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근처 트럭이었다. 학교 정문 앞에 케이지 안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보며 야옹야옹 하고 울었다.
그 중 제일 귀여운 녀석을 만원에 데리고 왔다. 버스 안에서 꼬물꼬물 내 옷자락을 잡아 끄는게 귀여웠다.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나는 그럴싸한 바구니에 그 녀석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다른 무언가를 준비해 줘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집에 데리고 왔다. 하지만 잠결에 반짝이던 눈빛이 무서웠고 나는 그녀석을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그 녀석은 무슨 죄로 나 같이 무책임한 사람에게 와서 귀여움을 마음껏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졌는지. 그 녀석이 새로 간 집의 그 남학생은 뒤늦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고 돌려주겠다고 연락을 해 왔지만
다시 받기는 곤란하다며 나는 그 요청을 거절했다. 그 이후 그 녀석은 버려졌을까. 아니면 더 사랑을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갔을까.
하얀 아이였다. 아침마다 그 아이를 데리고 공원엘 나가면 그 귀여운 모습으로 누구나 한번은 한참을 서서 그 아이를 보곤 했다.
그럴 때면 나도 덩달아 우쭐해져서 그 아이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러던 그 아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경험이 없었던 나와 그는 마냥 사료가 안 맞아서 그런가 하고 사료를 더 무르게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설사에 혈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포털 사이트를 통해 개시장에서 데리고 온 아이라면 거의 10에 9는 걸린다는
그 병이라는 걸 알았다. 병원에서 10일 가량을 보냈고 병원에서는 아이가 복합적인 병들이 많아 살리기 힘들거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약을 썼고 그러기를 약 일주일, 그 아이는 호전이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약이 잘못 되었는지 아이가 너무 흥분을 한 그날은 마침 그도 없었고 나는 심지어 창문에 올라가서 날뛰는 그 아이를 피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그 아이가 무서웠다. 그래서 길에 그 아이를 두고 도망쳤다. 그건 범죄였다. 지금도 나는 그 때의 생각이 난다.
그 아이가 길에서 느꼈을 슬픔과 분노, 그리고 거기에 죄책감이 더해진다.
뒤늦게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서 그 시간을 돌릴 수 있는건 아니었다.
멀리서 입양해 데리고 온 썰매를 끄는 아이는 귀가 말랑 말랑 했고 늑대를 닮았지만 늑대가 아니었다.
장난꾸러기의 얼굴을 한 그 녀석은 한 겨울에 같은 병에 걸려 시름 시름 앓았다.
보온이 중요하다고 그 녀석 옆에 항상 이동식 난로를 두고 그 녀석 옆을 지키느라 받았던 그 열기가 아직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녀석은 오래 버티지 못했고 동물 의약품을 파는 그의 아버지의 직업이 무색하게
외식을 하고 돌아온 그 날 싸늘한 바닥 위에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져 있었다.
1층에는 고양이들이 많았다. 나름대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고 나름대로 건강식을 챙겨줬지만
그 시기는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그 대가족들을 돌본다기보다는 사육하는 것에 불과했고 그래서 그 사고가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책임한 내가 너무 많은 생명을 책임지게 되어 그 녀석이 전기밥솥 안에 갇혀서 밤새 울었을지도 모르는데도
그걸 몰랐다.
그 조그만 녀석이 그 귀여운 녀석이 그 작은 공간에 갇혀서 숨이 막히고 캄캄한 곳에서 얼마나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웠을까.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이런 기억들이 너무나 또렷해서 지금도 마음이 미어진다.
이 생명들의 무게가 마음에 차곡 차곡 쌓여서 지금도 내 머리를 치고 내 가슴을 친다.
나는 너무도 잘 안다. 내가 얼마나 몹쓸 인간인지.
이건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고백하고 나면 마음이 좀 나아질까 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언젠가는 한번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잘 표현하고 싶었지만 이 무책임함과 이 죄를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냥 …
미안해.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