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형과 회피형의 거절 방식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데이팅앱을 켰다. 오늘 저녁에 두 번째 데이트를 약속한 상대에게서 새로운 알림이 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상단에 떠 있어야 할 사진과 이름이 사라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우리 분명 오늘 M 중앙역에서 18:11분에 만나기로,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가 복잡해서 자기 집에서 자고 갈 거냐며 그가 먼저 제안했는데.
하지만 예전 기억을 끄집어보니, 그가 직접 나와의 매치를 지우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 번은 대화를 하고 있던 상대가 사라졌는데, 며칠 뒤 그 사람과 다시 매치가 되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그의 왈 자기도 나와의 채팅이 사라졌다고 했다. 또 한 번은, 내가 한번 데이트했던 상대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지 않은 상태에서 내 핸드폰을 도둑맞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도둑을 맞아서, 일주일 뒤에 독일에 돌아와서 같은 전화번호의 심을 끼고 어플을 새로 설치한 후 핸드폰을 켜보니 그가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인스타 정도는 교환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렇게 고스팅 하는 것은 너무하다."느낌의 장문의 글을 보내놓았던 사건도 있었다.
이런 기억 때문에 나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저장해 놓기만 했던 그의 전화번호로 왓츠앱을 열어 문자를 보냈다. "안녕, 너가 내 틴더에서 없어졌어. 다행인지 불행인 건지 너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너가 줬던 번호 저장해 놨네. 어쨌든 오늘 만남은 취소된 걸로 알을게." 12시 40분에 이 챗을 보낼 때부터 내가 고스팅 당했구나 눈치챘지만, 18:11분까지 '그래도 몰라'라는 마음을 가졌다. 글을 쓰고 있는 21시에는 모든 게 명확해졌다.
첫 데이트에 상대는 매우 들뜬 모습을 보였다. 내가 연애를 하려면 좋은 대화와 토론거리가 끊기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니, 다음에 만나면 토론주제를 준비해 오겠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기차가 연착된다고 했다가 다시 정시 운행된다고 했더니, 이야기할 시간이 늘었다가 줄었다며 아쉬워했다. 나는 나의 세세한 이상형 조건에 그가 이미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잘 표현하는 성격(특히 남성들에게서)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한번 더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연애상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에게 fwb를 제안했다. 거절해도 되고 충분히 고민하고 알려달라고 그에게 얘기했다. 그렇게 던져는 놨지만 그는 연애를 하고 싶다고 데이트 때 얘기했으니, 응당 거절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하루정도 후에 내게 답을 했다. 해보자며. 언제 만나겠냐며.
그런데 그 이후로 그는 우리가 두 번째 약속을 잡은 날짜에 식중독이 걸렸다. 지금 돌아보면 식중독이 정말 걸린 건지 잘 모르겠다. 그 이후로는 감기에 걸렸다. 완전히 나은 후에 만나고 싶다며 그는 오늘로 날짜를 미뤘다.
그가 언제부터 두 번째 약속을 취소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에게 fwb를 제안한 날? 식중독에 걸렸다고 한 날? 감기에 걸려서 다 낫고 연락하려고 했다며, 내가 고스팅 당했었던 경험이 있다고 얘기했어서 고스팅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 날? 아니면 18시에 중앙역에서 만나자고 한 어제? 나를 매치에서 지워버린 오늘?
이 친구와 첫 번째 데이트 이후로도 다른 남성인 B와 데이트를 했는데, B는 내게 첫 번째 데이트 이후 나에게 인스타 아이디를 먼저 줬지만, 그 이후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 너에게 매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 최근에 어떤 사람이랑 연락하기 시작했는데, 그녀와 정말 잘 맞는 것 같아. 우리도 물론 잘 맞았지만, 나는 우선 그 사람과 더 발전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 너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메시지를 받았을 때 아쉽기는 했지만, 너무 이해가 갔고 인연을 찾기 힘든 데이팅 어플 세상 속에서 누군가와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을 정도면 그 둘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진심이 담긴 말은 거절일지언정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대화가 되는 상대는 안정감을 준다. 비슷한 시기에 데이트를 했던 사람 둘을 통해, '어떻게 하면 나는 다른 상대에게 더 나은 거절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스치는 인연은 너무 많지만, 적어도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상대라면, 거절을 하더라고 힘을 빼고 담백하게 나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좋은 맺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