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WA 제국을 향한 거대한 설계
페이팔(PayPal) 마피아의 대부, 팔란티어(Palantir)의 설계자, 그리고 페이스북(Facebook)의 첫 번째 외부 투자자
피터 틸(Peter Thiel)이라는 이름 앞에는 늘 ‘시대를 앞서간 통찰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실리콘밸리에서 그의 투자 결정은 단순한 자본 투입을 넘어, 미래 산업의 방향을 예측하는 ‘예언’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런 그가 지금 이더리움(Ethereum)에 거대한 베팅을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암호화폐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아니다. 틸의 행보는 이더리움이라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차세대 금융 인프라의 핵심, 즉 ‘실물자산(Real World Asset, RWA) 토큰화’ 시장의 독점적 지배자가 되려는 거대한 설계에 가깝다. 그가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를 통해 ETHZilla, 비트마인(Bitmine)과 같은 이더리움 생태계의 핵심 기업들 지분을 공격적으로 확보하는 이유는, 월스트리트의 천문학적인 자금이 블록체인으로 밀려 들어올 때 그들이 선택할 유일한 길이 이더리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이것은 페이팔을 통해 디지털 결제 시장의 판도를 바꿨던 그의 통찰력이 블록체인 시대에 다시 한번 발현되는 순간이다.
1. 월스트리트의 유일한 선택지: 왜 이더리움인가?
2030년까지 시장 규모가 10조 달러(약 1경 3,8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RWA 토큰화는 금융의 미래 그 자체다. 주식, 채권, 부동산과 같은 현실 세계의 자산이 블록체인 위에서 디지털 토큰으로 거래되는 이 거대한 전환의 중심에 어떤 플랫폼이 서게 될까?
솔라나(Solana)의 빠른 속도, 카르다노(Cardano)의 기술적 우아함도 거론되지만, 조 단위 자금을 움직이는 월스트리트의 기관 투자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뢰성’과 ‘안정성’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더리움은 다른 모든 경쟁자를 압도한다.
첫째, 검증된 역사와 네트워크의 견고 함이다. 이더리움은 2015년 출시 이후 단 한 번도 네트워크 전체가 멈춘 적이 없다. 이는 수많은 해킹 위협과 시장의 변동성 속에서도 네트워크의 근본적인 보안성과 탈중앙성이 훼손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반면, 경쟁자로 꼽히는 솔라나는 여러 차례 네트워크 중단을 겪으며 기관 투자자들에게 치명적인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수십억 달러의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 입장에서 거래의 신속성보다 중요한 것은 ‘거래가 반드시, 그리고 안전하게 실행될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이다. 이더리움은 지난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 믿음을 쌓아왔다.
둘째, 이미 완성된 규제 프레임워크와 기관 인프라다. 월스트리트 자금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명확한 규제 가이드라인과 이를 지원하는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함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상품(Commodity)’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산으로, 증권성 리스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현물 ETF 승인 과정에서 보여준 규제 당국과의 소통 경험, 그리고 JP모건, 피델리티 등 유수의 금융 기관들이 이미 이더리움 기반의 커스터디(수탁), 자산운용 서비스를 구축했다는 점은 후발주자들이 단기간에 따라올 수 없는 강력한 해자(moat)다. 기관들은 미지의 땅을 개척하기보다, 이미 길이 닦이고 표지판이 세워진 안전한 고속도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2. 틸의 전략: 토큰 매수를 넘어 생태계를 지배하라
피터 틸의 진정한 노림수는 그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단순히 이더리움(ETH) 토큰을 사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이더리움 생태계의 혈맥이 될 기업들의 지분을 직접 인수하며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ETHZilla(지분 7.5% 확보)와 비트마인(지분 9.1% 확보)이 바로 그 핵심이다.
이 두 기업은 단순한 이더리움 보유사가 아니다. 이들은 ‘기업형 이더리움 트레저리(Corporate Ethereum Treasury)’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마이크로스트래티지(MicroStrategy)가 비트코인을 기업의 핵심 예비 자산으로 채택하며 기관 자금 유입의 물꼬를 튼 전략과 유사하다. ETHZilla는 약 8만 2천 ETH, 비트마인은 무려 120만 ETH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자산을 활용해 스테이킹 수익을 창출하고 이더리움 기반의 다양한 금융 상품을 개발한다.
틸의 투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파괴적이다.
* 수요의 제도화: 기업들이 이더리움을 재무 자산으로 채택하기 시작하면, ETH에 대한 수요는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적 수요를 넘어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기관 수요로 전환된다. 이는 가격의 하방 경직성을 확보하고, 시장의 변동성을 줄여 더 많은 기관의 참여를 유도하는 선순환을 만든다.
* 인프라 장악: 틸은 단순히 ETH 가격 상승의 수혜를 입는 것을 넘어, RWA 자산이 이더리움 위에서 발행되고, 거래되고, 청산되는 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프라 기업들을 선점하고 있다. 이는 미래 금융 시스템의 ‘통행료’를 수취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는 것과 같다. 페이팔이 온라인 결제의 표준을 장악했듯, 틸은 이더리움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들을 통해 RWA 시장의 표준을 장악하려 한다.
3. 궁극의 목표: 글로벌 금융의 청산·결제 시장 독식
전통 금융 시스템에서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이 거래될 때마다 막대한 규모의 청산 및 결제 수수료가 발생한다. 이 시장은 보이지 않지만 금융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수익원이다. 만약 이 자산들이 이더리움 위에서 토큰화되어 거래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더리움은 P2P(개인 간) 방식으로 거래를 중개인 없이 거의 실시간으로 완결시킬 수 있는 ‘글로벌 결제 레이어’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RWA 토큰 거래가 활성화되면, 모든 거래 기록과 소유권 이전이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서 이루어지며, 이때 발생하는 거래 수수료(가스비)는 ETH로 지불된다.
이는 ETH의 가치 평가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ETH는 더 이상 단순한 디지털 자산이 아니라, 글로벌 RWA 경제의 기축 통화이자, 모든 금융 활동에 대한 수수료를 수취하는 거대 플랫폼의 지분 증권과 같은 성격을 띠게 된다. 10조 달러 규모의 RWA 시장에서 단 1%만 이더리움 네트워크로 유입되어도, 현재 이더리움에 예치된 총 자산(TVL)의 몇 배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가 창출된다. 이 거대한 파이를 이더리움이 독식하게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피터 틸은 그의 통찰력과 자본을 걸고 있는 것이다.
4. 미래를 향한 예언: 신뢰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결론적으로 피터 틸의 이더리움 베팅은 ‘네트워크 효과 + 규제 적합성 + 기관 인프라’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모두 만족시키는 유일한 플랫폼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그는 월스트리트와 기관들이 결국 가장 보수적이고 합리적인 선택, 즉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많은 플레이어가 참여하고 있는 생태계를 선택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솔라나의 속도나 다른 L1 체인들의 혁신적인 기술도 중요하지만,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금융의 역사는 결국 ‘신뢰’가 모든 가치의 기반임을 증명한다. 피터 틸은 이더리움이 바로 그 디지털 시대의 신뢰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인프라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의 투자는 암호화폐 시장의 단기적 변동성을 넘어, 전통 자산과 디지털 자산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미래 금융의 청사진을 향하고 있다. 틸의 예언이 현실이 될 때, 이더리움의 위상과 ETH의 가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재평가될 것이다.
요약: 피터 틸의 ETH 베팅 핵심 근거
구분
핵심 내용
근거 및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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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WA 시장 독점
월스트리트의 RWA 자산이 유입될 유일한 플랫폼으로 이더리움을 지목
규제 프레임워크, 기관 인프라, 네트워크 안정성에서 경쟁자 압도
생태계 지배 전략
단순 토큰 매수가 아닌 ETHZilla, 비트마인 등 핵심 인프라 기업 지분 확보
기업형 트레저리 모델을 통해 기관 수요를 제도화하고 생태계 장악
금융 인프라 혁신
글로벌 금융의 청산·결제 시장을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대체할 것으로 기대
RWA 거래 수수료가 ETH의 내재적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것
기관의 신뢰성 선호
속도나 수수료보다 네트워크의 역사와 안정성을 기관이 최우선으로 고려
2015년 이후 무중단 운영으로 ‘검증된 신뢰’ 자산 구축
장기적 가치 투자
단기 시세 차익이 아닌, 차세대 금융 인프라의 지배자가 되려는 장기적 포석
페이팔 성공 전략과 유사, 미래 금융의 ‘통행료’ 수취 구조 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