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철이 빨리 안 들어 행복감이 높은 건가

by MengFei

절반밖에 못 봤지만 이미 인생드라마다

나의 아저씨

디어 마이 프렌즈.

모두가 다 보편적인 공감을 일으키는 인생을 얘기하는 드라마다.


드라마를 보다가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보고 싶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얘기를 했다. 금명이의 짜증이 나와 같았고 가장 고마운 사람, 부모님께 살갑게 못하는 모습이 너무나 나 같아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철이 안 든 나를 반성하며 우리 집안 형편 같은 거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우리 집이 잘 살지도 않지만 못 살지도 않다고 생각했고 남들 다 하는 건 나도 당연히 다 할 수 있는 거라는 것에 대한 의심이 조금도 없었기에 암투병하시며 병원 계속 오가시며 결국 퇴사하시고 집에 계시던 아빠, 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엄마, 우린 그때 정말 뭐 먹고살았을까 싶은데. 엄마 그때 얼마나 힘들었냐 우리 뭐 먹고살았냐. 생활비는 차치하고 딸 둘 대학 학비, 용돈, 해외여행, 해외 연수, 교환학생 등 우리는 부모와 달리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았었는데, 우리는 친가도 외가도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없었는데, 한 번도 엄마 아빠가 안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는데, 엄마 우리 어떻게 살았어?


엄마는 돈 버는 재주는 없으셨지만 돈을 아끼고 모으는 일에는 일등이셨다. 그건 지금의 나와 똑같다.

그리고 그렇게 알뜰살뜰 모아놓은 돈이 아빠가 아프시고 돈을 못 버시던 거의 십 년 가까운 시간을 견디게 만들었던 것 같다.


언니도 철이 깊게 든 장녀는 아니었던 거 같다. 언니는 일어를 할 줄 알아서 (그것도 엄빠덕에 대학생 내내 방학 때마다 일본 가서 지냈다) 일본어 알바로 용돈을 쏠쏠하게 많이 벌었는데 그걸로 당시 유행하던 마인 타임 정장사고 가방사고 삔사고 꾸미는데 그 돈을 올인했다. 난 용돈 한번 벌어보지 않았지만 언니덕에 괜찮게 꾸미고 다녔고, 물욕이 없어서 뭘 사고 싶은 것도 없고, 딱히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엄마가 제일 기기 막혔던건 대학교때 언니랑 나를 유럽 배낭여행을 보내줬는데, 돌아올때 명품백을 떡하니 사서 오더란다. 대학 졸업하고서 언니와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부모님께 돈을 드렸냐면 그것도 아니다. 난 월급의 60% 이상 거의 70%를 저금했다. 언니는 일 년 회사 다니다가 영국연수를 가버렸고, 돌아와서도 여전히 월급을 꾸미는데 탕진했던 거 같다. 결혼할 때 마이너스 통장이었던걸 보면.


하지만 두 딸이 부모의 큰 짐을 덜어준 건 결혼이었던 거 같다. 부모님은 우리 결혼자금을 그 와중에도 모아두셨던 거 같은데 언니도 결혼하며 홍콩으로 가서 신혼살림 같은걸 거의 하지 않았던 관계로 결혼식, 예단, 예물 준비에만 돈이 들어갔다. 그리고 나도 해외에서 살다가 결혼하는 관계로 특별히 예물 혼수 이런 걸로 들어가는 돈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그냥 엄빠가 나에게 시계를 하사해주셨다. 남들처럼 예물을 못 받는 게 (못 받는 게 아니라 그런 걸 해야 되는 문화가 아니라 안 한 건데) 엄빠는 그게 맘이 쓰이셨는지 시계하나 사라고. 근데 천만 원짜리 다이아 박힌 롤렉스시계를 살 줄은 모르셨겠지만… 난 그게 또 당연히 사도 되는 건 줄 알았네. 이런 철딱서니 없는 딸이 사십 중반이 됐는데, 아직도 철이 깊게 들지는 못했다. 나름 어려운 일들 겪으며 많이 성장했지만 아이 키우며 한 인격체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애쓰는 부모가 된 내 나이의 지인들을 생각하면 정말 그들은 어른이고 나는 생각의 깊이가 미처 거기까지 닫지 못하는 아직 철이 안 든 중년일 뿐.


엄마가 말씀하신다. 철 안 들면 맘 편하게 행복하게 살고 좋지 뭐.


맞아 엄마. 성격적으로도 그렇고 상황적으로도 그렇고. 굳이 철들지 않는 걸 억지로 철들게 할 필요도 없는 거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지 못해서 그래서 걱정 고민 크게 안 하고 사니 인생이 편하지 뭐. 어차피 난 남들만큼 철들긴 글렀어. 내 나이 애 키우는 친구들에 비해 난 너무 애지 뭐. 근데 어떡해. 난 상황이 다르고 타고난 성격이 주변을 잘 못 살피는걸. 아무리 노력해도 내 눈엔 잘 안 보여. 남들 같지 못한데 남들 같을 필요도 없잖아. 뭐 하러 비교하고 그냥 이렇게 되어버린 내 인생을 즐기며 살아야지.


나는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다.

철은 더디게 들지만 덕분에 인생이 즐거운 노년을 위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에서 온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