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게을러 진다는 것

개인적 사유와 공존의 이유

by 질그릇

글쓰기에 게을러진다는 것은 단절을 뜻한다. 나와 '내'가 단절된 것이고, 나와 '나 아닌' 외부와 단절된 것이다.


한참 글을 쓸 때가 있었다. 나에게 글은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다. 생활체육인이라는 말이 있다. 굳히 차용하자면, 나는 생활작가가 되고자 한다. 그래서 프로는 아니지만 꾸준히 생활 속에서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글쓰기 역량이 조금씩 늘어 난다면, 이것이 내 평생의 소원이다.


나에게 있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사고와 감각이 민감하게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순간순간 그것을 느낄 수 있었고, 혹 순간에 놓치더라도 글을 쓰면서 다시 살려 낼 수 있었다. 주로 나에게 그 대상은 '나'이거나 '나 아닌 타인 또는 것[thing]'이다.


하지만, 소위 직장생활에 10000% 몰입해 있는 나는 '느낌'을 잃어 버렸다. 나를 잃었고,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 사물, 환경에 둔감해 졌다는 뜻이다. 글이 잘 써질 때를 생각해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소위 글이 써질때는 나의 모든 감각이 살아 난다. 그 감각을 통해 주변을 살피게 되고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나의 마음을 전달하고, 또 받아 낼 수 있었다.


지금은 나의 감정을 숨기려 노력한다. 나는 소위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성격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혈질이기도 하고, 감정적이기도 하다. 때로는 편협되어 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숨기는 것이 직장생활에는 유리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본모습을 애써 지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편해서다. 감정을 배제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나의 글쓰기에 원동력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때로는 슬픔이, 때로는 분노가, 때로는 이 더러운 세상에 대한 나의 주장이 그리고 아쉬움이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끈다. 하지만 내가 애써 감각을 죽이고 있는 지금, 외부의 그 어떤 것도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감흥도 없고, 슬픔도 없다. 물론, '나'도 나에게는 무의미하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나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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