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올해 21살이다. 직장에 다닌다. 벌써 그렇게 됐다. 대학을 가지 않고 특성화고를 가겠다고 해서 3년 전에는 그렇게 입씨름을 했다. 아들과 아내는 특성화고를 가겠다는 것이었고, 나는 대학에 가기를 원했다. 나는 한 달을 넘게 반대했다. 그러다가 거의 지원서 내는 날에 임박한 어느날, 그 날은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나의 머리와 심장이 쪼개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던 그날이다.
"당신이 아들에 대해서 뭘 알아? 회사 일에 파묻혀 살면서 아들이 공부를 잘 할지? 아니면 빨리 직장을 잡아 줘야 하는지? 당신이 고민이나 해 봤어?"
순간 할 말을 잊었다. 나는 조직에서 인사조직관리를 했던 사람이다. 인사의 기본은 임직원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 내가 수백번도 더 듣고, 말했던 인사관리의 제 1원칙이다.
밖에서는 그렇게 얘기했던 나인데, 하나 있는 아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아들이 꼭 대학에 가야한다는 판단은 잘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순간 크게 흔들렸다. 할 말을 잃었다. 그후 아들은 특성화고로 진학했고, 열심히 살아 지금은 원하는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그렇게 세월이 쌓여서 나는 중년이 됐고, 아들은 청년이 됐다. 나는 지금도 종종 위 상황을 돌아 본다. 내 고집대로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사람 인생은 알 수 없지만, 현재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금 아들의 모습이 내가 고집했던 모습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대학은 이후에 언제든 갈 수 있다. 아직 21살이다.
그 동안 '대화' 라 포장하고, 일방적인 '훈계' 를 일삼으며 나이 먹은 것을 한 껏 자랑해 왔다. 아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면서 내가 아는 그 좁은 경험과 지식으로 가르치려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안 되는 방식이다. 그건 나도 한 때는 '아들' 이었기 때문에 잘 안다. 그것을 잊고 살아 온 대가는 컸다.
"나는 아빠의 모든 것이 싫어"
이게 나의 최종성적표였다. 다행인 것은 '였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아빠로서 나의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왔다. 당연히 했어야 하는 말과 행동들. 내가 어떤 것을 놓쳐 왔는지, 하나씩 곱씹어 왔다. 그렇게 나는 어떻게든 나의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했고, 가끔 아들이 나의 실없는 소리도 받아 주기도 했다. 어쨌든 아들은 나보다 좋은 사람이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요?"
2021년 1월 16일. 토요일 밤. 아들과 평생 처음으로 20년 만에 '대화' 라는 것을 나눴다. 아들이 나와의 '대화' 를 원했다. 내가 원한 것이 아니고 아들이 원한 거였다는 것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행복하다. 나는 아들의 상황을 듣고 나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당장 존경받는 아빠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은 이상,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는 없다. 남자는 군대 갔다 오고 직장 잡으면 거의 독립하게 된다. 직장은 있으니 군대 갔다 오면 아들은 완전히 홀로 설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기간 동안 나는 20년 동안 잊고 살았던 '제대로 된 아빠의 모습' 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줘야만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