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과 한국 사회 문화 전반의 문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시작하기 전 나는 괜히 왔나.. 우울한 얘기들 해서 내 기분까지 다운되면 어쩌지.. 그런 건 별로인데…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있자니 웃음이 터졌다. 아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똑같구나.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구나. 사람들 질문의 본질은 결국 (주로) 하나로 귀결되는데 그게 어떤 형태로 발현되느냐가 다를 뿐 하나같이 이럴까 저럴까, 내가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게 맞나 틀리나.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 그게 진짜 한국에서 나고 자란 현대인의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받느라 그리고 부모가 설계해 주는 삶을 살아내느라 정작 제일 중요한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갈 시간도 기회도 없었기에 잘 모른다. 아니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이 스님한테 내 마음을 결정해 달라고 하고 있다.
스님 대학원 진학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전공과 다른, 앞으로 유망하다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동료들들 보니 전부 석박사 출신이고, 그래서 저도 이쪽으로 계속하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전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작년에 결혼해서 애기가 생길 수도 있으니 지금 대학원 진학을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황당한 질문인가? 본인의 질문에 이미 답은 있었다. 그냥 요즘 유망하다고 하는 직종에 취직해서 주변을 보니 다들 석박사 학위쯤은 다 있고 그러니 나도 그 결과물은 갖고는 싶은데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지 결정도 못하겠고, 또 공부에 매진할 수 없을 혹은 중간에 그만둘지도 모르는 핑계를 이미 찾아냈고…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이미 답이 있다.
무엇보다 이걸 왜 스님한테 물어본단 말인가…?
그런데 말이다. 이건 과거의 나였다. 20대의 나 또한 무엇이 달랐냐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제너럴리스트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한다. 그게 아마도 30년 전 내가 교육을 받을 때와 15년 전쯤의 세대와 아마도 다르지 않은가 보다. 대학에서 어떤 학과가 내가 원하는 공부인지를 모르니 성적에 맞춰 앞으로 유망하다는 혹은 가장 무난한 일반적인 학과에 지원하고, 취직할 때 이력서 여기저기 뿌려서 걸려든 태어나서 생각 한번 안 해본 금융권이지만 유망하다 하고, 이름도 난생처음 들어본 외국계 은행이지만 (그만큼 금융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얘기) 아빠가 엄청 좋은 회사라고 무조건 가라고 하니.. 아빠가 좋다 하시니 그럼 가지모. 그렇게 첫 직장을 시작하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지만 하다 보니 뭐 대-충 알 거 같기는 한데 적성에는 정말 너어어무 안 맞고, 하지만 다른 걸 도전해 볼 용기는 또 없고. 더 정확히 그 다른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일 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럭저럭 시간이 이삼 년 흐르고 일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해외 MBA 출신이고 그래서 나도 그게 필요한가 보다 공부를 하면서도, 타이틀은 갖고 싶었지만 공부가 싫었기 때문에 회사가 바쁘다 프로젝트 들어가서 공부할 시간도 없다 그러면서도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소개팅하고 썸탈 시간은 있었다. 홍콩으로 가게 되면서 당연히 기다렸다는 듯 다 때려쳤고.
스님께 질문한 발표자와 과거의 내 삶이 무엇이 다른가.
한국의 교육. 사회적 트렌드. 부모가 가이드해 주는 삶.
뭐 하나 나때나 지금이나 정말 변한 게 없는 걸까? 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으로 비추어 과거보다 더 심해진 것 같기는 하다.
얼마 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안판석 피디가 연출한 졸업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남주가 대기업 그만두고 학원 강사로 성공해 보겠다 하니 아버지가 연줄을 대서 어디 어디 유명한데 이력서 넣어봐라. 하시는데 그 장면에서 나도 너무나 숨이 막혀오는데, 남주가 (정확한 대사는 아님) 제발 그냥 제가 스스로 성공해 내는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요! 하는데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 어찌나 부모가 자식의 삶을 설계하려 하시는지. 갑갑하다. 정말 갑갑하다. 남주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첫번째로 한 일이 부모로부터 물리적 독립이었다.
나도 그랬다. 우리나라의 정서상 결혼 전까지 부모와 같이 살며 많은 것을 부모에게 의지해서 살아간다. 내가 홍콩으로 가면서 처음으로 물리적인 독립이 일어났고 내가 번 돈으로 월세를 내며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경제적 독립도 이뤄졌다. 나는 지금도 철없는 40대지만 그래도 그때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돈걱정도 해봤고, 음식도 직접 만들어 먹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혼자 쇼핑도 해보고… 뭐 그런 것들.. 내가 20대에 온전한 독립을 했다면 더 일찍 깨닫고 더 빨리 성장했을. 너무나 당연한 것들. 그리고 별거 아니게 보이는 그 속에서 스스로 깨닫게 되는 아주 많은 것들.
내게 있는, 많이 고쳤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한 습관.
엄마 나 이거 사 말아? 언니 이거 해 말아?
내 나이 오십에는 온전히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고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