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가족여행 십계명
싱서방이랑 부모님과 함께 여행 중이다.
여행지 선정부터 비행기표 에어비앤비 루트 식당 모든 걸 나 혼자 한다. 그리고 모두가 다음엔 어디 가는지 뭘 할지 어느 식당 까페에 갈지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다. 계획적 인간인 나에게도 이건 너무나 큰 스트레스이다.
그렇다. 나는 MBTI 소문자 j형 인간이라 대충 어느 지역정도만 정하고 근처 레스토랑 몇 군데 알아 놓기는 한데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소 즉흥적으로 돌아다니며 유연하게 정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도 아무도 함께 알아봐 주지 않고 모두가 나만 바라보고 있다…..
게다가 아빠의 끊임없는 질문… 뭐랄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 대답을 바라며 물어보는 건지 그냥 혼잣말을 하시는 건지 알 수 없는. 궁금한게 많으셔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 지나가며 보이는 많은 것들 (예를 들면 저 건물은 뭔데 저렇게 독특한가? 유적지도 아니고 그냥 건물인데… 나도 모른다..)에 대해 왜?를 시전하는 4살짜리 어린이처럼… 나도 여기가 처음인데 내가 척척박사도 아니고 이 지역을 사람을 건물을 현상을 어떻게 알겠는가. 역사 사회 경제 지리 등등 궁금한게 많고 다 알고 싶으신 아빠. 사실 우리 집안의 유일한 브레인, 명문대 출신인 울 아빠를 보면 왜 명문대를 갔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오늘 돌아본 곳을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다 찾아보시거나 지역 관광 설명 등을 보시고 지도나 설명서를 어디선가 발견하시고는 하나하나 다 읽어보시고 설명해 주신다. 그런데 그런거 돌아보시느라 늘 순식간에 4살 어린이처럼 어디론가 사라지셔서 온 가족이 아빠를 찾아다니느라 진땀을 빼고 아빠는 십여분이 지나면 유유히 우리가 있던 자리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신 채 홀연히 나타나신다.
엄마는 타인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시는데 보이는 거, 관찰한 모든 걸 끊임없이 말로 하신다. 처음엔 동조를 해주고 반응을 해주다가 이내 지치고 만다. 이걸 다 반응해 주길 바라시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나는 그 주제가 재미나지도 않다. 특히나 전형적인 외모지상주의 한국인 엄마는 저렇게 뚱뚱한데 저런 옷을 입었네 저 할머니는 곱게 차려입고 어디 약속 가나 보네 저 남자는 안춥나 이 날씨에 반바지를 입었네…. 끊임없는 사람관찰에 너무나 지친다. 나는 그런게 하나도 안궁금하다. 날씬하지 않다고 나이가 많다고 레깅스에 엉덩이를 못 드러내는 건… 한국사람들이나 신경 쓰는 거고… 여기선 그게 싱가폴이든 지금 여행 중인 호주이든 누구도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춥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데 본인이 반바지를 입던 패딩을 입던 무슨 상관인가. 엄마 눈엔 얇은 패딩을 입어야 할 날씨에 반바지에 슬리퍼 후드를 입은 외국 남자가 춥지도 않냐며 한마디를 꼭 거든다. 아빠가 이 옷을 입든 저 신발을 신든 무슨 상관인가. 일일이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고 지적?하느라 옆에서 보는 내가 진이 다 빠진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계획이 어딘지 날씨가 어떤지 매순간 물어보고 물론 금방 까먹으시고 또 물어보신다. 뭐 나도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지라 이해는 되지만서도…. 그리고 그놈의 지겨운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제발 아… 제발….
연로하신 부모님은 뭐 그렇다 쳐도 싱서방조차도 여행지에서 내가 안내하는 곳 외에 자기 스스로 가보고 싶은 곳을 찾아보지도 않는다 (혼자 출장 가서는 잘만 찾아다닌다). 늘 내가 목적지를 정하고 그에게 괜찮은지 컨펌을 받는 식이다. 왜냐면… 우리 금쪽이 싱서방은 너무나 보스 스타일이셔서 직접 찾지도 않지만 맘에 안들면 불평을…. 한다. 천하의 몹쓸 놈. 아무것도 안 할 거면 입이나 닫고 있던지. 그래도 운전해 주고 우리셋 사진 찍어주는 거는 진심으로 감사하기에 마음을 다스려본다.
에어비앤비의 단점은 집을 찾고 열쇠를 찾고 뭐가 안되면 주인에게 메세지를 보내 답을 기다려야 한다. 내가 예약한 관계로 모든 컨택은. 물론 내가 한다.
첫 번째 숙소는 주차장 들어가기 전 아파트 1층 뒤쪽 어딘가로 한참 들어가서 열쇠를 꺼낸 뒤, 다시 차가 있는 데로 돌아가 주차장 문을 열어주고, 이 숙소는 여러 아파트가 같은 주차장을 쓰는 곳이었고 정해준 주차 넘버를 그 넓은 데서 찾아야 했고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 많은데 정해진 곳이 아니면 카드가 안먹어서 주차장을 벗어날 수가 없다. 얼마나 헤맸는지. 다 같이 짐을 들고 이동할 수는 없기에 모두 여기서 기다려 내가 찾아볼께! 했는데 저 망할 놈의 싱서방도 엄빠랑 같이 서서 핸드폰이나 하고 있다. 속에서 열불이 나지만 엄빠 앞이고 엄빠는 이런 상황이 익숙치 않아 패닉 하실게 분명했기에 일단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입구란 입구는 다 가서 카드키를 대본 것 같다. 시간은 이미 거의 10시가 다 되어가고.. 점점 조급해지려던 찰나 주차장에 사람이 나타났다. 그 고마운 주민 덕분으로 우리는 무사히 집을 잘 찾아 들어갔다.
그다음 숙소는 체크인 후 문제가 뜨거운 물이 안나오는 것. 주택인지라 가스를 이용하는데 하필 딱 가스를 다 써서 다른 통을 바꿔야 하는데 갑자기 비는 오지 누가 우산 들어주는 사람도 없지 가스통은 태어나서 지나가며 가스통이네 하고 본 적은 있어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지 설명을 하는데 당최 뭘 어떻게 하라는지… 뭔 소린지 모르겠지… 방안 침대에 드러누워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 싱서방에게 결국 폭발. 좀 와서 도와주면 안 되냐. 내가 지금 동분서주하는 거 안보이냐. 뭐 때문이냐 좀 물어주고 같이 보자고 하면 안되냐. 결국 싱서방을 향해 목소리가 커지고 말았다. 게다가 울 아빠는 뜨거운 물이 어떻게 해결이 되가는지 계속 내 옆에서 서성이며 뭐 이런 집에 다 있냐고 옆에서 몇 마디씩 하시는데 결국 아빠한테도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제발 좀 기다려 달라고 옆에서 그렇게 서성이며 한 마디씩 거들고 있으면 내가 너무 불편하고 부담스럽다고.
관광가이드는 정말 너무나 고되고 외로운 직업인 거 같다. 특히 노인들 모시고 여행하는 가이드님들에게는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예를 들어 20명 정원의 여행이다 하면 20명의 와이파이를 핸드폰이며 아이패드에 호텔이 바뀔 때마다 넣어줘야 하고 수많은 질문들과 그 외의 설명까지 쉴 새 없이 말하고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울 아빠처럼 툭하면 사라지는 노인은 어디에나 있을 거고 식당 가서 음식이 입에 안 맞아 다른 건 없냐는 분들도 있을 거고. 어디가 아프고 뭐가 안되고….. 끊임없이 봐드려야 할 일들이 생긴다. 난 두 명도 이렇게 힘든데.. (아 세명이지…) 아무리 노하우가 생긴다고 해도… 얼마나 고된 일인가…. 예전엔 가이드님 팁에 대해 돈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팁을 넉넉히 챙겨드려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여행지에 오면 왜 꼭 한 번은 큰소리가 나고 이내 싸우고 마는 걸까? 우리 집만 그런가?
우연히 가족여행 십계명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아 이건 국룰인가? 그런 듯싶다.
다음엔 부모님 모시고 넷이 여행 안 가! 했지만 이렇게 자동차로 다니는 자유여행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니.. 다음번 여행에는 우리 집의 가족여행 십계명을 정해서 미리 부모님께 보내드려야겠다. 아 플러스 싱서방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