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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패션 잡설

나는 패션을 전공하지 않는다.

의류학과 박사 수료생의 소리없는 아우성

by 남자의 옷장

많은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소개할 때 의류학과를 다니기 때문에 패션 전공하는 박사생이라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패션이 아닌 클래식 남성복 전공입니다.”라고 답한다.

그냥 웃으며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이를 확실하게 해두지 않는다면 이는 나에 대한 부정이자 클래식 남성복, 아니 더 나아가 여태 치열하게 살아왔던 남성들에 대한 배반이라고 판단한다.


이는 내가 의류학과 내에서 전공하는 패션이라는 거대한 범주 내의 세부 전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클래식 남성복은 절대 패션이 아니며, 패션의 탈을 쓸 수밖에 없는 인문학이다.

하지만 이는 사회 통념에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론이나 사상이며, ‘소리없는 아우성’이나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같은 혼자만의 이유있는 반항이다.


통상적으로 ‘옷 = 패션’이라는 개념이 현재 사회에 팽배하다.

그러나 이는 심히 잘못되었다.

기본 인문학이란, 인간 본연의 모습이고, 인간 본연의 모습이란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인간의 삶의 모습인, 인간의 기본적인 우리의 삶을 바라보자면, 아무리 고민을 하여도 ‘의식주’말고는 그 이상이 없다.

의식주라는 개념엔 그 어떤 철학적 이상도 지식의, 혹은 사유의 고통도 없다,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갈 뿐이다.

이에 ‘입는다’는 것은, 아니, 이에 ‘존재’하는 것은 큰 범주에서의 ‘옷’이다.


옷이라는 단어를 꺼내었기에 앞서 말한 패션이라는 개념을 의식주로 가져와야만 하겠다.

의식주의 개념 하에, 살기 위해 입는 것은 추위나 더위 혹은 여러 기후, 더 큰 범주에서의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것보다 진정한 인간의 본질은 없다고 사료된다.


인간은 그저 살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를 창조해 내었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의식주는 사회 안으로 편입된다.

그렇다면 사회로 들어온 의식주는 사회성을 띠며 존재하게 될 것이다.


사회란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 가족, 마을, 조합, 교회, 계급, 국가, 정당, 회사 따위가 그 주요 형태이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간은 그곳에서 옷을 입으며, 개인이 속한 사회에서 예의를 차리거나 소속감-유니폼과 같은-을 나타낸다.

그리고 정말 공교롭게도, 클래식 남성복이라 불리우는 것들은 그러한 사회를 위해 태동되었다.


전쟁터, 일터, 공장, 법정, 왕정, 사교회, 운동장, 사냥터, 사막-혹은 정글과 같은 자연- 등 사회가 만들어 낸 장소에서 태동된 남성복은 현재 ‘클래식’이라고 불리우며 입힌다.

이는 누가 만든 지도, 누가 제안한지도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남성들은 그곳에서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남성복은 그렇게 입혔다.


사회를 위하여, 그 안의 자신을 위하여 입힌 것을 유행에 민감하거나 사치에 예민한 패션이라는 범주로 끌어오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이것을 인문학이 아닌 패션이라고 해석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것을 패션에서 분리하고자 노력한다.

글을 적는 것 또한 그 이유이며, 논문을 구상할 때도 양적연구-통계를 이용하는-가 아닌 질적연구-소수의 인터뷰를 통한-를 중심으로 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자본으로 점철되는 패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소수의 목소리는 더욱이 중요하기에 그렇다.


나는 소수이다.

소수이지만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

연구를 하는 소수를 위한 사람이고 싶기도 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남성의 역사에 함께한 옷들에게 마침표를 찍는 세상을 목도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에 오늘도 묵묵히 앉아 연구를 한다.


글을 마치며, 클래식 남성복을 패션으로 인정하는 순간 나의 존재 개념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의 개념이나 양자역학을 바탕으로 하는 ‘지각할 수 없는 나’가 아닌, ‘존재하지 않는 나’, ‘본래 없던 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때에 나는 소수가 아닌 무(無)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결국에 나는, 패션을 전공하지 않는다.





* 이 글 등 남자의 옷장으로 적히는 모든 글의 저작권 및 아이디어는 남자의 옷장 본인에게 있습니다.


썸네일 이미지 출처 : UnsplashLlyfrgell Genedlaethol Cymru / The National Library of Wales


30MAY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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