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무제 #1. 햇살이 쨍쨍했다.

#1. 햇살이 쨍쨍했다.

by 닳은 돌길

햇살이 쨍쨍했다. 오늘도 그날처럼 햇살이 쨍쨍하다. 철기둥 틈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온도는 느낄 수 없었지만 이 햇살은 분명 그날처럼 아주 따사로울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그 햇살을 맞아본 적이 있었나. 분명 기억이 날듯 한데도 까마득한 옛날 같기도 하고 아니, 어쩌면 꿈에서 그 햇살을 온몸으로 느낀 것이 너무 강렬하여 진짜처럼 느껴진 걸까.


그녀가 햇살에 대해서 생각하는 동안 철기둥 안에 그나마 들어오던 밝은 빛은 금새 사라졌다. 그 햇살이 꿈이었는지 멈춰 버린 어제 일이었는지를 생각하느라 한창 소란스러웠던 공간도 갑작스럽게 사라진 빛 덕분에 적막이 흘렀다. 그러더니 끼-익 하고 문이 열린다. 문밖은 이곳보다 더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일 것이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 문을 연 사람은 멀찌감치 서서 뭔가를 던지고는 뭔가에 쫓기듯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허기에 쫓겨 그것을 집어들어 입안에 넣었다.


그건 꿈이었을까.


꿈이었는지 어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분명한건 나는 이곳에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또 언제끝날지 모르는 하루를 반복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던진 그것을 먹고 나니 허기가 사라졌고 졸음이 밀려온다.


햇살이 쨍쨍했다. 오늘도 그날처럼 햇살이 쨍쨍하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벌써 8시네" 허겁지겁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다.

"뭐야. 오늘 쉬는 날 아니었어?" H는 내 소란에 잠을 깨 짜증이 가득 묻은 목소리로 내 뒷통수에 대고 말했다.

"어, 근데 오늘 마무리 해야 하는 일이 좀 있어서. 미안. 좀 더 자"

뜨거운 물이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지자 몸이 또 나른해졌다.

갑자기 미끄덩하며 뒤에서 H가 감싸 안는 것이 느껴졌다.

H가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쉬는 날인데 그냥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되나."

그래. 그는 이렇게 응석받이지. 철없이 투정거리는 것이 바보 같으면서도 그가 나를 그토록 사랑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러게. 나도 그러고 싶은ㄷ.... "

"그러면 그렇게 하자"

나를 돌이켜 세우며 꼭 안는 그를 차마 밀어낼 수 없었다. 아니. 밀어내면 안 된다고 누군가가 내게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고 그에게 몸을 맡겼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햇살이 쨍쨍했다. 오늘도 그날처럼 햇살이 쨍쨍하다. 이 햇살이 어제의 햇살인가. 아니면 꿈에서 봤었나. "아-"하고 입을 벌려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언젠가 이 입에서 뭔가가 울려 소리라는 것을 만들어 낸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곳은 햇빛이 아주 가끔 들어온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나는 아주 가끔 꿈을 꾼다. 만져지기도 하고 느껴지기도 하고 안을 수도 있는 그런 꿈.


그리고 햇살이 영롱한 그 날, 또 나는 잠이 들고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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