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무척이나 독서에 빠져있었다. 그 당시엔 유튜브도 스마트폰도 없으니 딱히 시간 보낼 것이 마땅치 않아서 그랬나 생각도 들지만 그 시절에는 그 시절의 감성으로 바빴다. 학교 운동장에서 뛰노느라, 부모님 몰래 담배연기 가득한 오락실 방문하랴 그 나름으로 다채로운 활동으로 시간을 바삐 보냈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뛰놀기 좋아하던 어릴 적에, 그 와중에도 어떤 영문에서인지 책을 읽는 것은 내게 즐거움으로 느껴졌고, 정말 운 좋게도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그런 독서가 그 이후의 삶에서 어떤 도움이 될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생각지도, 생각할 이유도 없던 순수한 쾌락이었다.
출처 @martinpechy
언제부터 글 읽는 것을 좋아했는지는 또렷이 떠오르진 않지만, 부모님께서도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초등학교에서 한 블록만 지나면 서점이 있었는데 부모님께서는 내가 언제든 원하는 만큼 책을 읽을 수 있게 선불금을 서점에 맡기셨다. 때때로는 선불금을 다 소진한 상태에서도 90년대 특유의 동네 주민 신용제도와 외상 문화로 후불제 독서도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어울려 다니지 않고 혼자 하교할 때는 서점을 가는 것이 일상적인 나날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독서의 스펙트럼이 어이없을 정도로 넓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필독서 목록에 있었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같은 책들부터 베스트일레븐이라는 축구 주간지, Autobike라는 오토바이 잡지까지 그냥 그날그날 눈에 띄는 것이 곧 취향이 되는 잡식성 독서였다. 닥치는 대로 읽어대던 쾌락적 독서는 중고등학교까지 이어졌고, 모르는 사이에 취향은 조금 더 명확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역시 어떤 이유에선지 국제정치 같은 분야에도 꽤 관심이 많았는데, 고등학교 때는 가방에 샐리 그 해리슨의 “코리안 엔드게임”이라는 책을 꽤 오랫동안 넣어 다녔던 기억이 선명하다. 남북한 정세에 대한 순수한 관심으로 사서 읽기 시작했지만 그 당시의 지적인 한계로 읽는데 수개월이 걸렸던 것 같다. 이때가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독서가 어려워진 시기였다. 책이라는 존재는 늘 새로운 정보와 이야기로 가득해서 재미있기만 한 행위였는데 처음으로 무언가 끝내지 못한 숙제를 늘 가슴에 안고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던 순간. 그 영향인지, 입시가 가까워져서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어쨌든 나의 독서는 그 지점에서 한번 정체기에 빠졌던 것 같다.
그렇게 대학입시를 마치고, 취업이나 미래 같은 복잡한 계산도 없이 ‘평소 관심 많았던 과를 가야지’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 후로 독서는 학업 관련된 분야의 독서로 한정이 되었던 것 같다. 세계 외교사 수업을 들으면 세계대전 관련 독서를 하는 식의 필요에 의한 독서였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마치고 취업을 해서 회사생활을 하던 약 7년간은 간간히 책을 읽어왔지만 진짜로 읽는 즐거움보다는 바쁜 회사생활 와중에 책 한 권 챙겨 들고 카페를 찾아다니며 책을 읽는 그 자체로 내 삶이 그리 팍팍하진 않음을 스스로 위로하는 행위였던 것 같다. 나름 치열했던 사회초년기를 겪어내고 창업을 결심하고 퇴사를 하기까지 내내 그랬다. 처음 회사를 설립하고 사무실 겸 쇼룸이 완성되고, 당시 나름 최고의 사치였던 제네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반지하지만 감사하게 비치는 따스한 햇살, 그리고 낮에도 마음껏 독서를 할 수 있다는 해방감과 함께, 그렇게 나는 다시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을 되찾았다.
다시 본격적으로 많은 책들을 읽어가면서 나 나름의 독서방법이 새로이 정립되었다. 완독을 하지 못하면 다음 책으로 넘어가지 못하던 습관으로 때때로 독서가 굉장한 부담감으로 다가왔었더랬다. 그러는 와중에도 책 구매욕은 전혀 떨어지지 않아서 매달 책상 한 켠에 쌓여가는 새로 산 책들은 왠지 모를 묘한 뿌듯함과 동시에 부담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독서의 방법도 내가 처한 환경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듯하다. 회사를 설립하고 할 일은 훨씬 더 많아졌지만, 나름 업무 스케줄을 내가 정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되면서 독서도 더 자유로이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완독 하지 않고도 과감히 던져버리는 책들도 생겼고, 그러다 다른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던져버렸던 책이 읽고 싶어지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주로 자기 계발 서적이나 소소한 주제의 인문학 서적에 집중했었고 소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읽었었는데, 독서량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레 소설을 읽는 절대량도 증가했다. 그렇게 소설의 즐거움도 조금씩 알게 되어 인문학 서적들, 디자인 서적들, 자기 개발서 사이에 간간히 의식적으로 소설을 끼워 넣게 되었다.
스스로 책을 구매할 때 독서의 성질을 나름의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크게는 순수하게 나의 즐거움을 위해 읽는 독서, 업무 관련 소양을 높이기 위한 공부 독서로 나뉘는데 리빙업계에 종사하며 읽게 된 디자인 관련 서적처럼 그 분류가 모호한 독서도 많다. 공부 독서로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꽤 자주 일어난다. 이처럼 지금 나의 독서는 많이 자유로워졌다. ‘꼭 완독을 해야겠다’던지 ‘언제까지 다 읽어야지’하는 마음에서 해방되고 나니 더 자주 편하게 독서를 하게 되었다. 자유로워진 그 자체가 하나의 규칙이 되었달까?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할 때면 자주 보게 되는 표정이 있다. 고마움과 부담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표정. 그럴 때마다 간단하게 나의 독서방법론을 전한다. 읽히면 읽히는데 까지, 읽고 싶은 순간이 생길 때 읽으면 그만이라고. 하다못해 그 책이 책상 한켠에서 나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라도 된다면 그거대로 책은 소명을 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