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범인전(凡人傳) - 잊혀진 이름, 아버지

by 질그릇

"그래서 그 퇴직금 조금 나온 걸로 네 집 얻어 준거야"


22년의 세월이 지나간 2021년 2월이 되서야 작은 빌라 1층, 나의 신혼집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왜 그렇게 배우고도 아버지보다 못한 놈인지를 스스로 자책했다. 이 괴로운 생각 끝에 그동안 들어 왔던 아버지의 삶에 대한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면서 그분을 돌아 보게 됐다.




나의 아버지를 글로나 말로나 이렇게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마음을 굳게 먹고 그분의 얘기를 적어 본다. 위대한 이는 위인전을 남긴다. 이에 빗대어 본다면, 이 시대 평범한 사람, 드러나지 못한 이에게는 범인전(凡人傳)이라는 이름도 좋겠다.


나의 아버지는 너무나도 평범한 이 시대의 아버지다. 글로 쓰고자 하니 사실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내가 브런치에 쓴 글 중에서는 가장 긴 글이 될 듯하다. 이는 나의 아버지에 대한 범인전이자 나만의 위인전이 될 것이다. 그분의 삶에 대한 짧은 이야기다.


1.1944년생 - 8남매 중 둘 째, 머슴살이


나의 아버지는 여덟 남매 중 둘째다. 고모 한 분이고, 나머지는 모두 형제들이다. 일꾼은 많았는데, 경작할 땅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배고픔은 곁에 있었다. 그 시대에는 한 입을 덜어 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남의 집 종살이를 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몇 년 전인가 막내 작은 아버지의 이야기다. 큰 아버지(나의 아버지의 형님)와 나의 아버지가 하는 얘기를 몰래 들었다고 한다. 둘 중에 누가 고모네 종살이로 갈것인가를 두고 하는 얘기였다. 나의 아버지 曰, '형은 첫 째니까, 내가 가겠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는 고모네 종살이를 했다. 하지만 그 뒤의 얘기는 모른다. 아버지도 그 얘기는 안 하신다. 다만 막내 작은 아버지가 둘째형,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에게는 끔찍히 잘 하신다. 살갑지 않은 분인데, 나의 아버지께 만큼은 잘 하신다. 그래서 고맙다.


2.국민학교 중퇴 - 동생이 아파서

어느날 학교 갔다 오니,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그러셨단다. '동생이 아프니 내일부터 학교 가지 말고, 동생 돌보고 일해라' 어린 나이에 마냥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좋아했는지 여쭙지는 못했다. 아버지가 평생 목재회사, 철강회사에서 노동자로 살아온 그 힘든 삶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예전에는 부모 학력을 조사해 오라고 시켰다. 나는 어린 마음에 그게 정말 싫었다. 어린 나에게는 항상 이것이 상처였다. 그래서 나는 되지도 않는 머리에 공부에 더 열심이었나 보다. 매번 나는 아버지 최종학력을 중졸이라고 써서 냈다. 이상하게도 그 때 내 친구들 부모님들은 모두 고졸이상이다. 대졸도 많다. 그래서 한동안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지와 잘못된 결정에 대해 엄청 원망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대해서 한 번도 말씀한 적이 없으시다. 그 시대에는 다 그랬다 생각하시나 보다. 그러나 내가 친구들의 부모님들을 통해 본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상처, 숨김, 거짓, 이해, 다시 상처. 어린 시절 나의 상처와 그 자리의 피딱지는 아버지의 학력과 상당부분 연결되어 있다.


3.인천으로 - 고무신


농사할 땅도 별로 없는데 계속 시골에만 있을 수 없어서 사촌형이 있는 인천으로 무작정 상경한 것이 나의 아버지의 첫 도전이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인천 앞바다 목재 회사이다. 그리고 그 회사를 40년 넘게 다니셨다. 인천에 오실 때 아버지는 고무신을 신고 계셨나 보다. 아버지의 초라한 젊은 모습이 그려진다. 언제 한 번 얘기는 들었는데, 이 얘기는 나의 어머니께서 일부러 안 하신다. 그래서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다. 나의 어머니는 자존심이 강하신 분이다. 하지만 이 도전은 아버지의 인생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 뒤에 열심히 사신 모습을 보면, 아버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그분의 선택이었다.


4.할아버지 - 너는 내려와서 농사를 지어라


아버지가 시골집을 떠나고 그 동생들은 농사를 짓기 싫었나 보다. 아니 지을 땅도 없었을 거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가 제일 근면성실한 일꾼이었을 거다. 할아버지도 그것을 당연히 아셨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 둘째 아들에게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라고 계속 말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이들 교육문제로 절대 반대하셨고, 우리는 그대로 인천에 살게 됐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좋게 보시지 않으셨을 거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을 보면, 그 때 내려가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 부모 말씀을 잘 듣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절대 아니다.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다.


5.인천 수봉공원


아버지와 어디 놀러 갔던 기억은 없다. 딱 하나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수봉공원에 동생과 함께 갔었던 기억이다. 그때 나의 아버지는 젊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들들과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까. 삶의 무게는 자식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훌쩍 뛰어 넘는다. 가끔 생각해 본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아버지를 만나서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술 한 잔 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한 번 안아 드리고 싶다. 부족한 아들 잘 키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두 잘 될테니 힘내시라고. 우리 모두 잘 살아 냈다고.


6.주야간 근무 - 항상 주무시는 모습


나의 기억 속 아버지는 항상 주무신다. 주간, 야간 2교대다. 야간을 하고 오시면 안방에 이불을 깔고 주무신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는 항상 일하러 나가시거나, 아니면 주무시고 계신다. 이불 속에서 주무시는 아버지. 이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한 낮 아버지의 모습이다.


7.인도네시아 취업 사기 - 인생의 고비


돈을 좀 버시겠다고 인도네시아에 가신 적이 있다. 하지만 잘 안 되어서 몇 개월 계시다 다시 오셨다. 뒤에 어머니께 들었는데, 그 일 때문에 금전적 손해도 많았다고 한다. 저녁에 아버지가 창을 두드리던 그 때를 기억한다. 바로 어제 일처럼 하나하나 나의 기억 속에 있다. 국민학교 6학년인 나에게는 엄청 반갑고, 놀라운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위기였고, 잘 이겨내셨다. 나는 힘들 때마다 그 때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도 앞 날이 막막했을 것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큰 맘 먹고 해외에 취직한 것인데, 바로 돌아와야 했던 그분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가장으로서 살아내야 했던 아버지는 참 잘 이겨내셨다. 지금 상황의 나에게는 유일한 롤모델이다. 이 훌륭한 롤모델이 나의 아버지다.


8.아버지의 퇴직금


인도네시아 건으로 퇴직금이 얼마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마침 나는 입사한지 얼마 안 되어 결혼했고, 아버지의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은 나의 신혼집을 얻어 주시는데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동안 어떻게 마련된 돈인지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스스로 정말 놀랍고, 부끄럽다. 부모가 해 주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 이상은 궁금해 하지도 않은 것이다. 이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 아마 더 빚지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영원한 채무자다.


9.정년 후 하청업체 계약직


정년 퇴직 후에도 아버지는 계속 일을 하셨다. 공장에서 기계 돌리는 일을 평생하시다가 이번에는 짐 나르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하청업체 계약직. 이것이 나의 아버지 직장 경력의 마지막 이름표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아들이다. 나는 나의 근본이 노동자라서 좋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열심' '근면' '성실' 을 참 좋아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미덕일지라도 그래도 좋다.


10.어머니의 수술


그 분의 곁에는 강한 나의 어머니가 계시다. 하지만 수 년전에 허리수술을 크게 받고, 지금은 거동이 많이 불편하시다. 어머니 곁에서는 평생 반려자인 아버지가 있다. 두 분은 서로의 곁을 지켜 주고 계시다. 어머니께서는 종종 말씀하신다. '네 아버지가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 가족 전체의 일상과 행복을 지켜주고 계신다.




이것이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사실 전부다. 그냥 별거 아닌 것으로, 그저 잊혀질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할 것이다. 아들인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기억해야 할 그분의 적나라하고 열정적인 삶이다.


그 어떤 삶보다 소중하고 멋지다~!


2021년 02월 16일 아침.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1 새해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