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 미래를 짊어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바쁘지?
이렇게 생각하며 시간과 인력부족에 허덕이는 우리 안쓰러운 팀 리더들에게 마음 깊이 조의를 표하며, 비루하지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이 글을 바칩니다.
많은 팀 리더들이 프로젝트 관리에 실패하는 주요 이유 중에 하나는 미래를 너무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정말 많은 직원들이 이런 실수를 해요. 예를 들어 자료 완성에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면 세 시간 걸린다고 하죠. 그런데 그 세 시간은 그동안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찾고자 하는 자료들을 금방금방 찾을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한 거예요.
그런데 세상일이 어디 그렇나요? 자료를 좀 쓰고 있다 보면 전화가 울리고, 간신히 전화를 끊었더니 상사가 급하다면서 자료를 찾아달라고 하죠. 다 끝내고 이제야 자료를 쓰기 시작했는데 꼭 필요한 통계가 아무리 찾아도 안 나와요. 간신히 찾아내니 맙소사, 회원가입을 해야 볼 수 있다네요. 회원가입을 했더니 관리자가 승인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안내문이 떠요
하……듣기만 해도 우울해지시죠?
그런데 그런 돌발 상황은 안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회사에서 누구도 방해 안 하는 세 시간이 있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니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직장인들 중에 하루 중에 아무도 말 걸지 않고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세 시간이 있는 분이 있으신가요? (프리랜서가 아닌데 그게 가능하다면 놀라운 비즈니스 환경입니다).
그러니 계산한 가정 자체가 틀린 거예요. 그런데 세 시간쯤 걸린다고 생각하고 데드라인 3~4시간 전에 일을 시작하면 그 친구는 번번이 프로젝트 기한을 망치겠죠.
예상하는 소요 시간과 업무량에 항상 2배를 더하세요. 오히려 그게 현실에 더 가까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없답니다
우리의 상사가 경영진으로부터 이번 신제품을 부각할 '감각적인 광고 문구와 디자인'을 만들어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해봅시다. 경영진이 회사의 기존 광고 방식에 불만을 표하는 모습에 주눅이 든 상사는 '그렇게 하겠노라'라고 약속하고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감각적인 광고가 뭘 말하는 거지?
상사가 독심술사도 아닌데 경영진 마음을 알 리가 없죠. 안 물어보고 그냥 나왔잖아요. 그래서 부하(우리 같은 약하고 어린양들이죠!)를 불러 경영진의 말을 되풀이해요.
“부사장님께서 이번 신제품을 위해 '감각적인 광고 문구와 디자인'을 만들라고 지시했어. 무슨 말인지 알지? 고민해서 내일모레까지 기획안을 보고하도록.”
아니. 너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진 못하고 입만 달싹거릴 테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예측 가능한 일입니다. 며칠 동안의 삽질 끝에 보고하고, 또 보고하고, 그리고 그중 몇 개를 골라 부사장에게 보고하면, 전면 재수정을 다시 하게 될 테죠. 그리고 보고하고, 또 보고하고를 거친 이후 사장에게 올라가면 다시 전면 재수정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의 상사가 무능하면 무능할수록 프로젝트 발주자(업무의 최초 지시자)를 가능한 한 빨리 만나야 하는 겁니다.
어차피 상사는 경영진과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요. 원래라면 그 상사는 경영진이 지시를 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 있는 '감각적인 광고'를 가능한 구체화 했어야 했어요. 최근 본 광고나 마케팅 중에 마음에 들었던 것이 있는지, 그리고 현재 회사의 광고 중에 가장 불만인 점들이 무엇인지 물어봤어야 하죠.
그렇게 일일이 물어보면
짜증 내지 않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제가 아는 CEO의 얘기를 전하겠습니다.
업무를 지시할 때 왜 안 물어보는지 모르겠어.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분명 모를 것 같은 업무인데 추가 질문이 없이 그냥 '네' 하고 가버린단 말이지. 알 리가 없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질문 없냐고 하면 없다고 해. 그리고는 며칠 후에 엉뚱한 결과물을 가져온단 말이지.
질문 없이 가져온 프로젝트는 발주자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상태이니 제대로 된 진척을 시킬 수가 없어요.
그러니 가능한 한 빨리 프로젝트 발주자인 경영진과 만나는 게 일을 쉽게 하는 노하우입니다. 시안과 기획안을 더 정교하게 짜는데 시간을 투입하지 말고, 감각적인 타 회사의 광고 안을 종류별로 모은 후에 경영진과 상사, 그리고 자기가 참석하는 회의를 잡으세요
회의 주제는 최근 '감각적 광고 마케팅의 유형'이 좋겠네요. 입소문이 난 광고를 종류별로 5개 정도 차례로 시연해 보이는 거죠. 우리 회사에 도입하려는 시안까지 만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미 있는 자료들을 카테고리로 유형화하여 보여주는 데는 하루 이틀이면 준비가 충분합니다.
그걸 보면 부사장이 이런저런 코멘트를 하기 시작할 것이고, 이때 비로소 우리는 부사장이 생각하는 '감각적인 광고'의 프레임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기 시작하죠. 그러면 일이 훨씬 쉬워집니다. 다음번 회의는 부사장의 소위 ‘감각적인’ 프레임 속에 있는 여러 시안을 만들어서 보여주면 되니까요.
이 차이가 별것 아닐 것 같으세요? ‘감각적인 식당을 찾아줘’와 ‘외국 바이어를 모시고 갈 감각적인 한식 레스토랑을 찾아줘’ 정도의 차이입니다.
특히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는 연설문, 발표자료 등을 작성할 때는 이 원칙이 더 중요합니다.
사장이 발표하는 자료에 우리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가져온들 소용이 없으니까요. 사례 위주의 스토리텔링식 발표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통계 중심의 자료를 잔뜩 가져오면 전면 재수정입니다. 반대로 객관적 데이터 위주로 얘기하는 사람에게 감성적인 사진과 스토리를 잔뜩 입힌 자료를 주면 못마땅할 뿐이죠.
게다가 사람은 어떤 자리에서는 팩트 위주로 얘기하고 싶어 하고, 어떤 자리에서는 스토리 위주로 얘기해보고 싶어 해요. 그 마음속을 우리가 어떻게 다 알겠어요?
그러니 가능한 한 빨리 만나세요
행사 직전에 최종 보고하면
잘해도 짜증내고
못하면 분노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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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승진의 정석>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