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 아내와 데이트를 하던 시절, 저는 중국 대련으로 출장가는 아내를 따라 간적이 있습니다. 큰 기대를 안고 대련 공항에 내렸는데, 이게 웬걸! 영화 '미스트'처럼 도시 전체가 미세먼지로 뒤덮여 있지 않겠습니까? 공항을 나서는 순간, 나는 거의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거기에 붉은 글씨로 쓰여있는 대련공항은 기괴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와는 달리, 아내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 두꺼운 미세먼지 속에서 택시를 잡더니, 기사를 향해 유창한 중국어로 말을 거는 게 아니겠어요? 이것저것 이야기하더니, 서로 깔깔 웃기까지 합니다. 그때 저는 '와, 이 사람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은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안개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영웅처럼 보였습니다.
그 후, 아내가 일을 마치고 함께 대련 시내의 어느 노점에서 양꼬치에 칭다오 맥주 한잔하며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진 저, 어쩔 줄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었죠. 그런데 이 넓은 노점에서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더군요. 그때 우리 아내, 이미 제 얼굴을 보자마자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겁니다. 바로 옆 사람들에게 '화장실 어디 있어요?'라고 물어보더니, 화장실을 찾자마자 저를 끌고 초인적인 속도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에 저는 위기의 순간을 모면할 수 있었네요.그때, 저는 '이 여자, 왜 이렇게 멋있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에서 또 한 번 반하게 됐습니다.
이렇듯, 살다 보면 아내가 슈퍼히어로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하나둘씩 생기더군요.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말 잘 만났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런 순간들을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겁니다. 평소에는 몰랐던 배우자의 진가를 느끼는 순간, 그 사람의 새로운 면모에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지는 그런 순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