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흥하고 힘을 유지하는 자

개인적 사유와 공존의 이유

by 질그릇

오늘 아침 한 기사를 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기업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일정 기준을 넘어선 초과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미 상무부는 28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의 보조금 세부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정부에서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예상을 초과하는 이익의 일정 비율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보조금 대상 기업이 미국 국가 안보상 우려를 키우는 외국 기업에 기술을 제공하거나 공동 연구를 하면 보조금이 회수된다."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미국 지역 사회 투자를 늘리고 반도체 인력 양성에도 힘써야 할 전망이다."

(2023.2.28. 한경 기사 요약)



지구 최고의 권력자 미국에 대해서는 더이상 논할 여지가 없다. 말 그대로 'Captain America'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 지위가 몇 년을 갈지, 몇 십년을 갈지 모른다. 다만, 근본도 없는 자가 힘을 얻고, 그 힘을 휘두르다가 점점 쇠락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한 사람의 지구인으로서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골목대장을 바라보는 동네 꼬마의 관점이랄까. 꼬마는 꼬마로서의 한계가 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위 기사를 읽다가 또 다시 내가 쓰는 글의 금기를 깨고 생각을 그대로 자판에 드러낸다. 쇠락해 가는 미국의 모습을 동네 꼬마의 입장에서 짧게...


첫째, 책임을 떠넘긴다.

자본주의의 룰을 스스로 어김으로써 당장의 이익을 얻는다. 이 눈 앞의 이익은 결국 미국 패권의 실추로 이어질 것이다. 지구상의 나라들이 미국과 친하려고 하고, 눈치를 보는 것은 거대한 군대와 무기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미국이 보여온 긍정적인 모습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대유행병에 대한 대응에서도 드러났듯이 미국도 하찮은 위기대응능력을 드러냈다. 질병을 돈으로 처방했고, 그 덕분에 권력을 얻은 자가 있다. 그 권력자는 돈으로 처방한 그 뒤치닥꺼리를 하느라 다른 나라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번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어려움은 미국의 경제정책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다른 나라들에게 떠밀고 있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자본주의 미국, 사회주의 러시아, 중국. 결국 힘의 논리일 뿐이다. 책임을 떠넘기는 리더를 따르고자 하는 팔로워는 없다.


둘째, 이제 혁신은 없다.

미국은 혁신의 나라다. 1,2차 세계대전으로 패권을 쥐었지만, 그 뒤에 많은 혁신을 이루었고, 이를 통해 힘을 유지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그 혁신은 보편화 되었다. 혼자서 잘 할 때는 여유로왔다. 있는 척, 잘 해주는 척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사람들이 다 잘하고, 때로는 나를 앞서는 경우가 지속되면, 그러기가 쉽지 않다. 자본주의에서 혁신은 곧 성장이고, 이 성장이 고용을 창출하고 인재를 키운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스스로 그렇게 할 힘을 잃어 가고 있다고 본다. 이 마저도 다른 나라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혁신을 잃은 나라가 결국 의지할 것은 힘의 논리다.


셋째, 줄세우기로는 안 된다.

중국은 미국에 안 된다. 러시아도 그렇다. 솔직한 내 판단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중국의 시주석 황제화를 보면 그들의 어리석음과 얄팍한 수준이 보인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고 생각한다. 웃기는 일이다. 근데 문제는 미국의 반응과 대응이다. 세계대전의 결과, 어부지리로 패권을 얻었지만, 미국은 미국다울 때 가장 멋있다. 힘이 있는 자는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 다들 그 힘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힘을 과시하려고 하면 그 힘을 잃게 된다. 지금 미국이 내놓는 정책의 표면상 이유는 국가 안보다. 하지만, 이 논리는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다. 뭔가에 쫓기는 최고 권력자의 몸부림으로 보일 뿐이다. '이리 이리 붙어라~' 줄세우기는 아이들 놀이에서나 할 만한 것이다. 그렇게 줄을 선 이들이 얼마나 거기에 서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사전 준비 없이 급작스럽게 평소의 생각을 글로 썼다. 수준이 떨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쓸 수 밖에 없다. 답답함이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끌었을 뿐이다. 그리고 짧은 글을 마치는 이 순간에도 답답함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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