
이후 스트레칭 동작을 하면서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정말 끝이다. 이제 쉬면 된다.” 108배를 내가 해냈다, 성취했다는 생각은 신기하게도 1%도 들지 않았다. 그냥 이 과정이 끝났다는 사실, 이제 편히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뿐이었다. 사바아사나까지 하고 나니 7시가 되었다.
매트를 정리한 후 바닥에 앉아 물을 마시다 문득 108배의 모든 과정이 하나로 수렴되는 듯했다. 그냥 하는 것. 그냥 사는 것. 6세트까지 할 만하다고 느끼자마자 7, 8세트에서 바로 고비가 찾아왔다. 우리도 삶이 살만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느닷없이 벼락을 맞곤 한다. 그러나 삶의 궤도에 올라탄 이상 계속 가는 길밖에 없다. 뛰든 걷는 기든 어떻게든 그냥 9세트까지 가면 된다. 그걸 기억하자. 성취감을 느끼기 힘들어서, 성장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괴롭고 힘들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더는. 뭘 이루고 성취하려고 요가 매트에 선 게 아니듯 매사 반드시 성장하고 뭘 이뤄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건 나의 욕심이다. 버티는 경험, 버티는 감각이란 게 이런 것이겠지. 진짜 원하는 것을 하려면 지금은 버텨줘야 한다. 7세트, 8세트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반드시 끝이 난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