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시대의 기본소득 <2>
기본소득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모호하다. 기본소득보다는 시민 배당이라는 표현이 더 이해하기 쉽다. 예컨대 미국 알래스카 주에선 주민 전부에게 일정한 돈을 정기적으로 나눠준다. 석유에서 나온 이익을 나눠주는 것이다. 주식회사가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듯, 공동체의 주권자인 시민에게 공유재산에서 나온 이익을 배당하는 것이다. 석유라는, 신의 축복(과연?)이 있으니 가능한 것 아니냐고도 할 수 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개리 플로멘호프트(Gary Flomenhoft)라는 미국 학자는 경제성 있는 지하 자원이 없는 지역에서 시민 배당을 하는 경우에 대해 연구했다. 미국 버몬트 주를 대상으로 삼았는데, 연간 1972~1만348달러를 지급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환율로 치면, 237만~1246만 원쯤 된다. 버몬트 주의 공유 자산을 어디까지로 보느냐, 그걸로 낼 수 있는 수익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같은 방식이 한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요즘 청년들은 기업이 원하는 기술을 자발적으로 습득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취업 이후에 사내 교육이 이뤄져야 했을 게다. 사내 교육 비용을 사회가 대신 치렀다고 볼 수 있다.
청년의 시간은 어찌 보면 공공재다. 민주주의를 확대하는데 쓸 수도 있고, 평균적인 문화 수준을 높이는데 쓸 수도 있다. 청년의 시간이라는 공공재를 하필 기업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는 근거는 없다. 기업이 사내 교육 비용을 아낀 대신, 사회는 막대한 기회 비용을 치렀다. 이렇게 얻은 기업의 이익에 대해 사회는 권리가 없는가?
권리가 있다고 본다면, 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 석유가 나지 않는 한국에서도 시민 배당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한 이유다.
참으로 소중한 청년의 시간, 사회를 재생산 하기 위한 필수 공공재다. 방금 민주주의 확대 이야길 했는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과제가 있다. 연애, 결혼, 출산. 청년의 시간이라는 공공재를 충분히 써야만, 좋은 연애가 이뤄진다. 그래야 결혼도 출산도 가능하다. 그토록 중요한 공공재를, 기업이 제멋대로 낭비한다. 누가 기업에게 그런 권리를 줬나.
청년의 시간이라는 공공재 사용에 관한 또 다른 문제는, 양극화다. 자산이나 소득 양극화만 심각한 게 아니다. 시간 양극화도 문제다.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이 시간의 빈자로 살아간다. 취업 준비, 아르바이트. 연애는커녕 자신을 잠시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일정한 돈을 배당하는 '기본소득'은, 시간 극빈층에게 긴급 구호 식량이 될 수 있다. 알바하는 시간을 조금 줄일 수 있다. 설령 취업에 실패해도 굶지는 않겠구나, 싶은 안도감을 줄 수 있다. 이런 여유가 있어야만, 자신을 돌아볼 틈이 생긴다.
시간이 남아도는, 시간 부자들에게는 기본소득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들에게도 유용하다. 시간 부자이면서 자산과 소득의 부자인 경우는 드물다. 시간 부자 가운데 많은 수는 구직 포기자다. 따라서 시간은 넉넉하지만, 소비는 힘들다. 미래가 불투명하니, 마음 여유도 없다. 이들은 시간은 넉넉하지만, 마음은 늘 비좁다. 이들에게도 기본소득은 새로운 여유를 준다. 시간 부자를 마음의 부자로 만들어준다.
어쩌다 보니, 기본소득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했다. 그게 꼭 좋기만 할까. 그럴 리는 없다. 다음엔 비판도 좀 해볼까 한다.
소설가를 지망하는 기자입니다. 기사로 쓰고 싶은 아이디어를 브런치에 올립니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곧 게재될 수도 있을 겁니다. 혹시 기사 검색하다 그런 게 눈에 띄더라도, 관대히 넘어가 주시길.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진, 중요한 이유는 제가 소설가 지망생이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지망생이야말로, 기본소득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지요.
브런치에 '알을 품은 섬'이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습작인데요. 그래서 허점이 많습니다. 다른 소설도 곧 연재를 시작할까 합니다. 먼저 벌인 일을 다 끝내지 못한 채, 새로운 일을 벌이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설 '알을 품은 섬'
첫 번째 이야기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두 번째 이야기 :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세 번째 이야기 : "활 잘 쏘는 자가 왕 노릇 하는 까닭"
네 번째 이야기 : "화살 맞아도 끄떡없으니 활쏘기란…"
다섯 번째 이야기 : "화살이 눈에 박히자 가야 전사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