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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힘 Mar 18. 2023

완벽주의 : 관계

거절의 어려움과 서운함

완벽주의의 대인관계 문제 


완벽주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싶어 한다. 대인관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완벽하다면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완벽한 사람이라면 그는 모든 사람을 다 기쁘게 해줘야 한다. 잘못을 저질러 타인에게 비판받고 싶지 않다. 비판받지 않기 위해서 애쓰지만, 만약 비판이 가해지면 그건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근거가 된다. 완벽주의에서 나타나는 대인관계 문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먼저 거절 이슈에 대해 살펴보자. 


대인관계에서의 거절


거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거절이 문제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10% 미만일 것이다. 여기서 속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 자기애적 인격, 싸패 동네 사람들, 남에게 부탁하는 사람들과 일부의 거절불능자에서 갱생한 사람들이다. 굳이 완벽주의가 없더라도 거절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완벽주의에서는 완벽주의 방식으로 거절을 못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거절하지 않고도 잘하는 게 자신의 완벽성에 대한 증명이다. 마무리를 잘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한 달 동안 다이어트를 계획했는데 27일째라면 남은 3일 조절이 안되어서 그게 깨진다면 너무 억울해서 참을 수 없다. 만약 한두 번 이미 다이어트 계획에 실패의 빨간펜이 그어졌다면 동기가 확 떨어진다. 공부나 운동 등등 다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다른 건 완벽하지 않아도 목표한 데서만 완벽하게 수행하면 되는데 완벽주의에서는 이런 완벽성에 대한 추구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점이 차이다. 그동안 잘해왔는데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서 완벽성에 흠이 가는 건 억울한 일이다. 


두 번째로는 완벽한 사람들은 기대에 맞춰 산다. 주로 남들의, 너무 높아서 비현실적인 기대치에 맞춰 산다. '너 정도면 이런 건, ~ '이라는 식으로 시작되는 기대치의 주입과 강요는 아주 오랜 역사가 있다. 어릴 때 부모님, 나중에는 선생님이나 동료 등등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기대를 한다. 그렇게 부과된 기대치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고, 그에게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로 부과된다. 다들 핑계 대며 회식 안 오려할 때 인원체크하는 김 과장에게 완벽주의자 X 씨는 당연히 오는 사람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다. 동아리, 조별과제, 집안의 대소사 등 다 마찬가지이다. 


세 번째로는 한번 그렇게 형성되면 점차 당연해진다. 그러나 세상에는 당연한 것은 없다. 집이든, 연인관계든, 회사든 뭔가 무리스러운데도 잘 돌아가고 있다면 한번 살펴봐야 한다. 그 당연함의 토대로 이미 많이 무너져 내려앉아 있는 건 아닌지? 30년 진료하면서 몇 손가락에 드는 능력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모 화학 관련 회사에서 5명이 있는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일을 잘하고 거절하지 못하니 점차 일이 몰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실적의 70% 정도를 본인이 했다고 한다. 나머지 네 명 중 한 명 정도가 자기 역할을 했다고 가정하면 (-20%), 남은 10%를 세 명이 했다는 식의 계산이 나올 수 있다. 이 10% 중에서도 아마 또 어떤 사람은 희생적으로 한 5% 정도하고 나머지 5%를 둘이 나눠서 했을 것 같다. 결론은 1년 만의 퇴사였다. 적당히 했으면 아마도 오래 부려 먹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질 못하고 도망가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착취 구조는 예외가 아니라 룰이다. 사기업, 공무원 사회 할 것 없이. 


네 번째로는 죄책감이나 불안감이다. 완벽주의자의 마음속에 거절에 대한 죄책감이나 거절의 결과를 걱정하는 불안감이 생겨난다. 처음에는 상대와 무관하게 자가발전하는 감정들이다. 상대도 악의적으로 죄책감을 유발하거나 불안을 조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는 거절하면 마치 할 수 있음에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 안 해주는 것처럼 몰아간다. 관계의 파탄을 빌미로 불안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는 완벽주의자들이 거절하지 않고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계획을 할 때 그걸 기정사실화해서 염두에 두고 일을 벌인다. 매번 쓰지도 않을 자석요 같은 걸 사들여서 월급이 많지도 않은 딸에게 부담시킨 어머니가 있었다. 딸은 대출로 어머니의 무절제한 소비를 감당해야 했다. 나중에 거절을 하니, '네가 해줄 줄 알고 했는데 안 해주면 어떻게 하냐?'는 식의 응답이 돌아왔다. 상대방이 정말 곤란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정당성을 잘 따져지 않고 보면 완벽주의자가 잘못해서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인다. 결국 오래된 관계는 착취적인 구조로 들어간다. 


다섯 번째로는 일을 잘하니까 문제이다. 예전에 우스개 소리로, 남편들이 설거지를 하지 않으려면 부인이 설거지 시킨 첫날 부인이 아끼는 접시를 깨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렇게 접시를 깬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었을지 모르지만 회사나 학교에서는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미적대고 있으면 결국 마음이 급한 완벽주의자들이 다하게 되어 있다. 이 기싸움이 이기려 하기보다는 그냥 자기가 해버리면 금방 끝날 일이다. 그렇다 보면 아랫사람일 때는 당연하고 윗사람이 되어도 아랫사람보다 일을 더 할 때가 많다. 


여섯 번째로는 '내 탓이요'이다. 결국 자기 한 사람이 조금 더 힘들면 모든 게 다 잘 돌아간다. 다섯 번째에서 살펴본 것처럼 실제로 그렇게도 된다. 이것도 반복되면, 자기가 희생하면(부당하다!!!), 일이 조용히 잘 수습된다. 그러면 그 사람 마음속, 타인의 시선에서 그런 게 느껴진다. 


사실 잘 길들인 완벽주의자 한 명 있으면 여러 사람이 편하다. 그래서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정체성을 규정하는 칭찬, 압박, 죄책감 유발 등등의 방법으로 그렇게 몰아간다. 


아까 그 화학회사의 능력자처럼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입장이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한도초과된 과도한 일들은 그 사람을 짓누른다. 견디기 힘들어 다른 사람을 보면, 자기는 강아지 고생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주식 차트를 보거나, 쇼핑, 연예란, SNS 글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심지어는 발톱을 깎는 사람도 있다. 억울하다. 서운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운함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 그럼 진작 얘기하지 (힘든 거 옆에서 뻔히 보면서)

- 늘 그래왔잖아(그래서 이제부턴 안 그럴 거야)

- 왜 새삼스레 풍파를...(안 그러면 니들이 신경이나 쓰겠냐?)


완벽주의자들은 일은 잘해도 사람을 잘 못 다룬다. 이런 문제로 갈등이 생기면 결론이 


- 그래 당신이 일을 좀 더 한 건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사회생활하는 것도 문제다.


라는 식으로 어마어마한 노력과 희생과 한번 미숙하게 문제제기한 게 동급으로 처리된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머리 똑바로 차리고 대응해야 한다. 


산화력이 매우 좋은 유기용매(점잖은 매너, 그럴싸한 말, 인자한 미소, 무의미한 덕담을 주성분으로 하는)로 1% ~ 10% 정도로 희석된 연진이 같은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지금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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