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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패션 잡설

by 남자의 옷장

솔직한 얘기로 멋 ‘부리는 것-혹은 추구하는-’을 싫어한다.

옷쟁이가 하는 말로는 이상할 수 있지만, 이는 오랜 아집이다.

물론 이는 옷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말을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글을 쓰는 등 사람이 행하는 대부분의 모든 상황에 그렇다.


멋이라는 것은 사람이 부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 있나?

자연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자연(自然).

자는 한자로 ‘스스로 자’자이고, 연은 ‘불탈 연’자이다

‘스스로 불탄다.’거나 ‘스스로 명백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즉 누군가 불을 붙여 태우는 행위가 아닌 스스로 불을 내어 타는 것이거나 스스로 의심할 것 없이 뚜렷하다는 의미이다.

이는 존재의 본질이라고 개인적으로는 판단한다.


자연을 설명하게 되면 멋을 부리는 것과 상응됨이 보인다.

스스로 불타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확실하게 분리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으며, 자연의 사전적 의미 중 두 가지를 본다면 사실 해당 주장은 파훼될 수 있다.

그 의미로는 첫째로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스스로 존재(存在)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며 둘째로는 ‘사람의 의도적(意圖的)인 행위(行爲) 없이 저절로’이다.

멋을 부리는 것은 외부에서 무언가를 들여오거나, 사람의 힘으로 즉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멋을 부리는 것은 자연과는 다르다.


멋의 온전한 사전적 의미로는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움.’ 혹은 ‘고상한 품격이나 운치.’가 있다.

멋을 부린다는 것은 해당 의미들을 인위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의미를 해부한다면 자연과 맞닿아 있음도 추리할 수 있다.

자연이 사람에 힘이 더해지지 않는, 사람의 의도적 행위가 없이 스스로 존재 의심할 것 없이 뚜렷한 상태라면, 멋에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의도적 행위조차 없이 뚜렷한 상태로 고상한 품격이나 운치 혹은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움이 나타난다면 이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멋은 추구하지 않지만 존재할 때 멋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옷쟁이인 필자에게는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은 옷을 멋지게 입으려고 노력하지 않나?”

-이 답을 하기 전에 먼저 하고픈 말은 필자는 멋지지 않다.-물론 이는 틀리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멋을 추구하려 입지는 않지만 멋을 표현하려 옷을 입기 때문이다.

이는 ‘멋을 위해 옷을 가져오지 않는다.’라고도 할 수 있다.

항상 하는 고민은 ‘자연스러운 나는 무엇인가? 어떠한 모습인가?’이다.

즉, ‘자연스러운 나는 무엇인가? 어떠한 모습인가?’에 대한 질문의 도우미로 옷을 가져와 나를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가?’가 아닌, ‘나는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며 어떻게 입어 합일을 이루길 원하는가?’에 대한 멋의 표현이며 멋의 의미인 ‘차림새, 행동, 됨됨이’와 옷을 합일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옷은 멋을 위하여 존재하지 않나? 옷은 멋의 표현이니 이는 어폐가 있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옷 또한 자연스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엔 클래식 의복들이 그러하다.

클래식 의복들은 기후, 사회적 자리-혹은 위치- 등 살아가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라는 자연에 존재하여 오랜 시간 자연이 되어간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수트, 레인 코트, 니트 등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클래식 의복의 모양이나 실용성 혹은 존재의 목적성이 뚜렷한 것들이 그러하다.

즉, 존재의 이유가 분명하고 그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뿐인, 자연의 사전적 의미인 ‘사물(事物)의 본성(本性)이나 본질(本質).’에 일치하는 그런 옷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온 클래식 의복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솔직한 얘기로 멋 ‘부리는 것-혹은 추구하는-’을 싫어한다.”라는 주장을 꺼내고자 한다.

결과 결이 맞아 합일을 이뤄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결과 결이 맞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즉, 멋이 준비가 안되었다면 멋을 부리는 것은 자연과 멀어져 무용(無用)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멋을 부리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이다.


옷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옷으로 글을 마무리 해야할 것만 같다.

자연스럽게 입는다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앞서 말했듯 나의 자연과 옷의 자연을 합일시킬 때,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는 것 마냥 당연하고 쉬운 일이다.

우리의 자연은 패션쇼나 화려한 것에 있지 않다.

자연이 멋이며 멋이 자연이다.

‘그냥 그 본질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자연이며 멋도 그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어떤 본질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멋의 질문일 수도 있겠다.




* 이 글 등 남자의 옷장으로 적히는 모든 글의 저작권 및 아이디어는 남자의 옷장 본인에게 있습니다.


썸네일 이미지 출처 : UnsplashLlyfrgell Genedlaethol Cymru / The National Library of Wales


12MAY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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