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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그릇 Mar 28. 2022

예정된,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내가 나에게

아들 입대 후 14일째


예정대로 아들은 2주전입대를 했다. 코로나 환경은 입대 순간도 바꿔 놓았다. 예전에는 서서든 앉아서든 잠깐의 대화를 허락했었다. 그러나, 그날은 그렇지 못했다. 택시에서 아들만 내리고, 나는 그 순간에 했어야 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들은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 후, 입대를 했다. 나는 밖에서 부대 밖에서 기다리다가 돌아왔다.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군대가 갈 것은 분명했다. 인구가 줄면서 왠만하면 다 군대를 간다. 신체적으로 큰 질병이나 문제가 없으면 군대를 가야 한다. 여하튼 보통의 장정은 군대를 가야한다. 그게 대한민국 남자의 숙제다. 그 숙제를 나의 아버지는 36개월 동안 했고, 나는 24개월, 아들은 이후 18개월 동안 해내야 한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한다고 마음 속으로도 준비해 왔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그 마음의 준비가 헛되다. 예정은 되어 있었지만, 준비는 되지 않았다. 가족을 소홀히 하면서 일을 해 왔다. 그래서 아들의 어린시절을 함께 겪지 못했다. 그 바쁨으로 가족을 버리다시피 살아 왔는데, 지금 그 빈 마음을 또 바쁨으로 채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과는 다른 바쁨을 준비한다. 아들은 건강하게 제대할 것이다. 그때 나도 나의 숙제 결과물을 자랑스레 내놓고 싶다. 우선 한동안 게을리 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다.


이기적이고 경망스러운, 때론 탐욕스런 중년의 모습은 결단코 싫다. 이런 모습을 멀리하기 위해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다듬어 가야 한다. 이때 글쓰기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 왔다. 새벽기도와 말씀 읽기도 다시 다잡고 있다.


무엇보다 아내에게도 좀 더 다가가야 한다. 아내가 어제 처음으로 얘기했다.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 던 아내의 말이 나의 마음에 애잔하게 와 닿는다.


"2주 지나니까 보고 싶네.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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