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공부가 여자를 자유케 하리라

by 이애리

사진: UnsplashDocumerica


"XX아, 엄마 회사 가지 말고 집에서 놀까~?"



귀여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며 동생이 말했다. 조카라는 존재는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느끼게 해 주었다.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다짐. 이게 사랑의 속성이겠지. 이 아이가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될수록 사랑의 힘은 더욱 공고해지리라 확신한다. 이모가 이럴 정도면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애가 태어나면 막 세상이 바뀐다고들 하잖아. 진짜 그래?" 친구는 아이가 (엄마에게) 주는 사랑이 너무 순수하다는 말도 했고 대신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이 정도의 감정이 드는 사랑은 없었던 것 같다고.


조카는 막 생후 180일을 넘겼다. 그 말인즉슨, 동생의 육아 휴직 기간도 절반이 지났다는 소리다. 몇 주 전 직장 상사의 호출로 미팅을 가진 이후 동생은 더욱 고민이 많은 듯 보였다. 조카를 보러 가는 차 안에서 "많이 힘들었는지 어제는 내 품에 안겨서 울더라"는 엄마 말을 들으니 동생이 안쓰러운 동시에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혼자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각자 결혼하기 전, 3년 정도 우리 자매는 같이 살았었는데 당시 동생은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다. 심심하다고 주말 출근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 도대체 저 사고방식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저 정도로 일에 미쳐(?) 있어야 고속 승진에 고액 연봉을 받는 건가 싶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집에서 논다"는 말이 나왔다. 무슨 맥락에서 저 말이 나왔는지 여성이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지?




고갈된 인풋을 채우기 위해 중고등학교 시절에 드나들었던 시립 도서관을 찾았다. 외관은 10대 때부터 봐온 모습 그대로였지만 내부는 세련된 북카페처럼 바뀌어 있었다.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느끼며 (이런 감각을 꽤 좋아한다) 대출하려던 책을 검색했다. 그 책은 300번대로 분류되어 있었고, 원하는 책을 찾은 후 고개를 들자 눈앞에 페미니즘 도서들이 촤르르 꽂혀 있었다. 아, 이건 못 지나치지. 몇 년 전부터 독서 목록에 올려놓았던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꺼내자 다음 책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제목이 눈에 띈 건 며칠 전 들었던 동생의 말 때문만은 아니다. 기혼자였을 적 광화문 교보문고를 돌아다니다 신간 에세이 매대에서 이 책을 만났었다. 제목과 표지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럼에도 읽지 않았던 건,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거나 억눌러왔던 분노에 압도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초판 1쇄 발행일이 2020년 5월이니, 적어도 이 책을 발견했을 땐 부부 갈등이 폭발하기 직전이었거나 아님 한 차례 폭발 후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던 시기 둘 중 하나였을 테니.


책을 고를 때 반드시 목차와 서문을 확인하는데 만약 저자의 논거가 모성이나 엄마의 역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일하는 여성과 전업 주부를 갈라서 생각하지 않고 양쪽의 입장을 모두 고려했으며 이렇게 나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를 여러 가지 참고 문헌을 통해 밝히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자본주의에 대해 너무 무지했으며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저자 마리아 미즈는 자본주의의 화려한 모습을 떠받치고 있는 3대 요소로 여성, 자연, 식민지를 꼽는다. 자본이 상품을 팔아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천연자원이 필요한데, 이 두 가지 요인을 만들어내는 하위 요인이 여성과 자연, 식민지라는 것이다. (p.136)


그런데 세상 일이 단순하게 흑과 백으로 나뉠 수 없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발현된다. 자본주의의 파괴력이 의도치 않게 성차별이라는 악습에 균열을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부분을 읽고 정혜윤 작가의 <숲 속의 자본주의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내가 자본주의의 덕을 보고 있는 것도 맞고, 자본주의가 여성이 성별 분업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촘촘하게 덫을 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별 분업이 전근대의 잔재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본질 그 자체(p.138)"라는 말이 얼마나 섬뜩하던지. 그때 왜 그렇게 숨이 막히고 영혼 없는 인형이 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었는지 과학과 논리를 기반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이제야 찾았다.




잠깐 딴 길로 빠지면 페미니즘, 비거니즘, 생태주의, 다원주의 등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모두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있다. 그러다 보니 심리학 문헌들을 공부할 때도 인간의 모든 정신 작용을 오로지 뇌과학으로 설명하려는 논조(더 넓게는 과학만능주의)를 접하면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방금 어떤 출판사의 신간 소개 뉴스레터에서 "자신을 아는 일은 내면 성찰이 아니라 뇌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문구를 읽고 그랬다. 자극적인 마케팅 표어에 불과할 수도 있고 직접 책을 읽으면 논조가 다를 수도 있겠으나 모르겠다. 진짜 과학자라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절대적 진리 따윈 없다는 태도가 기본 아닌가. 양자역학 이론이 있다고 해서 뉴튼의 고전역학을 폐기하는 게 아니듯이.



다시 돌아와서, 저자는 자신의 제1정체성을 주부이자 엄마로 상정하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나와 생각이 다른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영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한 때 비슷한 정체성을 공유했던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면 이것도 자산이지 싶다. 그리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수많은 병폐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는 생각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가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강렬하고 끈질기고 일관되게 권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명쾌하게 이해된다.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폭의 이윤이 유지되어야 하고, 이윤 유지를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저임금을 주어야 하며, 노동자에게 저임금을 주면서도 노동자가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일을 공짜로 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에 아내라 불리는 ‘주부’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일거에 무너질 것이다. 주부가 남편인 노동자에게 해주던 온갖 종류의 무상 재생산 서비스가 사라지면 노동자는 그 모든 서비스를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할 테고, 그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임금 인상이라는 결과를 낳을 테니. (p.185)


결국엔 선택과 책임이다. 비혼이든 기혼이든 이혼이든 개인의 선택이고, 선택을 했으면 책임지고 떳떳하게 살면 그만이다. 기혼 여성을 가부장제의 부역자라며 공격할 필요도, 비혼 여성을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돌을 던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사회가 왜 자꾸 여성끼리 싸우게 만드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연대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을 것 같다. 개인이 사회를 바꿀 순 없어도, 덮어놓고 당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모여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면? 역사책을 들춰볼 것도 없이 바로 얼마 전까지 그러한 힘이 가시화되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책임은 모든 게 내 잘못이라며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인정하되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동생이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할 테지만 고려사항에 남편과 딸 말고 동생 본인도 포함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스스로 '집에서 논다'고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 아내, 엄마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꼿꼿하게 서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든 생각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겠다, 였다. 혐오나 차별적인 말을 들었을 때 속에서 불이 들끓는데 무어라 말도 못 하고 표정만 일그러지던 지난날의 내가 안타깝다. 저자도 강조한다. 확실한 주관을 갖지 않으면 통념적인 말들에 무너진다고, 사고의 강건함을 갖추어야 흔들리지 않는다고. 사고의 강건함을 갖추기 위한 길은 공부와 성찰뿐이다. 뇌 시스템 파악이 아니라.


책을 덮고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에서 정희진 선생님이 하신 말씀들을 적어둔 기록들을 읽었다.



"바람직한 방식으로 소유할 수 있고 나눌 수 있고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것.
가장 덜 외로운 것, 스스로 발전하고 없어지지 않는 것. 바로 언어, 지식, 인식, 삶."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부하자."



자매들이여, 우리 공부합시다.

공부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정아은 작가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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