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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지망생 Jan 27. 2016

화살 맞아도 끄떡없으니 활쏘기란…

알을 품은 섬, 네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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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불은 가난했다. 가야 땅에서 활 잘 쏘는 사람은 대접을 못 받았다. 


멀리 북쪽으로 가면, 해모수의 아들이 세운 나라가 있는데, 거기선 활 잘 쏘는 사람을 으뜸으로 친다고 했다. 그래서 소년더러 북쪽으로 가라고 권하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기불은, 산이 야트막하고 날이 푸근한 가야 땅이 좋았다.     


가야 땅에선 쇠가 흔했다. 무사들은 몸을 온통 쇠붙이로 둘러쌌다. 그러니 화살을 맞아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대신 화살을 날려 무사를 맞히기도 쉽다. 무거운 무쇠 갑옷을 입은 무사들은 몸이 굼떴다. 누구나 쉽게 활로 무사를 쏠 수 있고, 무사는 화살에 맞아도 끄떡없으니, 활 쏘는 재주가 대접을 못 받을 밖에. 


쇠붙이로 된 도구로 농사를 지으니, 먹을거리도 넉넉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산으로 뛰어다니며, 산짐승을 향해 활시위를 날려야 하는 북쪽 무사들과도 달랐다. 멀리 북쪽, 해모수의 아들이 세운 나라에선 사냥 잘하는 사람 하나가 열 식구를 먹여 살린다고 했다. 


여기선 사냥하는 재주로 그저 저 혼자 뱃속을 채울 따름이다. 북쪽 땅과 달리, 가야 땅엔 덩치 큰 짐승이 많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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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품은 섬' 네 번째 이야기는 아주 짧습니다. 하필 가야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까닭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래전부터 관심이 컸던 시기인데요. 소설로 써보려는 결심을 굳힌 건, 아래에 옮긴 글을 읽고서였습니다.


<가야인의 삶과 문화>(권주현 지음, 혜안 펴냄)이라는 책의 머리말 가운데 일부입니다. 


"가야는 작은 나라였다. 넓은 영토, 강력한 지배, 화려한 문화, 탁월한 영도력 등 우리가 은연중 역사적 미덕으로 삼고 있는 요소들과는 거리가 멀다.


(…) 가야는 그 작았던 실체만큼이나 만만한 존재이기도 해서,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쉽게 감염시키기도 했다. 신라 중대에 이미 불교적 색채로 가야 일부분을 채색하였으며, 8세기 초 일본에서는 천황 주권 아래 가야를 재편해버렸고,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임나일본부설'로 식민사학의 희생양으로 삼기도 했다. 심지어 1980년대 말에는 기독교와 가야와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황당한 견해까지 등장하였다.


(…) 가야사를 무리하게 강조하는 이면에는 은연중 힘의 논리에 대한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으며 작고 약한 실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깔려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크고 강건한 것만이 미덕이 아니다.


(…) 가야는 저들 나름대로 완벽한 체제를 갖춘 공동체였다. 다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적 감각과 그에 부응하는 힘을 기르지 못했을 뿐이다.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독특한 물질문명과 가치관, 내부 운영 질서, 부정할 수 없는 자체 오류와 모순까지 차분하게 관찰하면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역사의 주체가 민중에게 넘어온 지 오래지만, 여전히 영웅주의·패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우리 역사 속 작은 실체로 존재했던 가야의 본모습을 조용하게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다.”





'알을 품은 섬' 첫 번째 이야기인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구지가'를 소재로 삼은 겁니다. 물론 소설이니까 <삼국유사>와는 완전히 다르죠. '알에서 난 자들'이라는 가상의 종족이 나옵니다. '사람의 자식'들과 '알에서 난 자들'의 대립이 이야기의 한 축이죠. 


소설을 연재하는 틈틈이 가야 역사 이야기도 하겠습니다. 



소설 '알을 품은 섬'


첫 번째 이야기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두 번째 이야기 : "머리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세 번째 이야기 : "활 잘 쏘는 자가 왕 노릇 하는 까닭"

네 번째 이야기 : "화살 맞아도  끄떡없으니 활쏘기란…" 

다섯 번째 이야기 : "화살이 눈에 박히자 가야 전사들은"

여섯 번째 이야기 : "그 활로 나를 쏘거라"

일곱 번째 이야기 : "그들을 나와 함께 황천으로 보내라"

여덟 번째 이야기 : 왕이 제 자식 죽인 자를 접대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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