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하나 찍지 못한 메모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 한켠』두번째 시

by 멘토K


할 말이 너무 많았던 날이었다.
말은 쏟아지는데
글자는 자꾸 멈췄다.


노트북을 열고도
커서를 깜빡이다 덮었고,
핸드폰 메모장에
첫 문장만 적고는 지워버렸다.


괜찮지 않다고 쓰려다,
또 누가 볼까 싶어
그마저도 꺼내지 못했다.


한 줄만 남기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한 줄이
이상하게 쓰이지 않았다.


괜찮아.

오늘도 잘 해냈어.
힘들었지.
그래도 고마워.


어떤 말도,
어떤 문장도
내 마음에 들어맞지 않았다.


글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는데,
나는 마음을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한참을 들여다보던 빈 메모장에
점 하나도 찍지 못한 채
화면을 꺼버렸다.


나를 위로할 말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이따금
가장 고요한 날이
가장 큰 울음일 때가 있다.


그날의 메모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내 마음의 언저리를 다녀왔다.


말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기록되지 않아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
그 점 하나,
찍히지 못한 채
아직 멈춰 있다.


-한켠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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