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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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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지망생 Jan 28. 2016

죽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

로봇 시대의 기본소득 <1>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시민들은 생산적인 일은 죄다 여성과 노예에게 맡겼다. 그들이 철학과 정치, 예술과 스포츠에 몰두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서다. 어릴 적엔 참 부러웠었다. 아테네 시민들, 얼마나 고상한가. 


그리고 어쩌면,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린 생산적인 일을 죄다 로봇에 맡기게 될지 모른다. 로봇이 아테네의 노예 역할을 맡는다면, 인간은 아테네 시민처럼 고상하게 살게 되는 걸까. 진보를 향한 인류의 긴 여정은,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걸까. 


그럴 것 같지 않으니까 걱정이다. 아테네 시민들과 달리, 지금 우리는 생산적인 일을 로봇에 맡겨도 고상하게 살 수 없다. 로봇 시대에도 누군가는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 개발에만 최적화 된 머리에 다른 고상한 생각이 들어설 틈은 없다. 그건 사치니까. 로봇 개발자들이 혹독한 야근과 경쟁에 시달리는 동안, 나머지 다수는 구직 전쟁을 벌여야 하겠지. 괜찮은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 테고, 불안에 찌든 영혼 역시 고상한 생각을 담을 여유는 없다. 


사람은 로봇과 경쟁하는 처지가 되고, 찬밥 더운밥 가려서는 살아 남을 수 없다. 아무 일이나 해야 한다. 먹고 살려면 수입이 필요하니까. 


'기본소득'이 절실해지는 건 이 대목이다.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된다면, '나쁜 일자리'에 대한 최소한의 거부권은 생긴다. 영혼을 팔고 살아남느냐, 굶어죽느냐, 라는 갈림길에서 제3의 선택지가 있는 셈이니까. 영혼 안 팔고도 생존은 가능하다.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이런 여유만 있다면, 우리는 조금은 더 고상해질 수 있다. 


생각해보니, 우리를 고상하게 해주는 건 첨단로봇이 아니라 기본소득이었다. 


ps. <재벌, 한국을 지배하는 초국적 자본> 저자인 박형준 박사가 "자살 친화형 성장"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한국 경제의 성장에 대한 설명인데, 머리에 대못처럼 박힌다. 우리가, 우리 부모세대가 영혼을 갈아넣어 일궈낸 성장은, 그런 거였다. '살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기를 쓰고 멀어지면서 '죽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을 향해 박박 기어가는 몸짓이었다.




소설가 지망생인 현직 기자입니다. 원래는 소설 습작 목적으로 개설한 브런치인데요. 태생이 태생인지라, 시사 관련해서도 자꾸 글을 쓰고 싶어지네요.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알을 품은 섬'인데요.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kaya 


이거 말고도 쓰고 싶은 게 많은데, 일단 '알을 품은 섬'부터 마무리해야겠지요. '소설 품은 머리'를 짊어지고 다니는데, 더 나이 먹기 전에 소설들을 다 부화시키고 싶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이야기가 풀리지는 않습니다. 소설 쓰기와 기사 쓰기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소설 쓰다가 막히면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가끔 한마디씩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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