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을 맞춰야 하듯 타국 생활도 적응이 필요하다
열흘간의 스위스 신혼여행을 막 끝내고 밤 10시 무렵 도쿄역에 도착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아직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게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했다. 여행 내내 음식이 안 맞아 속이 편치 않았다. 여행 마지막 밤을 기념하려고 먹은 치즈 퐁듀로 인해 느끼함이 배가되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매콤한 비빔냉면이나 얼큰한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었다. 빨리 느끼함을 달래고 싶은데 여기는 한국이 아닌 일본이었다. 도쿄역의 밤거리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끼함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일본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비교적 매워 보이는 돼지고기 김치덮밥(기무치니규동)을 골랐다. 한 입 먹은 순간, 달달한 김치와 느끼한 육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어 이게 아닌데….’, 묵은 김치의 시원함과 개운함이 있는 매콤한 김치덮밥을 기대했다. 느끼함이 뱃속에서 요동을 쳤다.
남편한테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일본은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없어?” 나의 표정에 당황한 남편은 일본식 고춧가루인 시치미를 건넸다. 시치미를 뿌리고 한 입 먹었지만, 맛은 여전했다. 조그마한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시치미를 반이나 들이부은 후에야 겨우 매운맛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눈치를 슬슬 보는 남편에게 덮밥을 먹으면서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이제 좀 살겠어”라고 말했지만, 머릿속에는 얼큰한 김치찌개와 시원하고 새콤한 냉면이 계속 맴돌았다. ‘내가 바랬던 개운한 매운맛은 이게 아닌데, 혀에만 매운 알싸함이 아니야!’, ‘반찬으로 단무지라도 좀 주면 좋으련만’. 말끔하게 가시지 않고 남아있는 느끼함이 앞으로의 일본 생활을 하면서 느끼게 될 갈증일 것 같아 걱정되었다. 일본 생활의 시작이 실감 났다.
“입맛도 안 맞는 타국에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
결혼 약속을 하고 일본에서 산다고 말한 후부터 엄마는 계속 걱정을 하며 반대했다. 나는 "입맛이 뭐 그렇게 중요해. 그리고 일본 음식 괜찮아"라고 말하고 쿨하게 일본행을 결정했다. 여행으로 일본에 왔을 때는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나한테 음식이 문제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으로 마주한 일본과 현실로 마주한 일본은 달랐다. 색깔만 뻘건 김치덮밥을 한 숟갈씩 먹을 때마다 엄마 말이 계속 떠올랐다. ‘엄마가 말한 게 이거였구나, 엄마 말이 맞았구나’. 사랑에 눈멀어 타국 생활을 너무 쉽게 결정해 버린 걸 뒤늦게 후회했다.
내가 먹던 덮밥이 신혼여행 마지막 코스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돌아가면 되니까. 돌아갈 수 없는 여행이라 생각하니 달랐다. 옆에서 시치미도 뿌리지 않은 채 잘 먹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나도 10년을 살면 저렇게 익숙해질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에게 일본 생활이란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 아니라, 입맛에 맞지 않은 덮밥에 시치미를 뿌려 맛을 맞추듯 맞춰가는 일이다. 시치미를 넣어도 한국식 매운맛을 채울 수 없듯이,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낯선 땅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헛헛함을 채우며 맞춰가는 일이다.
책상 서랍 속에 있던 글입니다.
일본에서 돌아와 한국에 있는 지금, 시원하고 개운한 김치를 맘껏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