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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만드는 행복

능동적인 행복 만들기 프로젝트

by 미나

일본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이 바글거리는 이곳은 도쿄의 한 대학교! 일본한자능력검정 8급 시험을 치는 곳이다. 일본한자능력검정 8급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일본한자 테스트 시험이다. 시험을 보러 온 초등학생들과 동반한 학부모들 틈에 나도 끼어있었다. 당연히 학부모로 와야 할 나이지만 그날은 시험을 치르는 초등학생의 마음으로 왔다.


대기실에서 한자를 써가며 시험 준비하는 아이들을 보니 흐뭇한 엄마의 마음이 들었다가도, '난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싶어서 멋쩍어지기도 했다. 교실로 들어가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내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힐끗거렸다. ‘아줌마가 여기 왜 있어요?’ 하는 듯했다. 타국에서 일본인 초등학생들과 시험을 치고 있는 마음이 묘했다. 책상 위에 놓인 지우개와 연필 한 자루를 보니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는



중학교 시절의 한자 선생님은 참 얄미운 분이셨다. 우아하고 고상한 척하셨지만, 학생들을 차별하고 무시했다. 좋아하는 학생에게는 생글생글 웃으셨지만, 그 외 학생들에게는 찬밥 취급을 했다. 무시당하는 아이들은 선생님을 싫어했고, 그중에 나도 포함되었다. 가뜩이나 ‘한자’라는 게 잘 외워지지도 않는데 그 선생님 때문에 더욱 친해지지가 않았다. 쪽지시험도 자주 치렀는데, 그날마다 선생님은 수업 들어오시기 전 복도에 서서 우리를 째려보셨다. ‘요것들 잘 외워왔나 볼까?’ 한 듯한 표정도 참 얄미웠다. 쪽지시험을 볼 때마다 획수를 꼭 한 두 개 빼먹는 바람에 점수가 형편없었던 나는 한자 공부를 미련 없이 포기했다. 그 후, 신문에서도 한자가 사라진 바람에 나는 한자와 더욱 멀어졌다.


그렇게 잊혔던 한자를 다시 만났다. 일본에서는 한자가 필수였다.

‘한자를 내가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무슨 이런 일이...,’.

물론 처음에는 '나 한자 포기자야.'라는 마음으로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집에 오는 피자집 전단조차도 한자가 껴있으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한자 공부를 시작했지만, 매번 나와 궁합이 맞는 않는다며 포기하곤 했다. 거기다가 일본어 한자는 뜻도 여러 개, 읽는 방법도 다양해서 내가 넘지 못할 산이었다. 가끔 중학교 시절의 한자 선생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때 좀 배워났더라면 좋았을 걸 하면서. 번번이 포기하기를 여러 차례, 마지막으로 마음을 굳게 먹고 날 일부터 외우기 시작해 두 달 정도 매일 암기했다.





시험이 시작되었다. 나는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며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때 옆에서 날 힐끔거리던 남자아이가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듯 `탁` 소리를 내며 연필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저 아이의 엄마는 대견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 녀석 때문에 문제 푸는 게 초초해진 내 상황이 웃겨서 헛웃음이 났다.


100문제의 한자 시험을 치르고 대학교 교정을 내려오며 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벅찼고, 수능 이후 느껴보는 긴장감도 내게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을 주었다. 비록 초등학교 수준의 한자 시험이었지만, 매일 한자를 쓰고 또 쓰면서 넘어야 할 산에 도전했다는 건 나의 자존감도 높여주었다. 그런 작은 성취감은 '나 스스로 만든 행복'이라 더 의미 있었다.

한 달 뒤 8급 합격증을 받았다. 나 이제 한자와 친해졌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앞으로도 나는 이런 살아있는 느낌을 느끼기 위해 작은 도전을 계속할 것이다.

이름은 능동적인 행복 만들기 프로젝트!!!


지금도 작은 성취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 도전을 하고 있다.



한자능력시험후기_1 복사.jpg






이 글은 2020년의 글입니다.

서랍 속에 묵혀둔 글을 꺼낼 용기를 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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