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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지 Oct 14. 2024

프롤로그: 3주간의 남유럽을 선택하기까지

햇빛과 자극이 필요해!

9월은 한국에 가는 달이다. 수업은 없고 과제는 있으니 할 일은 있다만 굳이 독일에 있을 필요는 없고, 독일은 추워지며 해가 짧아지지만 한국은 선선해지는 달이라 으레 연례행사처럼 한국으로 향했다.

물론 고국을 간다는 것은 마음이 채워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체력이 바닥나고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에 부딪혀야 하기도 하고, 4년째 매년 가다 보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올해는 조금은 또 다른 자극제가 필요하겠다고 생각되었다. 독일에 사느라 잠재워 놓았던 호기심을 깨울 타이밍이 되었다.


그래서 올해 초부터 9월엔 남유럽을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가고 싶은 도시들이 명확하게 있었던 건 아니지만, 3박 4일, 7박 8일 같은 단기 여행이 아니라 한 달 정도를 진득하게 천천히 여행하고 돌아오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독일에서 일을 하게 되면, 최소한의 법정 휴가가 24일이니까 한 번에 3주 여행 쓰는 게 대단히 특별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유로운 방학은 학생의 특권 아니겠는가.

포르투는 다녀온 사람들마다 다들 칭찬 일색이기에 무조건 가고 싶었고,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건축물에 원래도 관심이 있었던 차에, 주거난으로 2028년까지 관광용 숙소를 다 없애겠다는 기사가 자꾸 보이길래 이 참에 빨리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발렌시아는 친구가 교환학생을 가게 되어서 친구 얼굴도 볼 겸 선택하게 되었다.


포르투와 발렌시아, 그리고 바르셀로나.

모두 남유럽에 위치하는 지중해성 날씨를 가진 국가들이다. 겨울에 아테네와 이스라엘, 모로코를 다녀왔었는데 바닷가에 하반신까지 담글 정도로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또 햇살이 너무 따사해서 그늘 없이 도시를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땀이 흐르기까지 했다. 그에 반해 독일은 9월 달에 접어들면 구름이 파란 하늘을 가려 햇살을 보기가 어렵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파란 하늘과 햇살을 볼 수 있을까? 사람이 해를 보지 못하면 쉽게 계절성 우울을 겪게 된다. 기나긴 겨울을 버틸 생각에 우울해질 바에는 9월 말 10월 초에 따뜻한 기운을 채워 넣어야겠다고 연 초에 계획하게 되었다.


그리고 따뜻한 햇살을 제외하고도 따뜻한 사람들이 그리웠다. 독일에 사는 건 불편한 일은 정말 적지만, 정을 느낄 일도 매우 적다. 개인주의적인 사회일수록 애정을 느끼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나는 지금 지내는 독일인 룸메들과 2년 반을 같이 살며 일상을 나누기도 하고 큰 틀에서 그들과 비슷한 정치성향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다른 인종에게 느끼는 만큼 끈끈함을 가지기는 어렵다. 이는 그들이 적은 공감과 표현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웃고 우는 일이 별로 없고, 내가 화나는 일을 흥분해서 얘기할 때 차분하게 "그런데 이건 어떻고 저쩧고.."라고 본인의 생각을 얘기한다. 물론 그런 면에서 매우 투명하기 때문에 내가 더 나아가서 상대방의 말이 간접적으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인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스트레이트로 받아들여도 돼서 편하다. 하지만 그냥 빈말해 주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나는 별로 화나는 일이 아니어도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화나면 '미친 거 아니야? 나도 존나 화나!!!!!!!'라고 외쳐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참고로 독일인 중에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을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렇게 9월 중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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