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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딘 Oct 24. 2022

3. 문장의 매력은 끝도 없다.

모국어로 본인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으면 외국어로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약 10년 동안 미술 공부를 하고 느낀 점은 때로는 작품 그 자체보다 작품을 설명하는 글(스테이트먼트)이 작품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작업의 의도, 배경 등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관객이 받아들이는 정도와 깊이가 달라지고 이는 결국 작품의 가치 자체도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 생각, 생각, 연습, 연습, 연습! 어쨌든 미술은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인 것은 틀림없다. 생각을 시각뿐만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전달을 잘해야 하니 매번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글쓰기의 매력은 어쨌든 추상적인 생각을 가시적인 글자의 형태로 기록할 수 있다는 것. 말맛을 결정하는 건 글쓴이의 수많은 선택들에 달려있지만 어쨌든 글쓰기는 즐겁다. 외국어와 모국어로 심심찮게 글을 쓰는 일이 잦아졌는데(자의든 타의든) 언어를 떠나 글을 쓸 때마다 드는 생각은 단어와 조사, 심지어는 문장부호의 사용에 따라 글의 매력이 많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외국어를 사용할 때 - 모국어가 아니기에 더 골치가 아픈 과정을 늘 겪는데 특히나 아직 학생의 신분이기에 소위 academic writing을 더 자주 접하게 되다 보니 paraphrase(바꾸어 말하기)는 필수다. 그렇게 되면 동의어나 숙어, 연결어, 다양한 구문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끼는데 중고등학생 시절 단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나에게 당장 단어 공부나 똑바로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더욱이, 어휘력의 제일 핵심은 단어 자체를 양적으로 아는 것보다 미묘한 뉘앙스, 즉 내가 전달하고픈 내용에 적당한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에 달려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외국어로 글을 쓸 때 '같은 의미의 다양한 형태의 단어 찾기'와 '비슷한 의미지만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품고 있는 단어 찾기', 이 두 가지 다른 목적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둘 다 어려워요.


두 가지 언어를 계속 쓰는 삶을 살다 보면 경험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흔히 '0개 국어'가 된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것이 절대 아닌데, 모국어도 한국에서 지낼 때보다 덜 쓰다 보니 가끔 영어 단어가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대충 0.5개 국어 정도 하는 느낌으로 살고 있다. 짧게 밖에서 살다 보니 영어는 꽤나 직관적인 언어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 언어문화 내에서도 공손하고 돌려 말하는 표현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는 아직 그 수준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교수님이나 직장 상사도 직급이 아니라 이름 그 자체로 부르기도 하고, 애초에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냥 우리는 모두 친구인 개념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을 하는 태도도 조금 더 명료하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달까. '이렇게 해줄 수 있어?' '아니 그건 못할 것 같아' 어찌 보면 한국에선 쉽게 뱉지 못한 말들을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쉽게 하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다. 


반면에 한국어는 굉장히 디테일한 표현을 말하고자 할 때 적합한 언어인 것 같다. 의성어만 해도 '살금살금' '소곤소곤' '구질구질' '구리구리' '꼬릿 꼬릿'같이 발음이나 모음, 자음만 다르게 해도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리고 동방예의지국답게 돌려 말하거나 공손하게 표현하는 것도 너무 잘하는 것 같고. 음, 생각해보니 언어 때문이 아니라 문화 차이 때문에 달라지는 건가? 아무튼. 언어의 성격이 달라도 내 생각을 담아주는 문장이라는 그릇을 다듬는 일은 여전히 나를 괴롭게 하지만 매력적이기도 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매력과 스트레스도 한 끗 차이랄까. 


'생각을 전달해줄 수 있는 수단'. 작업 후 스테이트먼트를 쓸 때 항상 사용하는 표현인데 글쓰기에도 적용이 되겠구나.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도 멋진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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