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사유와 공존의 이유
작은 선물을 마련했다. 모두들 펜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 나이가 들어 가면서 손에 펜을 들고 끄적이는 것을 좋아 한다. 유독 펜에 욕심인 것은 나와 같다. 이 선물이 작은 기쁨이 되면 좋겠다. 내 큰 반가운 마음의 표현이다. 그래서 우리 모임의 이름을 각인한 펜을 준비했다.
교학상장,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나의 성장을 이룬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성장하는데 스스로 배우고 그것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인격과 학업의 성장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우리 모임은 거기서 하나 더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를 성장시킨다.
자신이 아는 바를 말하고, 그에 대한 다른 이의 의견을 듣는다. 자신의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는다. 나는 내가 아는 바를 그냥 말했을 뿐인데, 상대방은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스승이고, 제자다.
하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사느라, 마음은 있어도 1~2시간 내는 것도 못했다. 게다가 코로나까지.. 그래서 가끔 전화를 하거나 문자로 안부를 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약속을 잡았다. 일요일인데 수원에서 멀리 일산까지 온단다. 그래서 오랜만의 만남이 성사됐다. 오늘이 기다려 졌다. 팍팍한 삶 속에 '기다림' 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10년도 더 뒤에 만난 사람을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오래 전에 서로 나눴었다. 세상은 내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는다. 아예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오직 내가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디에 사는지, 어떤 권한을 누리는지에 관심이 있다. 그게 우리가 말하는 흔한 세상 속 관계다.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한 선배가 그랬다. 나이를 먹어가고, 경력의 끝이 보일수록 수첩이 얇아 진다고. 하나씩 정리하게 된다고. 지금은 그 말이 너무나 이해된다. 그래서 오늘 모임이 더욱 기다려 진다. 그리고, 그 친구들과 만날 생각에 설렌다. 우리는 일상의 수다를 나눌 것이다. 각자의 삶과 생각을 나눌 것이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들을 것이다. 각자의 어려움을 나눌 것이다. 걱정이 무엇인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나눌 것이다. 세상에 숨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 나눌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진심으로 공감해 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제 3자를 함께 공격(?)해 줄 것이다.
그게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