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설명형 책이 AI에 밀리는 구조

전문가의 책쓰기, 아홉 번째 글

by 멘토K

2026년 설 연휴 기간,

이제는 귀성길 고생은 없어지고 사무실에 앉아 글을 쓰고 있지만 예전의 추억에 잠기면서 귀성길을 떠올려본다.

예전 귀성길 교통정체를 피하기 위해 나름의 눈치 작전.. 지금도 많은 귀성길 인파들이 겪어야 될 일들 T생각난다.


귀경 출발시점을 선택하는 일은 정체를 피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나는 이 장면, 즉 출발시점을 결정하는 일이 요즘 설명형 책의 처지와 닮았다고 느낀다.

정보는 이미 차고 넘친다.

AI는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정리해 준다. 배경 설명, 정의, 비교, 장단점 분석까지 몇 줄이면 완성된다.


이런 시대에 설명형 책은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 선다.

출간작가로 20여 권 이상의 전문 도서를 쓰며 나는 그 구조를 여러 번 체감했다.


초기 책들은 대부분 설명형이었다.

개념을 정리하고, 사례를 나열하고, 이론과 현장을 연결하려 애썼다.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최대한 자세히 풀어썼다.

그때는 그게 성실함이고 전문성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몇 권은 판매도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책은 조용해졌다. 강연이나 상담으로 이어지는 힘은 약했다. 책은 참고자료로 남았지, 저자를 찾게 만들지는 못했다.


설명형 책이 AI에 밀리는 구조는 단순하다.

설명은 비교 가능하고, 대체 가능하다. 같은 주제에 대해 더 간결하고 더 체계적으로 정리된 콘텐츠가 계속 쏟아진다.

AI는 피로하지 않고, 감정도 없으며,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 설명을 무기로 삼는 순간, 인간 작가는 속도와 효율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이 구조를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써도 결과는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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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이 현실을 외면했다.

더 깊이 쓰면 다를 거라고 생각했고, 더 풍부한 사례를 넣으면 차별화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독자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리가 잘 되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책 덕분에 방향을 정했다”는 말은 거의 듣지 못했다.

설명은 충분했지만, 결정을 돕지는 못했다. 설 연휴 교통정보처럼, 길은 다 알려주지만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었다.


설명형 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독자의 책임을 대신 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균형을 맞추고, 판단을 유보한다. 오해받지 않기 위해 애쓰다 보면 문장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책은 점점 무난해진다. 하지만 무난함은 기억을 남기지 않는다. AI는 무난함을 훨씬 더 잘 만들어낸다. 인간이 굳이 그 자리에 설 이유가 없다.


전환점은 내가 한 원고를 거의 완성해 두고 다시 처음부터 뜯어고친 경험에서 시작됐다.

설명은 충분했고, 구성도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책을 내 이름으로 내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나는 그 원고에서 설명을 절반 이상 덜어냈다. 대신 내가 실제로 겪은 선택과 그 이유를 적었다. 왜 그 프로젝트를 거절했는지, 왜 그 전략을 포기했는지, 어떤 기준 때문에 손해를 감수했는지를 솔직하게 남겼다.


그 책은 이전보다 얇아졌지만, 반응은 달랐다.

독자들은 정보가 아니라 판단에 반응했다. “저라면 그렇게 못 했을 것 같다”는 말, “그 기준을 가져가 보고 싶다”는 말이 이어졌다. 설명형에서 판단형으로 중심을 옮기자, 책은 AI와 다른 위치에 서기 시작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 생긴 것이다.


2026년 설 연휴처럼, 사람들은 결국 선택을 해야 한다.

정보는 참고자료일 뿐이다. 독자가 책을 사는 이유도 같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읽기 위해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판단을 빌려 자신의 결정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설명형 책은 길을 다 보여주지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말하지 않는다. 판단형 책은 길을 줄이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 차이가 책의 운명을 가른다.


나는 지금도 원고를 쓸 때 설명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설명은 안전하고, 공격받을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설 연휴 교통지도를 떠올린다. 길은 충분히 나와 있다. 독자가 필요한 건 또 하나의 지도보다, 누군가의 선택 경험이다. 그 경험을 책임지고 남기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다.


설명형 책이 AI에 밀리는 구조를 인정하는 순간, 책쓰기는 달라진다.

더 많이 쓰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이 덜어내는 일이 된다. 설명을 줄이고 판단을 남기는 과정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책은 빠르게 소비되고 잊힌다. 설 연휴의 붉은 도로처럼, 잠시 눈에 띄다 사라진다.


지금 책을 준비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묻기를 권한다.

이 책은 설명을 위해 쓰는가, 아니면 결정을 돕기 위해 쓰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달라지는 순간, 원고의 방향도 달라진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책은 설명을 잘하는 책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책이다. 그 책임이 당신의 이름을 남긴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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