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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지망생 Jan 29. 2016

"그 활로 나를 쏘거라"

알을 품은 섬, 여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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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불은 젊었지만,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탁순, 고순, 안라…. 기불은 가야 땅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게 많았다. 가야 땅에 사는 사람 치고 백제 이야기를 기분 좋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기불이 말했다.


“제게 활쏘기를 가르친 스승의 핏줄이 어디서 흘러왔는지는, 그가 말한 적이 없으므로 제가 알 수 없습니다. 스승이 굳이 말하지 않는 일에 대해 제자가 굳이 캐묻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활쏘기를 배웠을 따름입니다. 


한낱 활 쏘는 재주를 가르치고 익히는데, 굳이 핏줄을 따질 까닭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왕이 대답했다.     


“네 말이 심히 괴이쩍다. 활쏘기가 한낱 기예에 불과하다 하나, 결국 마음이 하는 일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활을 잡은 손도 흔들리기 마련이지 않은가. 


천하게 태어나 천하게 자란 자는 마음도 천하기 마련이다. 눈앞이 조금만 화려해져도 천한 마음은 쉽게 흔들리는 법. 천한 마음으로 날리는 화살은 천한 자에게나 제대로 꽂힐 따름이다. 


천한 자가 귀한 자를 향해 쏘는 화살이 제대로 박힐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평생 개똥밭을 뒹굴던 비천한 자는 번쩍이는 금붙이를 주렁주렁 단 귀한 자를 보기만 해도 팔이 흔들리고 오금이 저려서 활시위를 제대로 당길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옥구슬을 갖고 놀았고, 숱한 시종을 거느렸던 자는 아름다운 여인이나 높은 관을 쓴 귀인에게 화살을 날리면서도 망설임이 없다. 


이걸 네가 더 잘 알 터인데, 어찌 활쏘기가 핏줄과 관계없다고 말하는가.”     


기불이 말했다.     


“활쏘기를 수련하는 것은 마음을 두드리는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불에 달군 쇠를 두드려서 쓸 만한 연장을 만들어내듯, 천하고 급한 마음도 잘 두드리면 궁궐의 주춧돌처럼 무겁고 단단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비록 천하게 태어난 마음이지만, 꾸준히 활을 쏘아 단단해진 마음은 화려한 표적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라고 들었습니다.”     


다시 왕이 말했다.     


“네 말이 그럴 싸 하다. 잡쇠를 녹여 두들기면 쓸 만한 연장이 된다고 했다. 잡스럽고 천한 마음을 활쏘기로 단련하면 단단한 마음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 이리라. 


내가 보기에 가야 사람들은 대체로 활쏘기에 게으르다. 물론, 이빨 검은 왜인들보다는 낫지만, 부여 사람들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자식의 나라가 아비의 나라를 겁박하고, 동생의 나라가 형의 나라를 침탈하는 부여 사람들의 짐승 같은 근성을 닮고자 함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더러운 마음을 지니고도 나라가 꼴을 유지하는 것은 그들이 평소 꾸준한 활쏘기를 마음을 단련하기 때문일 게다. 


그들과 달리, 높고 귀한 마음을 지닌 가야 사람들이 활쏘기를 익힌다면, 그 끝이 어디에 다다를지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이제 가야 사람들도 활쏘기를 배웠으면 한다. 


내가 묻겠다. 네 활 솜씨는 백발백중이라고 들었다. 과연 그러한가? 네가 날린 화살이 빗나간 적은 없는가?”     


기불이 말했다.     


“스승을 떠난 뒤로는 빗나간 적이 없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믿을 만 하다. 우리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활과 화살을 네게 맡기마. 그걸로 나를 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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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알을 품은 섬'


첫 번째 이야기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두 번째 이야기 :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세 번째 이야기 : "활 잘 쏘는 자가 왕 노릇 하는 까닭"

네 번째 이야기 : "화살 맞아도  끄떡없으니 활쏘기란…" 

다섯 번째 이야기 : "화살이 눈에 박히자 가야 전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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