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책쓰기, 열 번째 글
처음 책을 냈을 때 나는 솔직히 기대가 컸다.
이제 더 많은 고객이 찾아오겠지, 강연 요청도 늘어나겠지, 상담 문의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겠지. 실제로 문의는 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연락은 많았지만, 일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요청, 책의 취지와 상관없는 협업 제안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책이 고객을 끌어오긴 했지만, 선별하지는 못했구나.
책으로 고객을 선별해야 살아남는다는 말을 나는 뒤늦게 이해했다.
출간작가로 20여 권이 넘는 전문서를 쓰는 동안, 나는 한동안 ‘많이 노출되는 책’을 목표로 삼았다.
표현은 부드럽게, 입장은 유연하게, 최대한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썼다. 그 결과 책은 무난하게 팔렸다. 그러나 그 책을 읽고 나를 찾은 사람들 중 상당수는 내가 함께 가고 싶은 고객이 아니었다.
책은 브랜딩 도구라고 흔히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책은 끌어당기는 동시에 밀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책은, 결국 아무에게도 강하게 남지 않는다. 내가 한동안 범한 오류가 바로 그 지점이었다.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문장을 완화했고, 논쟁을 피하기 위해 입장을 흐렸다. 그 결과 책은 안전해졌지만, 나와 맞는 고객을 구분해내는 힘은 약해졌다.
AI 시대에 이 문제는 더 뚜렷해졌다.
정보는 넘치고, 누구나 그럴듯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이 환경에서 전문가가 살아남으려면 더 많은 고객을 모으는 전략이 아니라, 더 적합한 고객을 선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책은 그 첫 번째 필터다. 당신의 기준, 당신의 방식, 당신의 선을 분명히 드러낼수록 맞지 않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간다. 남는 사람은 적을 수 있지만, 훨씬 밀도 높다.
나는 어느 시점부터 원고를 쓸 때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문장은 누구를 불편하게 할까. 그리고 그 불편함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 예전에는 불편함을 줄이는 방향으로 수정했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고객이라면, 책 단계에서 미리 걸러지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그렇게 책을 바꾼 이후, 상담의 질이 달라졌다. 단가를 흥정하는 문의는 줄고, 내 기준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연락이 늘었다.
책으로 고객을 선별한다는 것은 오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려는 태도가 오히려 전문가를 소모시킨다. 나 역시 한때는 일이 많아야 성공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방향이 맞지 않는 고객과의 협업은 에너지를 빠르게 소진시킨다. 그 경험이 쌓일수록 기준은 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 기준을 책에 담기 시작했다.
어떤 제안은 왜 거절하는지, 어떤 조건이 아니면 시작하지 않는지, 어떤 방식의 협업은 지양하는지. 이런 문장들은 매출만 생각하면 빼고 싶은 내용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 문장들이 나를 보호했다. 책을 읽고 온 고객은 이미 그 기준을 알고 있다. 설명하는 데 드는 시간이 줄었고, 협의 과정도 훨씬 명확해졌다. 책이 나 대신 선을 그어주고 있었던 셈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이 기능은 대신할 수 없다.
AI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맞는 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전문가의 책은 최대한 적합한 사람에게 닿아야 한다. 평균값이 아니라 방향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책을 쓸 때 조회수나 판매 부수보다, 어떤 고객을 부를지 먼저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이 나를 찾았으면 좋겠는지, 반대로 어떤 사람은 찾지 않았으면 좋겠는지부터 정리한다.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선을 그으면 일부 독자는 떠난다.
반응이 엇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신 남는 독자는 훨씬 깊다. 강연 현장에서, 상담 자리에서, 나는 그 차이를 분명히 느낀다. 책을 통해 이미 가치관을 공유한 사람과의 대화는 훨씬 빠르게 핵심으로 들어간다. 책이 사전 합의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책을 준비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묻기를 권한다.
이 책은 고객을 모으기 위한 도구인가, 아니면 고객을 선별하기 위한 장치인가. 전자에 머물면 단기적으로는 편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를 선택해야 장기적으로 살아남는다. 모든 사람의 호감을 얻는 책은 많다. 하지만 자신의 기준에 맞는 사람을 불러오는 책은 드물다.
나는 여전히 실험 중이다. 지금도 원고를 쓰며 어디까지 분명히 말할지 고민한다.
너무 좁히는 건 아닐지, 기회를 스스로 줄이는 건 아닐지 망설인다. 그럴 때마다 과거의 경험을 떠올린다. 방향이 맞지 않는 고객과의 프로젝트로 지쳐 있던 날들, 책이 있었지만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던 시간들. 그 기억이 다시 펜을 들게 만든다.
책으로 고객을 선별해야 살아남는다.
이 말은 냉정해 보이지만, 결국은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전략이다. 전문가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돼 있다. 그 자원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첫 단계가 바로 책이다.
당신의 책이 단순한 소개서가 아니라, 기준을 드러내는 선언문이 될 때 비로소 진짜 기능을 한다.
그 순간 책은 홍보물이 아니라 필터가 된다. 그리고 그 필터를 통과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당신의 다음 단계를 만든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