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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그릇 Dec 23. 2023

아들의 눈물

아내와 쇼핑 중이었다. 아내는 더 살 것이 있다며 나 보고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 때 아내의 폰이 울렸다. 아들이다.


"응, 아들~"

"어? 왜 아빠가 받아?"

"엄마랑 있는데, 잠깐 뭐 사러 갔어. 왜?"


잠깐의 침묵. 그 침묵의 의미를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알아챘다. 뭐라 묻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입을 다물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아들이 흐느껴 운다. 아들에게 엄마는 하나님 다음이다. 온전한 내 편으로 존재한다. 힘들어서 엄마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거다. 하소연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내가 있었고, 아들은 터지는 감정을 누르지 못했다. 


엉엉 운다. 나는 22살 아들의 그 힘듦을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울고 감정을 추스리려고 노력하는 아들에게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지금 듣고 싶은 그 얘기를 해 주었다. 


"괜찮다."  




"네가 어떻게 하든지 괜찮다. 내 곁에만 있으면 된다."


2009년, 내가 십년을 다니던 회사를 떠나고자 할 때였다. 온 마음의 상처로 그 괴로움에 몸부림을 칠 때였다. 그 괴로움은 나를 새벽기도로 이끌었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는 지도 모른다. 자식은 잘 나갈 때는 자기가 잘해서 그런 줄 안다. 부모를 외면하기 일쑤다. 그러다가 힘들면 실망과 좌절 속에 살다가 부모를 찾는다. 그 때 내 모습이 그랬다. 교만했던 나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그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랐다. 그저 그 새벽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 분의 음성은 환상과 함께 임재했다. 처음 겪은 영적 체험이었다. 나의 손은 그분의 발 아래 따뜻한 피로 젖어 들었고, 그 따뜻함은 나의 깊은 상처를 뒤덮고 있었다. 그 때 말씀이 있었다.


"괜찮다."




내가 10여 년 전 새벽에 그 자리에서 울고 있었듯이, 나의 아들은 전화 너머로 자신의 상황을 견디면서 울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 나는 이 아이의 아버지로서만 존재한다.' 는 것을.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아들의 눈물은 이렇게 나를 아버지의 모습으로 세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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