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AI를 쓰는 순간 책이 평범해지는 이유

[전문가의 책쓰기, 일번째 글]

by 멘토K

월요일 아침, 일요일 저녁 밤새 내린 눈이 인도를 덮고 있었다. 출근길은 늘 그렇듯 조용했고, 사람들은 발밑을 보며 걷고 있었다. 눈은 모든 소리를 흡수한다. 자동차 소리도, 사람 말소리도 낮아진다. 그날 아침의 공기는 유난히 평평했다. 누구 하나 튀지 않고, 누구 하나 앞서지 않는 느낌. 이상하게도 그 풍경이 요즘 내가 보는 책 원고들과 겹쳐 보였다.


AI를 쓰기 시작한 이후, 책 원고는 눈에 띄게 정돈됐다. 문장은 매끄러워졌고, 구성은 안정적이었다. 읽는 데 걸리는 시간도 줄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잘 쓴 원고를 읽고 나서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문장은 많았지만, 다시 펼치고 싶은 이유는 없었다. 눈 쌓인 월요일 아침처럼, 조용하고 단정했지만 기억에 남지 않았다.


출간작가로서그동안 여러권의 전문서를 쓰는 동안, 나는 책이 평범해지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처음에는 원인을 몰랐다. 분명 예전보다 더 잘 쓴 것 같았고, 더 효율적으로 작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AI를 활용하면서 초고를 만드는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책은 무난했고, 반응도 무난했다. 문제 삼을 곳은 없었지만, 기대할 만한 지점도 없었다.


AI를 쓰는 순간 책이 평범해지는 이유는, AI 자체 때문이 아니다. AI를 쓰는 태도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가 AI를 글쓰기 도구로 쓰는 동시에, 판단까지 맡긴다. 문장을 다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어떤 말이 적절한지, 어떤 표현이 안전한지까지 AI에게 묻는다. 그 순간 책은 평균값을 향해 움직인다. 튀지 않고, 불편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무난한 방향으로 정렬된다.


나 역시 그 과정을 거쳤다. 원고를 쓰다 막히면 AI에게 물었다. 이 표현이 괜찮은지, 이 문장이 너무 단정적인지, 더 균형 잡힌 말은 무엇인지. AI는 늘 친절한 대안을 제시했다. 문장은 더 부드러워졌고, 오해의 여지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수정된 문장들 속에서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책은 나 대신 AI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평범해진 책의 특징은 분명하다. 읽는 내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동의할 이유도 없다. 독자는 안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덮는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책의 문장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판단이 없기 때문이다. 판단이 없는 책은 정보를 전달할 수는 있어도, 방향을 남기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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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인 월요일 아침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눈은 모든 흔적을 덮는다. 어제 누가 어디를 걸었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AI를 과하게 쓴 책도 그렇다. 저자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어디서 멈췄는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가 지워진다. 대신 가장 안전한 발자국만 남는다. 그 발자국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AI를 쓰는 방식을 바꿨다. AI에게 묻는 질문을 줄이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늘렸다. 이 문장은 정말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문장인가, 아니면 평균값에 숨기 위한 문장인가. 이 판단은 실제로 내가 해본 선택인가, 아니면 설명을 위해 만들어낸 말인가. 이 질문 앞에서 많은 문장이 탈락했다.


AI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 역시 지금도 AI를 쓴다. 다만 역할을 분명히 나눈다. AI는 초안을 만들고, 논리체계와 검수 등 정리를 돕는다. 하지만 어떤 문장을 남길지, 어떤 표현을 고집할지는 끝까지 내가 결정한다. 그 결정의 과정에서 문장은 다시 거칠어지고, 때로는 불편해진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책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요소다.


책이 평범해지는 순간은 대개 작가가 안심하는 순간과 겹친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누구나 이해하겠지, 굳이 문제 될 말은 없겠지. 그 안심은 책을 안전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책을 무력하게 만든다. 전문가의 책은 원래 조금 불편해야 한다. 적어도 한 번쯤은 독자의 걸음을 멈추게 해야 한다. 눈길 위에 남은 발자국처럼, 어디선가 분명한 흔적을 남겨야 한다.


지금도 나는 원고를 쓰다 보면 다시 AI 쪽으로 기울 때가 있다. 속도를 내고 싶을 때, 갈등을 피하고 싶을 때, 애매한 문장을 안전하게 처리하고 싶을 때다. 그럴 때마다 월요일 아침의 눈길을 떠올린다. 조용하고 깨끗하지만, 금세 잊히는 풍경. 나는 내 책이 그런 풍경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AI를 쓰는 순간 책이 평범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판단을 넘겨주는 순간, 저자의 자리가 비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책쓰기는 더 많은 글을 쓰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결정을 감당하는 일에 가깝다. 어떤 문장을 남길지보다, 어떤 문장을 버릴지 선택하는 일이다.


눈은 곧 녹을 것이다. 월요일도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날 아침, 누군가 일부러 발을 깊게 디뎠다면, 흔적은 조금 더 오래 남았을지도 모른다. 책도 그렇다. AI를 쓰더라도, 판단을 남긴 책은 평범해지지 않는다. 그 판단이 있는 한, 책은 여전히 사람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전문가의 책쓰기는 다시 시작된다.


- 멘토 K -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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