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사람을 만드는가

드라마 안나. 안나를 아세요?

by MengFei

[나는 좋은 사람인가]에 이어지는 글.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

그녀는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만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거나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없는 일은 시도는커녕 타인에게 미루거나 미룰 사람이 없으면 담당자를 뽑자고 매니저에게 건의를 한다.(그래서 고맙게도 내가 취직을 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잡스콥을 고민하고 매니저에게 어필하고 (유일하게. 다들 닥치고 그냥 하는데) 그래서 그녀는 아주 아주 영리하게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있다. 그녀가 머리 굴려가며 계획하는 대로 착착 돌아가고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입사 첫날부터 사람들이 나에게 혀를 내두르며 그녀를 욕한다. 한둘이 아니다. 분명 그런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엔 사람들이 욕하는 만큼 그녀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왜 사람들이 그렇게 그녀를 싫어하는지 너무나 알 것 같지만 나는 일을 잘 모르고 그녀에게 하나라도 어떻게든 배워야 하는 입장이라 일단은 참았다. 그런데 6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그녀의 태도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매니저에게 얘기를 했다. 그리고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매니저에게 말하고 나니 내가 피해자인데 꼭 가해자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매니저가 기회를 보고 그녀에게 내 얘기를 한 거 같은데 그날 그녀는 운 것 같았고, 그다음 날 그녀는 병가를 내버렸다. 마음이 문드러지고 찢어진 사람은 난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두 번째 사건은 최근에 일어났다. 첫 사건 이후로 자리를 바꾸고 난 뒤, 나는 그녀와 업무 외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두 달이 지나 내가 지난번 일을 잊어버리고 흐지부지 된 틈을 타 나에게 유난히 갑자기 친절하게 굴더니 바로 또 뒤통수를 쳤다. 그녀의 친절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데, 그녀가 또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걸 이렇게 나이브하게 모르고 또 걸려들었다. 뒤통수를 맞고 나니 그동안 그녀의 모든 행동이 하나로 연결되며 술수를 부렸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나에게 미안하다 그런 말은 개인적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자기가 벌인 일이 사태가 심각해지자 매니저가 있는 자리에서 운… 다…? 너무나 작위적이다. 미안함이 있었다면 나나 이 일로 피해를 보게 되는 다른 동료에게 따로 사과를 해야 하는데 매니저 앞에서만 울며 본인 실수 다며 잘 몰랐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데 난 이 작위적 연극에 점점 치밀어 오르는 화를 결국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회의실에서 한 시간은 더 울었나 보다. 그렇게 미안했음 나한테 개인적으로 한마디라도 하며 미안하게 됐다고 해야 사람인데, 그녀는 전혀 미안함은커녕 그렇게 울면서도 자기 필요한걸 다 챙겼고, 결국엔 모든 게 본인이 계획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서 승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 일로 주변 사람들과 더 멀어졌지만 그녀는 더 꼿꼿이 고개를 ‘쳐’ 들고 다닌다.


그녀에 관해 내가 아는 정보는 하얼빈에서 나고 자랐다. 어디서 공부했는지는 모르지만 박사출신이고 중국에 있을 때 회계법인에서 감사역을 했었다. 대학교 때부터 교제하던 남자 친구와 결혼했고 싱가포르에 왔을 때 돈이 없어 아이를 가질 수 없었고 제대로 된 음식을 사 먹을 돈도 없을 만큼 가난했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다. 지금은 우리 회사 탑 3안에 드는 연봉을 받는다고 소문이 나있다.


그녀와 중국어로 대화하며 친해진 직장동료가 한 명 있다. 이분은 하얼빈에서 1년 연수를 해서 하얼빈이라는 곳을 좀 안다고 한다. 나도 이분과 친하지만 그녀와의 친분도 있는 걸 알기에 그녀 얘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분도 어디선가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지 어느 날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그녀가 개인적으로는 마음도 따뜻하고 참 좋은 사람인데,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으로 깡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온 사람인 거 같다는 거다. 아마도 돈이 없어 제대로 된 끼니를 사 먹을 수 없었다는 얘기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일 거라며. 본인은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런 사연이 있다고 그걸 내가 알았다고 그녀의 행동이나 태도가 용납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중국 여러 곳을 다니며 다양한 부류, 직종, 나이의 중국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 신랑에게 물었다. 난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녀와의 얘기를 다 아는 신랑은 나에게 조언했다. 그녀를 이길생각 하지말라고. 너 같은 사람이 상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거 같다고. 너는 그녀에게 전혀 상대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고.


또 다른 동료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드라마 안나를 본 적이 있냐고. 정말 간절하고 절실한 사람에게 그런 간절함이 없어 본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그녀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넌 회사 안 다녀도 그만이지만 난 아니라고. 넌 예쁘고 사람들이랑도 친하지 않냐고. 그땐 뭐라는 거야 내가 무슨.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그녀에게 이생은 서바이벌 게임이라면 그녀 눈에 비친 내 삶은 팔자 편한 아줌마가 집에서 노는 게 지루해 회사에 놀러 나와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석하고 보니… 그녀에게 나는 당연히 안중에도 없다. 자신의 태도나 행동이 나 따위에게 주는 영향은 관심도 없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간다. 자신이 길을 개척하고 계획해서 가는 사람인데 그 길에 난 잡초 따위는 무심히 밟히고 마는 거다.


나는 아직도 바보같이 그녀에게 연민을 느낀다. 이 글을 쓰고도 내가 그녀를 너무 나쁘게 보는 건 아닌가 글을 읽고 또 읽고 상황을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주변 동료들에게 그녀에 대한 이런 연민을 내비치면 정신 차리라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는 중이다. 점점 대화할 사람이 없어지고 대부분 이메일로만 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점심 먹자는 제안을 피한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인지 회사는 친구를 만드는 곳이 아니다라며 정말 “일만” 한다. 주변은 하하 호호 웃으며 다 같이 즐겁게 수다도 떨고 서로 도와가며 일하고 있다. 본인만 외딴섬에서 둥둥 표류하는걸 본인도 지금까지 계속 겪어온 것 같고, 모두가 등을 돌리기 전에 먼저 등을 돌리는 것 같다.


난 하얼빈을 가본 적도 없고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와 동갑. 사십 중반. 그녀가 살아온 삶은 나와 그렇게나 달랐을까? 여기 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과 그렇게나 많이 달랐을까? 정말 그 환경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걸까? 그녀는 달라지고 싶지 않을까? 그녀도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수다 떨고 밥 먹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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