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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힘 Mar 15. 2023

완벽주의 문제: 미루기

미루기

미루기


미루기는 완변주의에서 나타나는 성취 관련 문제의 끝판왕이다. 미루기의 유사형이 시작을 못하는 현상이다. 시작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당연히 미루겠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을 하면 미루지 않고 꾸역 꾸역이라도 일을 한다. 반면 원단 미루기는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하고 시작을 해도 카톡 울림 한 번에 무너져서 몇 시간을 허비한다. 완벽주의적인 욕심에 해야 할 일이 많고 스스로나 자신이 짜놓은 시스템의 재촉을 받으면서도 미루니까 자신이 더 한심하게 느껴진다.  머리로는 아는데 안 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미루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미루는 이유들 


1. 실패에 대한 두려움 


완벽주의자들의 평가법은 독특하다. 학점처럼 A, B, C, D, F로 구간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A와 F만 있다. 인지왜곡으로 표현하면 흑백논리이다. 흑백논리라는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흑백논리가 단순히 중간이 없다는 식으로만 알고 있다면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다. 흑백논리의 핵심은 백이 아닌 모든 게 흑으로 레이블을 붙이는 채점방식이다. 즉 A+가 아닌 모든 것은 F이다. 정치에서라면 내편이 아닌 모든 사람이나 세력은 적이다. 점수로 얘기하면 100점이 아닌 모든 건 0점으로 채점이 된다. 그런데 잘하는 사람이라도 항상 100점을 받는 게 아니라 낮은 점수도 받고, 가끔은 정말 안 좋으면 0점 가까운 점수를 받을 정도의 낮은 성취를 보인다. 농구의 신인 마이클 조던도 못할 때가 많다. 항상 잘했으면 스포츠 뉴스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만한 짜릿한 버저 비터의 역전 드라마는 없었을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종료 직전 슛을 성공시켜 팀을 승리로 이끈 버저 비터가 많지만 이 사진의 시카고 왕조에서의 마지막 버저 비터가 특별하다. 1998년의 NBA final에서도 우승은 했지만 이 경기는 순탄치 않았다. 종료 직전까지 박빙의 승부였다. 그리고 6.6초전 역사적인 이 마지막 버저비터 급의 슛을 성공시키기 전에 몇 차례 슛 시도에서 실패했다. 그가 만약 그 실패에 주눅들어 위축되었다면 이 장면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위대함은 직전 몇 차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없이 그 슛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슛. 1998 NBA Final vs Jazz. 이 슛 직전 여러 개를 실패했고, 6.6초를 남겨 놓고 이 마지막 슛을 성공시켜 6번째 NBA 챔피언이 된다.

실패를 감당하지 못하면, 


완벽하지 않으면 99점이라도 0점 처리해 버리는 완벽주의적인 평가법 때문에 아무리 일을 잘해도 불만스럽다. 잘해도 실패로 처리되니 부담이 커진다.  제대로 한다고 해도 그 성취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거나(‘ 큰 의미 없는 일이야’), 우연적인 일로 치부해 버린다.(‘이번에만 어쩌다 잘했어’) 당연히 재미도 없고, 하기 싫다. 해야 하는 건 아니까 일을 붙들고 있긴 하지만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미룬다. 때로는 표면적으로는 열심히 하지만 일이 안되도록 방해를 한다. 혼자 그럴 수도 있고, 상사의 지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한다. 대놓고는 안되니까, 하는 척하면서 방해를 하는 이 작업을 수동공격성(passive aggresiveness)이라고 한다. 수동공격성은 완벽주의의 사촌격인 강박적 인격에서 흔히 보이는 방어기제이다. 상대가 힘이 강하거나, 내가 직접 거절하기 힘든 경우, 일단 수용을 하고 나중에 무력화시킨다. 상사의 권유?로 등산을 가게 되면 대놓고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수동공격성이라는 마법의 방어기제를 쓰면, 갑자기 누가 돌아가시거나, '마침' 몸에서 어딘가가 아파준다. 


2. 현실과 구상의 괴리 


책 보고 연애를 배운 사람의 연애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연애뿐 아니라 뭘 해도 현장에서의 실제 경험이 없으면 배를 만들어도 산에서나 그 배를 보게 된다. 산으로 간 배는 개인의 일이 아니라 나랏일에도 마찬가지로 흔히 볼 수 있다.  여러 정권에 걸쳐 몇 백조가  넘는 돈을 들여서도 출산율은 0.7 대로 떨어졌다. 결국 아이를 낳아야 하는 젊은 사람들의 삶이나 마음을 모르니까  생긴 일이다. 


이런 일은 특히나 초보 완벽주의자들에게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마음속의 완벽한 구상과 동떨어진 현실의 모습 사이의 괴리는 피할 수 없다. 시도와 실패 그리고 반성과 재시도 즉 한마디로 해서 현장 경험이 쌓여야 머릿속의 구상 자체가 현실에 적용가능한 수준으로 나온다. 구상을 하고, 실제로 만들어보고 그 차이를 체감하게 되면 구상 단계에서부터 현실적으로 구현이 가능한 방식으로 상상이 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현실적이지 못한 상상 한다. 그 상상의 멋진 구상은 현실에 발을 디디고 나서 많은 피드백과 수정을 거친 후 개선된 현실의 모습과는 전혀 닮아 있지 않다. 경험을 할수록 뇌와 상상도 진화해서 현실에서 구현가능한 방식으로 변화한다. 어떻게든 경험을 해봐야 한다. 하지만 완벽한 경험을 하려 시도를 않는다. 그러면 그 사람의 계획과 상상은 현실이 반영되지 않는다. 그 구상으로는 일을 도저히 진행을 할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내기만 하는 되는 졸업작품을 내지 못해서 몇 년을 허비한 분도 있었다. 



3. 선택 불능증


완벽주의는 완벽한 것을 추구한다. 이 완벽은 주로 완성도 면에서 나타나지만, 종합선물세트처럼 스펙의 다양성으로도 나타난다. 사무직 직장을 보면,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같은 사무능력, 왠지 당장 쓰이지 않아도 꼭 알아야 할 것 같은 영어,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 한때 신의 물방울이라는 히트 만화를 끼고 공부했던 와인 같은 교양,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 인테리어 같은 집 꾸미기, 바다 건너가보고 나서 밀라노나 바르셀로나의 성당의 특징 등등. 알아야 할 것, 터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앞에서 말한 대로 우선순위가 조절되지 않으니, 분명 시기적으로 더 급한 일, 필요한 일이 있을 텐데도 그 일들이 일렬로 늘어선 것 같다. 태양계라면 수성과 해왕성이 같은 라인에서 공전하고 있다. 작아도 급하게 해야 할 수성 같은 일도 있고,  멀리 있어 급하지 않지만 목성처럼 크고 중요한 일도 있을 텐데 그런 게 다 무시되고 일렬로 늘어서 있다. 완벽주의 필터를 끼고 나면 모든 일이 다 중요해 보이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조율하지 못하고 붙잡고 있어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 결과해야 할 일이 쌓입니다. 주말에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to do list 앱이 버거워할 정도로 일의 목록을 쌓아 놓지만 결국은 월요일 아침이 되면 지난 주말에 한 일은 미니멀리즘의 극치이다.  


완벽주의 필터를 끼고 태양계를 보면, 거리감도 없고(급한일 구분x), 크기도 같아 보인다(중요도 구분 x)


완벽주의자들은 완벽한 성향 때문에 뭔가 손대면 어지간히 하는 경우도 많다. 장점일 수도 있지만 정리되지 않은 다양한 시도와 재능은 오히려 독이 되어 뭔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점은 정도면에서의 완벽추구와 갈등을 일으켜 분명 완벽주의자에다 열심히 했는데, 오히려 제대로 완벽하게 하는 게 없는 역설을 불러오기도 한다.  


4. 감, 디테일이 없다. 


거시적으로는 해야 할 일이 감이 오지만 미시적으로 지금 당장 눈앞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 

감은 경험이 많이 쌓여야 생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회피하다보면 감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감을 가지고 한다. 이 감은 자꾸 하다보면 생긴다. 요리를 해도 무슨 요리를 할 지 선정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를 하는 기본 틀이 있다. 사업의 경우, 먼저 제일 먼저 수익모델을 챙겨서 된다고 보면, 먼저 진입한 경쟁업체를 살펴보고 자신이 그걸 넘어설 무기가 있는지 살펴보고 나야 시작을 할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틀을 스키마(schema)라고 한다. 스키마는 원래 지식의 체계라는 의미인데,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그 바닥에서 오래 버티면서 알게 되는작동원리 같은 것이다. 이 스키마는 책에서 배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은 경험을 통해서 자기 분야에서 적용이 가능한 자기 것으로 체화해야 한다. 숙련의 정도는 몸에 밴 틀이 자동적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시작도 저절로 되고, 시작이 저절로 된다면 미룰 이유가 없다. 



5. 미루기 누적 효과 


오랜 기간 동안의 미루기 인해서 일이 밀려서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경우이다. 


일이 밀리다 보면 그 분량이 많아진다. 애초에 완벽하게 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하기 힘들었는데, 밀려서 눈덩이처럼 그 양이 커지다보면 감당이 안된다. 이제와서는 대충 해치워버리는 것도 안되고 일단 시작하고 보는 일도 불가능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악순환이 계속된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하거나 큰 마음먹고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갈 정도의 노력으로 미룬 일을 처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 없으니 타인의 도움은 일시적이다. 사실은 그 부탁을 하기도 힘들다. 어떤 아름다운 모델 분이 있었다. 그 분은 집안을 제대로 치우고 싶었지만 미루다보니 점점 힘들어졌다. 그 결과, 문에서 침대로 가기 위해서는 바다가 갈라지듯 쓰레기 더미를 치워야 길이 만들어졌다. 


혼자서 조금씩이라도 해보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가족의 도움을 얻으면? 미안하다. 

친구의 도움을 얻으면? 창피하다. 

업체의 도움을 얻으면? 돈도 들고, 거기도 창피하다. 

결국에는 큰 돈을 들여 사람을 써서 마대자루 수십개를 버리고서야 집이 깨끗해졌다. 

이런 미루던 일을 혼자서 했다면, 무리한 노력으로 인한 해결은 일단 급한 불은 껐겠지만 그 일은 점점 엄두가 안 나는 어마어마한 일로 각인된다. 미뤘던 일을 완벽하게 제대로 하면 며칠 고생하고, 그 후유증도 오래 갈 것이다. 위의 예처럼 밀린 청소라면 주말 내내 고생하고 다음 한 주 동안 고민할 것이다. 이런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시간의 문제이지 이런 시도를 아예 안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가중된 부담이고, 미뤘던 일들은 점점 손을 대기가 힘들어 진다. 




 

6. 습관화


 미루는 게 습관이 되면 점점 미루는 선택이 자동화되어 처음에는 강한 저항과 고민 후에 미뤘다면 점차 고민이 줄고 쉽게 미루게 된다. 일단 미루고 나면 그 순간은 너무 편하니까 미룬다. 나중에는 정말 미루니까 미루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버린다. 


그런데 미루기에도 뇌과학이 개입될 수 있다. 시험 전에 보는 웹툰이나 남의 sns는 평소보다 더 재미 있지 않은가?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저절로 그런게 아니라 이유가 있다. 그 비밀은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요즘 유행하는 ADHD의 치료제의 주성분이다. 조금 더 나가면 마약의 주성분이다. 도파민이 하는 일은 괘감과 보상을 해준다. 쾌감과 보상을 주니까 하고 싶어진다. 즉 동기의 신경전달물질이다. 

도파민이 나오면 일을 시작할 수 있고, 평소보다 더 몰입된다. 더 즐겁다. 그러니 특히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부담스러운 순간에 하는 딴 짓들이 더 즐겁다. 


이렇게 해서 딴짓을 하다 하다 보면 마감시간이 임박한다. 그러면 그제서야 발동이 걸리는데 이도 도파민이 시동을 걸어줘서 가능해진다. 물론 시간이 없으니까,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미루는 의미가 퇴색된다. 막판에 급하게 할 정도의 완성도라면 진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미룬 건, 적어도 이보다는 더 잘 하고 싶어서였다. 마음 속으로 다짐을 한다. 다음에 꼭 미리 조금씩 해야지. 


하지만 그 일이 끝나면 도파민 분비도 끝난다. 다시 손하나 까딱할 수 없다. 해야할 일은 들여다 보기도 싫다.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일의 중요성이 나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결국은 도파민이 나오는 상황이 되어야 내가 움직일 수 있다. 


게임 좋아하는 초딩 막내 뿐 아니라, 정년 보장을 받기 위해 논문을 써야 하는 교수, 수천만 뷰의 웹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돈이 급한 프리랜서 작가도 마음은 아닌데 몸이 배신한다. 그놈의 도파민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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