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피하고, 숨어도 된다.

by 질그릇

절대 숨거나 피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라도 맞서서 직면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미래 청사진을 그리며 당당히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자신의 얘기를 당당하게 하라. 세상에 맞서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라도 상대방에게 알려라. 대중에게 내가 아프고, 괴롭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숨기지 마라. '나는 힘듭니다. 그리고 아픕니다. 괴롭습니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모든 상황에 완벽하고 적합하게 맞는 것일 수는 없다. 우리는 아플수록, 그 기간이 길어지고 반복될수록, 그리고 나이라는 것이 들어갈수록 그렇지 않은 경우를 겪게 된다. 나는 아직 젊다. 오십 초반이니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기도 어렵다. 짧은 인생이니 그만큼의 경험으로 얻은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말 전부이기는 하다.




우리는 안다. 남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나 또한 그러니까.. 남을 이해하기는 커녕 나 자신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했는 지도 의문이다.




때로는 피하고, 숨어야 한다. 사랑니를 뺄 때도 너무 아프면, 진통을 위한 약을 주고, 어느정도 통증이 가라앉은 후에야 치아를 뽑는다. 큰 비도 피하는 것이 낫다. 너무 힘들면 잠시 멈춰야 한다. 감기가 들면 약을 먹고 쉬라고 한다. 우리의 영혼도, 정신도 아프면 약을 먹고 쉬어야만 한다. 치열한 삶이 벌어지는 사각의 링에서 잠시 내려와야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약간의 여유를 얻게 된다. 이것이 피하고, 숨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강하거나 약할 수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인간은 피창조된 존재로서의 한계를 지닌다.


'힘과 목소리를 내라. 당당하라'는 세상의 주술에 빠져서 모든 것에 맞서려고 하지 마라. 당신은 지혜로운 존재다. 그러니, 피하고, 숨어야 할 상황이 오면, 잘 판단하여 그 상황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잠시 숨어있을 수 있어야 한다.


오가는 길에서 큰 비를 만나면 잠시 그 자리를 벗어 나야만 한다. 숨고 피해야 할 때를 분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함은 내가 갈 길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 끝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결코 작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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